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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당황한 단어
게시물ID : freeboard_1032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림공자
추천 : 0
조회수 : 76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8/23 13:52:14

90년대 초 쯤 이었던 거 같네요.

타자치기 귀찮으니깐 존대체를 생략하도록 하지요~


사무실 분위기는 나날이 평화로움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옆 사무실에서 논리로 싸우는듯한 소리가 지속 되므로 어슬렁 거리며 찾아가 봤다.

(참고로 옆 사무실 또한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들이라 서로 자기 사무실인양 왕래가 빈번하고 자유로웠음. 특별히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쓸데없이 서로 놀러 댕겼음. )



“왜들 떠들어~?”

하고 옆 사무실 문을 밀치는 순간,


혓바닥으로 수십합을 교전하던 두 사람이 얼굴에 화색을 띄고 나를 봐라봤다.

“오~ 마침 잘 왔네 우리 두 사람 말 중에 누가 맞는 건지 좀 들어봐!”

당연하지만 이구동성이었다.


한 놈은 쓸데없이 마실을 간 우리 사무실 직원인 길동이였고

또 한 놈은 홈그라운드에서 혀끝에 근육을 모으고 있던 꺽정이였다.



“내가 달리 솔로몬이라 불리나? 패자와 승자를 명백히 가려주도록 하지. 함 썰들 풀어봐”


길동이 : 벌초가 맞는 소리지?

꺾정이 : 무슨 소리야 금초라니께


즉 그때도 거즘 이 때쯤의 계절이었던 듯?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 산소에 가서 잔디를 깎고 풀을 베고 하는 일을 뭐라고 부르는 게 맞냐는 주제였다.

이 문제로 서로가 자신의 말이 표준어라고 우기면서 두 시간여를 떠들고 있더라는...


“내가 정확히 판별을 해주지. 지금부터 내말에 귀 기울이도록!”


길동이와 꺾정이는 순한 양이 되었다.



“우선 벌초라는 말을 정의해 주지. 벌초라 함은 한자로 伐草라고 쓰는데 칠 벌자에 풀 초라는 글자를 쓰지. 한자(漢子)라는 것은 한글과 달라서 한 글자마다 계급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존칭의 뜻과 하대의 뜻으로 구별되는 글자들이 많이 있지. 이해 하겠나?”


길동이랑 꺾정이 두놈 : 끄덕끄덕


“칠 벌자(伐)자라는 것은 한자의 계급 중에서도 하(下)라는 개념에 속하는 글자라고 볼 수가 있지. 벌목이라던가 등의 단어를 보더라도 무언가 서민의 일상 생활이랑 친숙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즉 조선시대 이전의 사람들 신분을 보면 양반. 중인. 천민 이 세 계급으로 논할 수도 있는데 伐이라는 글자는 이 중에 천민들에 밀접한 글자라고 볼 수가 있지.”


“뭐 고려말엽 벌리사(伐李使)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소리도 있지만 오얏나무를 벌목하는 것은 그야말로 노가다라서 천민들이나 하는 노동이라는 행위가 깃든 글자라는 느낌이 강하지. 정리하자면 벌초라는 단어는 즉, 종 같은 천민부터 일반 백성들 같이 노동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로 썼다고 보면 되는 걸세”


꺽정이 : 가만 있어도 입이 귀 잡으러 가네 이거. 역시 솔로몬이여~ 금초가 맞다니께.


길동이 : “처 삼촌 벌초하듯 한다.”라는 속담도 있잖나? 벌초가 표준어란 반증 아닌가?



“반증이 아니라 확증이 되는 거지. 마누라 삼촌이란 지위가 어떤가? 양반사회에서는 족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항인데. 처 까지는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지만 처의 삼촌은 족보에 명함도 네밀 수 없는 존재란 말이지. 즉, 족보에 없는 자는 제사도 자신의 문중에서 제사도 지내주지 않아.”


