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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후기) 이화령, 뜻하지 않은 여정의 시작(feat 초딩4 아들)
게시물ID : bicycle2_3463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참밝은하늘
추천 : 25
조회수 : 1083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5/06/15 16: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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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안녕하세요 ?
간간히 아들과 함께 한 라이딩 후기를 올리는 밝은하늘입니다.
 
6월 들어 날도 많이 더워지고 메르스 덕분에 싱숭생숭 하긴 하지만 나름의 삶이 있기에 고만고만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 올린 여주~충주 코스에서 이어지는 라이딩 후기입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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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넌지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내일 승균이 별 일 없어 ?"
"왜 ?"
"별일 없으면 멀리 라이딩이나 다녀 오려구..."
"그러든가."
 
메르스 덕분에 월요일부터 뜻하지 않은 방학 중인 두 아이 덕분에 아내는 파김치 상태입니다.
학교만 휴업일 뿐이지 학원은 그대로였기에 어디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는, 온전히 집에만 있어야 하니 뒷치닥 거리가 한둘이 아니었지요.
아이들 또한 늦잠 자고 숙제가 줄었을 뿐 이건 방학도 아니고, 방학이 아닌 것도 아니고, 방학같은, 학원 숙제는 그대로인 아주 서로 따분한 시간과 정신의 방의 연속이었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다 새재길을 잡아 봅니다.
소조령과 이화령이 힘들다 하긴 하는데 날 더워지기 전에 넘는게 낫겠다 싶어 결행키로 합니다.
100km 거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구요.
평지 100km 정도는 이제 힘들지 않고 달릴 정도는 됐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지하철 첫차를 타고 강남 고속터미널에 닿습니다.
7시 버스를 타고 지난 라이딩 종착지인 충주로 향합니다.
이른 아침이라 시원스레 달려 금새 충주에 도착합니다.
 
출발 !!
탄금대부터 수안보까지는 설렁설렁 탑니다.
충주를 빠져 나오기까지 이어지던 평지는 수안보쯤에 다다르자 은근 오르막으로 이어집니다.
아기자기한 지방국도가 재미있습니다.
서울 살면서 제일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이런 지방 국도 달리는 재미입니다.
사람이 적고 통행량이 적은 지방도가 달리기에는 제맛입니다.
 
100_5483.jpg

 
시간이 조금 이르긴했지만 수안보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라이딩 중 깨친 교훈 중의 하나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라 !!"입니다.
시간 배분한다고 식당 지나쳐 달리다가 눈물, 콧물 빨아 먹으며 엄마~ 후회하다보면 자연스레 깨치게 됩니다.
그러니 배가 안고파도 식당 보이면 왠만하면 드세요.
특히 지방은 길가에 식당이 많지 않아요.
게다가 현금 떨어지고 카드 안받는다고하면 내 멘탈은 저 멀리...
 
수안보를 지나 은근 오로막을 타다보니 소조령 초입에 도착합니다.
 
좋아 !! 어택이다 !! 어택 !!
이화령 오르기전 워밍 업 한다는 소조령...
가볍게 몸 풀며 오른다는 소조령...
케이던스 연습하며 오른다는 소조령...
 
....은 개뿔 !!
저희는 끌바로 올랐습니다.
 
아들 녀석이 이런 긴 오르막은 아직 오르지 못하는지라(물론 저는 자신 있지만..) 스프린터 체질인지라 체력 안배를 위해 과감히 걸었습니다.
암사동 고개 정도라면 가볍게 무정차로 올라갈 실력이긴한데...초딩 4학년에게 여긴 너무 길어요.
경사도는 심하지 않은데 길이가 길더군요.
 
걷다보니 잠깐 "어 ? 벌써 끝이야 ?"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법 오르느라 흘린 땀을 보상받듯 한참을 시원하게 내달립니다.
시골 바람이 참 시원해요.
앞서 가던 라이더가 길 옆 가게로 빠지는 것을 보고 저희도 쉬어 갑니다.
 
100_5484.jpg
 
한참을 쉬며 미쿡 단물과 쪼꼬바를 흡입합니다.
라이딩엔 역시 미쿡 단물+박카스+게토레이 칵테일이 제맛 !!
정신 차리고 다시 도전~~!
 
계속 갑니다.
또 갑니다.
 
100_5487.jpg
 
가다 보니 나타난 갈림길 오천길이 시작되는 행촌교차로입니다.
아마 다음 여정은 오천길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까진 표정이 밝네요.
짜식~~ 즐겁지 ? 즐거워야 할꺼다.
 
여기부터 이화령 오르막인데...
저희는 또 걸어갔습니다.
 
1. 제가 제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몇 백미터를 올라갑니다.
2. 그새 아들은 지 자전거 옆에서 쉬고 있습니다.
3. 제가 제 자전거를 놓고 되돌아 내려와 아들 자전거를 끌고 제 자전거까지 다시 오릅니다.
4. 아들은 뒤따라 천천히 걸어 오릅니다.
5. 제 자전거 위치에 도착하면 1~4를 되풀이합니다.
 
어때요 ? 눈물나죠 ? 참 쉽죠 ? 엄마~~
 
100_5488.jpg
 
저~기 이화령이 쪼매나게 보이네요.
한 2km 남았을 때입니다.
이제 반만 가면 돼요.
씨익~~ 녀석은 멘탈 조퇴..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100_5489.jpg

이화령 정상에 도착해 한참을 쉬다가 멘탈이 다시 돌아오신 초딩군
 
100_5492.jpg

초딩군 올해의 사진 후보작
 
사실 저 사진 한장 찍기 위해 이번 라이딩을 준비한 겁니다.
초딩 4학년 중에 저 사진 찍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지금은 힘든 기억밖에 없겠지만 커가면서 저 사진이 가진 의미를 두고두고 기억해냈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힘들어도 하다보니 되더라.
 
