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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식은커피
게시물ID : panic_103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클레버골드
추천 : 1
조회수 : 7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5/04/07 17: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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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식은커피

 

식은 커피 한 잔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김남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평범한 인테리어, 잔잔한 음악, 잿빛 창밖으로 번지는 늦은 오후의 저무는 햇살이 비치는 카페였다.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한 그는 일어섰다. 문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가자 유리문은 마법사의 결계 벽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그때 였다. 눈 앞 허공의 보이는 13 이라는 숫자.

 

이거 뭐야?”

 

카페 안 몇 명의 사람들이 쳐다봤고, 멋쩍은 듯 남우는 남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계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 어디에도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굉장한 폭음을 내며 저 멀리 자동차 한 대가 보인다.

 

..? ..??”

 

창밖에서 달려든 불빛. 끼익!

 

그리고, 정적.

눈을 떴을 땐 다시 처음이었다. 식은 커피, 동일한 자리에 앉은 자신.

순간 ...’

옆구리에 전해져오는 고통. 아무래도 차가 들이받은 곳 같다.

다행히 실제의 고통은 아니었다. 그저 아팠다는 것 만 느껴질 뿐.

 

김남우는 다시 문을 열어보려 애쓰지만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대체...’

 

그리곤 다시 눈 앞 허공의 보이는 13 이라는 숫자.

 

불길함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저주 받은 숫자? 꿈인가? 영화속에서만 보던 무한루프 이런건가? 아 그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정리의 끝을 맺기 전에 다시 차가 돌진한다.

 

다시 처음이었다. 식은 커피, 동일한 자리에 앉은 자신.

이번엔 얼굴 쪽이 욱씩 아파온다.

 

남우는 갑자기 소리쳤다.

 

여러분 곧 차가 돌진 할 겁니다. 모두 여기서 나가셔야해요.”

 

한 사람이 움찔하는 게 보였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은 미친 사람처럼 혹은 모른 척하며 각자의 볼일을 보았다.

 

반복.

 

저기요~ 여러분 제가 미친 사람이 아닌데요. 혹시 이 문 열어 주실분 계신가요? 제가 백만원 드리겠습니다.”

 

아까 움찔하던 사람이 문을 열어주었지만 남우는 나갈 수 없었다.

뭔가에 막힌 듯이 판토마임이나 슬랩스틱 코미디라도 하는 양 허공을 밀었다.

또 몇 명의 사람들은 행위예술가라고 치부하면서 그 상황을 웃으며 즐겼다.

 

반복.

 

이번엔 제일 차가오는 제일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았다. 이내 차가 들이 닥치고 운전자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차 앞 유리창으로 달려들었다.

xx. 얼굴이라도 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카페 지붕 벽돌이 그를 찍어 눌렀다.

 

반복.

 

이제 김남우는 생각보다 침착하게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손님은 남우를 포함해서 열세 명. 대부분의 얼굴은 낯설었다.

 

제일 먼저 매번 움찔거리며 호의적이던 청년에게 다가갔다.

 

혹시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 아 네.. 지금.. ......이네요.”

 

입은 움직이지만 아무소리도 입모양도 분명치 않았다.

 

그 때 였다. 허공의 숫자가 희미하게 12로 변했다.

 

그는 규칙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장소. 눈 앞의 커피, 13명의 사람들, 나갈 수 없는 카페, 이제 곧 닥쳐올 차, 변화하는 숫자.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고는

남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노인, 어린아이, 취준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노트북으로 무언가 타이핑 치는 청년에게

힘들지만 어떠한 말이라도 건넸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퇴역군이이었다는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함을 알게됐을 때, 이제 어린이집을 나와 유치원 생이 된다고 신나하는 어린 아이의 이름을 듣게 됐을 때.

숫자는 선명하게 줄었다.

 

계속 고통의 아픔을 느끼면서 마치 뭐에 홀린 듯 그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숫자가 2가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카페 사람들은 아파보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낯선 사람은 조용히 앉아있는 여인이었다.

남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얘기를 건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할수있었다.

 

하지만 숫자는 여전히 2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건 그녀의 가방에 부착되어진 임신 뱃지였다.

 

실례지만 몇 주 차세요? 제 아내도 얼마전에 임신을해서요. 그건 언제 지급되나요?”

 

물론 거짓말 이었지만, 그녀는 친절하게 답해주며 아기의 태명도 알려주었다.

 

태명이 사랑이예요. 아무쪼록 세상에 잘 나와 사랑스러운 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순간 숫자가 0이 되었고

남우는 뭔가에 얻어 맞은 듯 멍해지더니 그제야 기억을 되찾았다.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오후까지 해장술을 하던 자신의 모습.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차를 몰았다.

 

야 대리 불러!”

 

에이~ 이 정도쯤이야.”

 

그럼, 이거라도 마셔. 식긴 했지만...”

 

그때 받았던 식은 커피.

 

그는 졸음과 취기에 젖어, 그대로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채, 어느 카페를 향해 돌진했다.

 

저기요.. 저기요!”

 

..

잠시 생각을 마친 내게 임산부는 다소 싸늘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저는 이 분들과 달리 당신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요.”

 

어느덧 자신의 주위엔 그간 여러대화를 하던 분들이 서서 남우를 응시하고있었다.

아이는 울고 있었고, 어떤이는 팔장을 낀 채 혀를 차기도했다. 노인은 측은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 사랑이. 얼굴이라도 보고싶었다고요.”

 

김남우는 밀려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얼굴에 흐르지 않고 바닥에 떨어질 만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든 남우를 임산부는 채념한 듯 온 힘다해 빰을 날렸다.

 

찰싹!

 

원장님, 김남우 환자 눈 떴습니다. 살았습니다.”

 

흥분한 젊은 레지던트의 말에 의식을 되찾았을 땐 병원이었단 걸 알수있었다.

피투성이 된 얼굴, 석고에 감긴 팔다리.

의사는 중태에서 깨어났다고 말했다.

 

당신, 살아난 게 기적이에요.”

 

그 순간, 그가 본 건 방금까지도 그랬을 법한 응급실의 정신 없었던 현장, 수많은 피에 묻어있던 하지만 아무도 있지 않은 피 묻은 침대 보들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그의 진짜 형벌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살아남았다는 것이, 때로는 가장 무거운 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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