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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찍고있어, 봐봐!(약혐오주의)
게시물ID : panic_1035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클레버골드
추천 : 2
조회수 : 104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5/04/08 01: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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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제목 : 찍고있어, 봐봐!

 

남우야, 카메라 봐봐~ 웃어! 이 순간 남겨야지, 하나, , !”

 

...

 

왜 안찍어? 뭐야~ 동영상이야? 너 이거 초상권 침해야!”

 

하하하

여자친구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미묘하게 웃는 김남우의 얼굴이 기록되었다.

도심의 햇살 아래,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아 진짜~ 왜 이렇게 귀여워! 근데 자기야. 얼마전에 자기가 꽃 보낸거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백합이라던데?”

 

백합?? 아니 난 꽃 안보내지~ 내 몸에 달린 다른 꽃이라면 몰라도 하하하.”

 

으으~ 저질! 그래도 귀여우니깐 봐준다. 하하하. ~ 혜화동 너무 이쁘다.”

 

남우는 같이 웃었지만, 눈은 무표정해져갔다.

웃는 입꼬리와는 다른 온도였다.

남우에게 기댄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는 항상 좋은 남자친구였으니까.

 

그날 저녁,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익숙한 동네 이름이 올랐다.

 

자살까지 이르게 한 과거 여중생 성폭력 가해자 실명 공개?

 

남우는 습관적으로 뉴스 알림을 내렸다. 몇 일전부터 폭로의 폭로 글로 심경이 매우 복잡해진 그였다.

 

-

 

며칠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여중생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 입에서 김남우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었다.

 

저는 아니예요. 정말 저는 아니라고요. 뭔가 잘못아신 것 같은데. 그 날의 영상의 제 모습은 어디에도 없지 않습니까. 그냥 절 괴롭히던 녀석들이 제 이름을 거론한 것 뿐이라고요.”

 

그의 말이 맞았다. 그 수많은 영상 중에 김남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경찰 기록이 길어지자 결국 여자친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오빠 이게 뭐야? 유튜브에서 오빠 신상공개가 떴어. 아직은 모자이크인데 내가 오빠 못알아보겠어? 이게 무슨일이야?”

 

아니야... 예전에 날 괴롭히던 놈들이 나쁜일을 저지르고 또 다시 날 괴롭히려는 것 같아.”

 

여자는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남우를 위로했다.

 

우리 오빠 힘들어서 어떻해... 누가 이런 허위사실을 뿌리는 거야.”

 

남우는 마른 침을 삼켰다. 침이 없어 목구멍이 갈라지듯 살짝 아픔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머지않은 어느 날, 남우는 다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찍은 건 맞아요. 강요받았어요. 전 그저... 겁이 났을 뿐이라구요. 진짜 미치겠네. 그날의 영상 중 제가 찍힌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영상을 분석하던 조사원으로부터 김남우의 음성이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치지직... 알았어. 잘 찍고있어...치지직...”

 

음성 분석 결과, 영상에 삽입된 음향에서 잡음 사이로 잘 찍고 있어라는 목소리가 확인되었습니다. 말투와 억양이 김남우 씨와 일치하는 정황이 있어요.

아주 짧은 목소리지만 그날 이 자리에 계셨던 게 확인이 돼서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더 기억이 나시는 게 있거나 제보할 사항이 있으시면 꼭 제보 주십시오.”

 

담당 형사는 상황 설명을 하다

진술서의 한 부분을 사각이며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차가운 경찰서 안의 내벽과 동료 경찰관들의 힐끔거림 다수의 눈에 먹잇감처럼 대해지는 남우는 왠지모를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경찰조사가 끝날즈음, 경찰서로 황급히 달려온 여자친구는 김남우의 초췌한 모습에 뭐라고 따질수 없었다.

다만, 찰나였지만, 남우의 피하는 시선에 그전과 다른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남우는 집에 돌아와 거울을 봤다.

지금은 멀끔한 회사원이자 사랑받는 남자친구.

그 시절의 얼굴은 사라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거울 속 눈동자는 변하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얄팍한 생존 본능.

그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건은 오래된 일이었고, 명확한 증거가 부족했다.

피해자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지만, 세상은 명쾌한 정의보다 뚜렷한 영상 한 컷을 원했다.

 

미치겠네... 왜 이제와서 이런일이 벌어진거지?’

 

그러던 어느 날 밤, 그의 여자친구가 울며 전화를 걸었다.

 

남우야... 이거... 너 맞지?”

 

그녀가 보낸 링크를 눌렀다.

깜빡이는 재생 버튼.

남우는 손가락을 떨며 눌렀다.

화면 속,

전면 카메라.

자신의 얼굴.

헐떡이는 숨소리, 과도하게 벌어진 콧구멍, 희열과 광기에 들뜬 눈.

그날의 남우는, 기꺼이 괴물이 되었다.

그는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

 

개 쩐다. 진짜 죽이지않냐?.”

시끄럽고 잘 찍어 이 x신아~”

X나 꼴리네. 잘 찍고있어, 봐봐. x. 나중에 AV감독이나 돼 볼까? 크크크크

 

그의 목소리는 익숙하고, 너무도 선명했다.

회사는 해고 통보를 보냈고,

가족도 등을 돌렸다.

 

여자친구도 결국 차가운 욕설과 함께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그날 이후, 남우는 방 안에 틀어박혔다.

창밖은 여전히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노트북을 켰다.

압축된 폴더 하나를 꺼냈다.

무슨 일 있으면 포맷하자며 늘 정리해두었던 비상용폴더였다.

그는 조용히 폴더를 열고, 하나씩 삭제하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딸깍...

수천 수만의 영상들.

 

그는 영상 하나를 삭제할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

죄책감도 있었지만, 미련이 더 컸다.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은 중독된 사람의 모습이 되어.

 

모든 불법촬영물을 삭제한 것처럼,

자신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손에는 면도칼 대신 USB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과거의 모든 증거가 들어있는 그날의 기록.

 

죽을 용기도 없었다.

그저 USB 로 자신의 손목을 미친 듯이 긋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고작 해봐야 살이 붉게 오를뿐인 정도의 약함으로 말이다.

 

집에 설치된 홈 CCTV는 그런 그의 모습이 딱하다는 듯 노려보고 있을뿐이었다.

 

-

 

남우의 행동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여자는 마침내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혜화야... 내일 경찰서에 가. 그 자식 방에 있던 원본 USB 까지 모두 확보했어. 오래 걸려서 미안...내가 끝까지 갈께. 이걸로 조금이나도 편해지길...”

 

사진 속 혜화를 손으로 더듬으며 여자는 그제서야 참아왔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얼마전 스스로 산 백합 한송이가 사진 속 그녀를 더욱 그립게 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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