이건 아니구요.
제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저런 거거든요.
 
하다보면 안될 때도 있고, 해도해도 안되는건 안되는 거지요.
안될 일을 억지로 하는 것도 참 못할 짓이예요.
힘들면 중간에 포기해도 되구요.
인생 그렇게까지 살 필요 없잖아요 ?
 
 
제 바램은 단지....
그때 아빠가 옆에 있었음을 기억해 주는 것 뿐입니다.
 
 
사실 이때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오르느라 쉬느라...
이번 라이딩의 뜻하지 않은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한참을 내려옵니다.
오르막이 긴만큼 내리막도 깁니다.
체감상 수안보쪽에서 오르는 것이 문경쪽에서 오르는 것보다 쉽게 느껴집니다.
코스 고도를 봐도 그래요.
이쪽 가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문경을 지나 불정역에 도착한게 대략 5시쯤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6시쯤....
검색해보니 점촌으로 가서 서울로 귀경하느냐, 상풍교까지 가서 상주를 통해 귀경하느냐 결정해야 합니다.
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고려해야 하구요.
 
근데...
상풍교 옆 풍양이란 곳에 늦게까지 서울가는 차가 있다네요.
시간이 충분해 보여 이렇게 길을 잡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건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누군지 잡히기만 해봐라.
 
100_5497.jpg
 
이때가 저녁 7시쯤 됐을겁니다.
날은 저물어 가고 갈길은 아직 남았고 아이는 지쳐가고 노을은 빨갛게 물들어 가고...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은 시간대와 라이딩 코스였습니다.
혼자였다면 여유로왔을 겁니다.
 
진정한 여행은 의도치 않게 찾아오고 황혼의 올빼미가 날아 오를때 여행자의 감성도 깨어납니다.
 
어둑어둑할 무렵 상주 상풍교에 도착합니다.
아이는 울먹울먹 직전 상태였지요.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집에 갈 걱정, 시골 저녁의 어둑어둑함, 인적 없음의 무서움, 결론적으로 엄마가 보고 싶어~~였습니다.
아이는 처음 겪는 상황입니다.
아마 오래 갈 기억일 겁니다.
부디 잘 단련되길 바랍니다.
 
상풍교를 건너 약 3-4km 가면 경북 예천군 풍양면 소재지가 나옵니다.
저희 라이딩의 최종 종착지였죠.
풍양버스정류소에 도착한건 8시 10분경.
사전 파악한바로는 8시 반에 서울가는 차가 있다 했는데.....
 
"서울 막차는 저녁 6시 50분인데 ?"
 
턱.....
 
매표소 주인 할머니의 말씀에 제 멘탈도 저멀리~~
 
인터넷 정보가 잘못된 거였죠.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합니다.
방법이 없죠.
 
다행히 저녁은 먹었으니 숙소만 구하면 됩니다.
면사무소 옆에 모텔이 있답니다.
다행히 조용하고 온수가 나온답니다.
샤워를 하고 미쿡 단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합니다.
울먹거리며 의기소침해졌던 아이도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며 기력을 회복합니다.
 
여벌 옷이 없으니 홀랑 벗고 잡니다.
아들과 둘다 홀랑 벗고 자기는 처음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눈을 뜨니 새벽 다섯시 반입니다.
잠은 잘만큼 잤습니다.
아들도 깨어 납니다.
샤워를 하고 어제 입은 져지와 빕을 입습니다.
견딜만합니다.
어제 신은 양말과 장갑을 낍니다.
견딜...만은 했습니다.
 
100_5501.jpg
 
자 !! 날이 밝았다.
어택 !! 어택 !!
다시 길을 달립니다.
새벽 공기가 상쾌합니다.
시원하고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근데 주변에 축사가 있나봐요.
냄새가 아유~~~
 
100_5504.jpg
 
길을 상주보로 잡습니다.
다시 상풍교를 건너와 이제부터 낙동강길을 달립니다.
길이 좋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급경사입니다.
전망은 좋은데 라이딩하기는 무리더군요.
어제처럼 천천히 오릅니다.
안개가 개이면서 낙동강이 흘러갑니다.
강이 참 넓습니다.
 
100_5506.jpg
 
상주보에 도착하니 9시 반쯤 됩니다.
기다렸다 수첩 인증을 받습니다.
하루 사이 얼굴이 많이 핼쓱해졌군요.
아직은 달릴만합니다.
 
100_5509.jpg
 
상주로 가던 중 찿은 시골 식당입니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하시는 식당인데 메뉴가 단촐합니다.
아침으로 먹을 수 있는건 칼국수 밖에 없더군요.
먹고 나니 부슬부슬 비가 옵니다.
비를 핑계삼아 한참을 쉽니다.
 
100_5515.jpg

드디어 상주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은 집에 간다는 기쁨보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놋데리아 불고기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더군요.
초딩의 단순함이란...
 
저희가 이틀동안 달린 거리는 약 130km
사실 긴 거리는 아닙니다.
소조령과 이화령이라는 고개가 힘들긴 했지만 사실 제일 큰 어려움은 낯선 상황에 대한 무계획적 상황이었지요.
살면서 이런 혼돈의 카오스를 만날 때가 어디 한두 번인가요 ?
지나고 나면 별다르지 않고 그저 그런 경우일 뿐이지요.
 
아이도 앞으로 무수히 많은 경우를 겪을 것입니다.
그 때는 제가 옆에 없을 경우가 많겠지요.
제 아이가 그 첫번째 경험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바램요 ?
그때 아빠가 옆에 있었음을 기억해주는 것.
 
저희 라이딩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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