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하다니..헐
게시물ID : religion_103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꺼벙의누나
추천 : 9
조회수 : 600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2/11/22 01:10:05

사람이 어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인간이길 포기한 전쟁과 지배심리가 만들어 낸 추악한 증거들
최소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곳에서 죽었어도 고통받고 있을 사람들
나중에 하나님께 어떤 벌을 받을 지 안 봐도 뻔하다

※이 글이 많이 퍼져서 모든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좋아요 , 공유해주세요※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장교가 말했다. 

하루 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임신. ‘아직 쓸 만한데’하는 생각에 자궁째 태아를 들어냈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땐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그 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다.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긴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을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고 

정씨는 표현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정씨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1933년 12월1일에는 한 여성이

장교가 철봉을 자궁에 꽂아 죽어버렸다. 

다음해 2월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피살되었다.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다. 

문신은 온몸에 걸쳐 새겨졌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성들에게 문신을 했다. 

마차에 실려온 여성들을 들에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중국인 남자가 일본인이 사라진 뒤, 

숨이 남아 있던 여자 두명을 옮겨 약 두달간 간호해줬다. 

정씨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내 팔을 꽉 쥐며 울부짖듯 소리질렀다. 

눈앞에 있는 일본인이 자신을 극한까지 학대한 일본 병사와 

겹쳐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문신한 자국을 보여줬다. 

정씨가 손가락으로 뒤집어보인 입술 안쪽엔 

선명한 짙은 보라색 반점이 있었다. 

좀 흐릿했지만 혓바닥에도 푸르스름한 반점이 몇군데 있었다. 

수많은 바늘로 혀를 찔렀기 때문에 그뒤로는 말하기도 곤란해졌으며 

지금도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고 했다. 

등 아래쪽은 척추를 따라 둥근 반점이 

염주처럼 줄줄이 그려져 있었다. 

가슴과 복부 문신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 낙서 같은 무늬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 

일본 군인들은 정녕 그 잔인한 행위를 즐기면서 했음이 분명했다.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지배하고 있던 조선에서 

일본은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 버러지처럼 짓뭉갰다. 

정씨의 몸에 깊숙이 새겨진 문신은 

그 어떤 많은 얘기를 듣는 것보다도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지배의 실태와 

천황의 군대의 악랄한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 글이 많이 퍼져서 모든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좋아요 , 공유해주세요※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고 장교가 말했다.
하루 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임신. ‘아직 쓸 만한데’하는 생각에 자궁째 태아를 들어냈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 땐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그 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다.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긴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을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고

정씨는 표현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정씨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1933년 12월1일에는 한 여성이

장교가 철봉을 자궁에 꽂아 죽어버렸다.

다음해 2월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피살되었다.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다.

문신은 온몸에 걸쳐 새겨졌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성들에게 문신을 했다.

마차에 실려온 여성들을 들에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중국인 남자가 일본인이 사라진 뒤,

숨이 남아 있던 여자 두명을 옮겨 약 두달간 간호해줬다.

정씨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내 팔을 꽉 쥐며 울부짖듯 소리질렀다.

눈앞에 있는 일본인이 자신을 극한까지 학대한 일본 병사와

겹쳐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문신한 자국을 보여줬다.

정씨가 손가락으로 뒤집어보인 입술 안쪽엔

선명한 짙은 보라색 반점이 있었다.

좀 흐릿했지만 혓바닥에도 푸르스름한 반점이 몇군데 있었다.

수많은 바늘로 혀를 찔렀기 때문에 그뒤로는 말하기도 곤란해졌으며

지금도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고 했다.

등 아래쪽은 척추를 따라 둥근 반점이

염주처럼 줄줄이 그려져 있었다.

가슴과 복부 문신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 낙서 같은 무늬가 뚜렷이 남아 있었다.

일본 군인들은 정녕 그 잔인한 행위를 즐기면서 했음이 분명했다.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지배하고 있던 조선에서

일본은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 버러지처럼 짓뭉갰다.

정씨의 몸에 깊숙이 새겨진 문신은

그 어떤 많은 얘기를 듣는 것보다도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지배의 실태와

천황의 군대의 악랄한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듣기에도 눈 뜨고 보기에도 끔찍한 일들은 실제로 우리나라 젊은 여자들에게 했습니다. 진실은 알려져야 합니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이런 자행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일본의 정서와 문화가너무도 야만적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한국이 잘되는 꼴을 못보나 봅니다.대한민국 모든여성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니지요 여자들은 뭐하십니까 자존심도 없나요? 이런일들을 일본이 아직 우기고 있으니 해도 넘하는군요 대한민국 여자들이 병신같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