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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간이동
띵! 문이 열리자,
분명 이곳은 하와이 였다.
정확히는 하와이 해변과 가까운 위치의 있는 유명한 호텔 안 엘리베이터였다.
‘어디든 상관없으니, 춥지만 않았으면’하고 생각한 게 다였다.
아니어쩌면 이미 남우는 진즉 여기로 올꺼란 걸 예상이라도 한 듯
김남우는 준비해둔 선글라스를 끼고 해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이 벌써 8번째 이동이었다.
당혹감은 놀람으로 곧 엘리베이터를 찾는 기쁨, 발견했을때의 카타르시스.
중독성있는 기대로 바뀌었다.
엘리베이터는 늘 그가 간절히 바라던 장소로 데려다줬다.
탈 때마다 남우의 호흡에 맞춰 더운 공기가 나왔지만 그마저도 신비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일본의 어느 후미진 골목상가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온게 처음이었다.
김남우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냥 점심시간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통라멘이 먹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뿐이었다. 아쉽게도 일본돈도 돌아가는 방법도 몰라 회사에 크게 혼났지만 그런 건 이제 대수롭지 않다.
그 후, 엘레베이터 문을 볼 때 선분홍 빛으로 희미하게 감싼느낌의 엘리베이터만 타면 되는것이었다. 그리고 원하는 곳을 생각하면... 이것도 아니다. 그저 알아서 데려다 줄 뿐이었다.
시부야 뿐만 아니라 미드‘프렌즈’에서만 보던 뉴욕 센트럴 파크, 파리 루브르 박물관, 토트넘 핫스퍼스 스타디움도 갔었다. 물론 자리가 없어 서서 응원하긴 했지만, 인생을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이건 진짜 세상 어디에도 없는 프리패스야.’
그날 새벽, 남우는 마스크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오늘은 조금... 더 크고 은밀한 욕망이었다.
“이번엔... 걸그룹 멤버 혜화 씨 집 앞.”
그가 좋아하던 여자 연예인. 집안에 엘리베이터 가 갖춰진 몇 안되는 인싸 스타였다.
남우는 분명 망설였다. 확실히 이건 선을 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능력이 언젠가 사라진다면?’이라 생각하니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띵—
역시나 엘리베이터는 남우가 오고싶은 곳으로 순간이동 시켜주었다.
그녀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집 내부를 찍었던 그대로다. 집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땐 어찌나 흥분되던지 환호를 지를 뻔 했던 남우였다.
익힌 동선을 따라 성지순례를 하듯 집안 구석 구석을 구경하고 다녔다.
이렇게 돌아다닐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생방송 중인 라디오 스케쥴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홈 CCTV 같은것도 없어보였다. 이내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고,
그녀의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방 안은 라벤더 향이 감돌았고, 남우는 베게에 얼굴에 문질렀다.
이곳저곳을 뒤지면서 혼자만의 유희를 찾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후우~ 곧 그녀가 돌아올 시간이군. 아쉽지만,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순간 아주 잠깐 나쁜생각도 했으나 남우는 이내 이성을 되찾곤 엘리베이터를 탔다.
혜화씨 집안에 있던 엘리베이터에선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났다. 엘리베이터 내부도 뭔지모를 액체도 흘렀다.
‘하긴 연예인이 엘리베이터까지 꼼꼼히 청소할 리가 없지.’
아무말 안해도 아무 생각안해도 열렸을 땐 자신의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였다.
품속에 그녀의 속옷 몇 장을 들고 온 남우는 그렇게 오늘도 잊지 못할 기분을 마스크 속 미소로 대신했다.
신과 같은 능력을 알게 된 김남우는 반복적인 이런 생활로 점점 직장생활에 태만해졌고
그가 바라던 꿈은 옅게 바래졌다.
친구들과 모임 보다 애인과의 데이트보다
엘리베이터와의 여행은 그의 토파민을 쉽게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었지만 남우는 엘리베이터로 찾아다녔다.
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 내가 제일 가고싶은 곳으로 인도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요근래 분홍빛 형광을 띤 엘리베이터를 쉽게 찾을수가 없었다.
‘아놔~ 가고싶은 곳이있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쉽사리 눈에 띄던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 지역을 상가를 다 돌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한 겨울에 반팔에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다리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회사에 무단 결근을 하더라고 애인과의 약속도 잊은체 계속 찾아 해매다녔다.
남우의 바램은 점차 집착이 되어갔다.
벌써 2주나 못찾은 것이었다.
‘내가 이기나 너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그리고 늦은 저녁, 폐건물로 보이는 곳에서 작동하지 않을법 한 엘리베이터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우에겐 그건 걱정요소가 아니었다. 다가가 버튼을 누르니 여지없이 전기도 안들어오는 문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입냄새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내부바닥도 미끌거리는 애액으로 유쾌하진 않았다.
마침내 이뤘다는 남우의 웃음 사이로 문이 가렸고, 이내 한번도 나지 않은 소리가 났다.
꿀꺽~!
-
한참 후, 폐건물 속 어딘가에서, 철심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넌 인간도 참 잘 먹는다. 비결이 뭐야?”
“그냥, 그들이 원하는 걸 해주면 돼. 그럼 배고파 질 때 쯤 스스로 뱃속으로 걸어 들어오거든. 그걸 원하게 만드는거지. 하하하...
넌 아직 그 ‘원함’을 만들 줄 모르잖아. 이게 차이야, 평범한 녀석아. 그리고 립밤이라도 발라~ 사람들이 넌 줄알 고 타겠냐? 나, 저기 또 한 놈 정신줄 놓을 때 됐어. 나 간다. 화이팅!”
그렇게 붙어있던 하나의 엘리베이터는 어둠 속에서 선분홍색 입술의 색을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