“처삼촌이 자식도 없이 죽었다고 볼 때 양반의 눈에는 제사도, 산소관리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런데도 나 몰라라 하기에는 또 인간성이 거시기 한 거 같자녀?. 추석에 즈음하여 인정상 처삼촌 풀도 깎아주긴 하는데 사람들이 보니깐 겁나게 성의 없이 대충대충 깎는게 눈에 보이거등? 거기에 금초란 말을 어떻게 붙이나? 당연히 천민 언어인 벌초라는 단어를 가미해 중의적인 표현을 더욱 심화 시킨 속담인게지.”


꺾정이가 윗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건넸다.



“이번엔 금초라는 단어를 말해주지. 한자로는 금초(禁草), 금할 금자에 풀 초자를 쓰지. 풀을 금한다? 언뜻 보면 웽~? 하는 뉘앙스지만 禁이라는 글자는 억누른다는 뜻도 가지고 있지. 옛날 의금부(義禁府)라는 단어를 떠 올려 보면 뭔가 죄인들을 억누르는 힘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 즉 금부도사가 죄인들을 때려잡듯 조상님 산소에 자라난 잡초를 인정사정 없이 뽑아야 한다. 라는 의미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지.”


“양반사회에서는 문무(文武)를 논할 때가 많은데 무는 문보다 아래라고 보는 이치 때문에 무에 해당하는 禁자는 결국 중(中)에 속한 다고 봐야지. 이런 연유로 유추해 보면 일반 백성이나 벼슬 없는 양반들이 신분상승을 앙망하면서 쓰던 단어라고 볼 수가 있줴~”


길동이 : 우훼훼~ 결국 꺾정이네 집도 별볼일 없다는 거눼~? 벼슬도 못한 집안이구먼 훼훼



“이해들이 가는가?”


길동 & 꺽정 : 그럼 진짜 표준어는?


“진짜 표준어는 참초(斬草)라고 하지


꺾 & 동 : 읭~? 참초? 대가리에 잡초 난 뒤로 참초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보는뒈?“



“참초(斬草)라 함은 벨 참자에 풀 초자를 쓰는데 斬이란 글자는 상(上) 계급에 속하는 단어지. 참수(斬首)라는 단어에서 보듯 반드시 죽음을 부르는 글자이면서도 그 집행에 있어서는 목숨을 주관하는 자의 엄숙함이 깃들어 있지. 감히 은혜가 하해와 같은 조상님의 산소에 잡풀 따위가 자라나? 죄인의 머리를 베듯 낫으로 베어 주마.”


“서릿발 같은 기개와 엄숙함이 느껴지지들 않나? 참초야 말로 양반층 즉 그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들이 쓰던 단어지. 참고로 우리 집안은 대대로 참초라는 말을 쓴다네.”


꺾동 : 넙죽ㅜㅜ. 근데 진짜 처음 듣는 단어인데 국어사전 좀 찾아봐도 됩니까?


“그야 물론이지. 국어사전을 보면 이 처럼 오래 떠들 필요도 없는 간단한 문제였지. 뒤편 캐비넷에 있는 국어사전을 펼쳐 보라구~”



국어사전에는 벌초랑 금초란 단어만 있고 참초란 단어는 없었다.


꺿ㅇ :  아 ㅆㅂ..... ㅊㅊ?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 이야기는 실화지만

두 사람한테 썰을 푼 기본 골격은 어렸을 때 부터 들었던 선친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세월이 지나 인터넷을 뒤져 봤지만 참초라는 단어는 없다.


지금도 시골 우리 동네에서는 참초라는 말을 표준어처럼 쓰고 있으며 행여 벌초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을 보면 못 배운 사람처럼 바라보거나 타박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조상님 산소를 두고 어떻게 그런 천박한 단어를 쓸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금초는 그나마 어느 정도 눈치 지식은 쌓았구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 본다.

요즘 시대에도 양반부심들이 남아 있다는 건지... 정말 단어에도 계급이 있는 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선친이 돌아 가시고 온 집안이 기독교화 되면서

참초를 하러 내려 간지도 십 수년이 넘은 듯 하다......



혹시 오유인들 중에 참초(斬草)라는 단어 쓰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출처 흐린 기억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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