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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재미는 없겠지만 잠시 들어줄래?
내 얘기를 좀 해볼게.
그냥 들어줘. 너에게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니깐...
꼰대 소리 할 거냐고? 아니야. 어쩜 그럴 수도 있어. 그래, 그래도 들어봐.
너희들은 정말 너희들이 힘들다고 느끼지?
그거...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내가 6살 때, 난 혼자가 되어야만 했어.
난생처음 간 놀이공원에서 부모라는 작자들이 날 버리더라고.
입양 위탁소로 들어간 나는,
피부가 뽀얀게 그동안 잘 산 것 같다며 14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형들에게 구타를 당했지.
불행 중 다행인 건 97년도 새해가 돼서 양부모가 생겼다는 거야.
그런데 기쁨도 잠시 반년쯤 흐를 무렵, IMF라는 게 터져.
날 부양하기 힘들 정도로 가세가 기울어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들의 소중한 아이도 이듬해 태어났어.
난... 난... 스스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어.
그나마 양부모가 날 버리지 않았던 건 말 잘 듣고, 눈치 빠르고, 공부도 잘했기 때문이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생긴 것도 잘생겼거든.
그런 어린 시절을 겪으니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어.
그러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홍혜화 누나를 보게됐지.
그거였어. 지구를 떠나고 싶다. 저거다 싶더라.
난 NASA 에 들어가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어. 공부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면에서도 남들에게 뭐하나 뒤지고 싶지 않았지.
어린나이에 원형탈모가 오더라. 얼마나 앉아서 공부만 했던지 그 나이에 치질이 오더라. 그 어린나이에 몇 달동안 방안에서 공부만해서 햇빛을 못봤더니 각종 피부병에 걸리더라. 부교감신경이 고장나서... 후우~
아무튼 난 결국 해냈어. 한국인 두 번째 공식 우주인이 되었지.
너희들도 내 이름쯤은 들어봤겠지?
그래. 나야~ 김남우.
NASA 에서의 훈련은 더욱더 고됐어. 공부할 것도 많았고, 말도 안되는 테스트도 비밀리에 시행했지.
이건 비밀인데.. 완전한 고립 상황을 만들고 어느정도 지나면 정신이 망가지는 지도 실험하더라.
거기서도 난 2년 134일 12시간 37분 19초를 견뎠어.
신기록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광적이었는지 모르겠다.
“허세처럼 들린다고? 그럴수 있지... 다만 난 우주에 꼭 나가고 싶었나봐!”
계속 들어줘.
결국 너희들이 알고있는대로 난 비행사가 되었어. 우주로 나간 두 번째 한국인.
너무 황홀했어. 마침내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잖아.
모든걸 감내하면서 견딘 보람이 있을 뻔 했어.
삐삐삐!!!
아, 이 소리? 경고음이야.
나 지금... 우주에 고립 돼있어. 도킹에 실패하면서 우주선에 큰 파손이 일어나서
급하게 대피하다 우주로 팅겨져 나온거야.
아직은 운이 좋은걸까? 나머지 대원들은... 살아는 있으려나...
후우~ 산소는 이제 4시간 가량 남았고, 지구랑은 마지막으로 교신 두절된 지 4시간째야.
“어때? 너희들이 힘든 건 힘든것도 아니지?”
그치? 장난 아니지? 너희들은 겪으라면 할수있겠어?
눈 앞이 깜깜해. 아니! 진짜 깜깜해. 아무것도 안보여!
빛도 우주선의 잔해도 생사고락을 함게하던 동료대원들도.
여긴 소리가 없어. 내 숨소리만 들리니 더 무서워져.
이제 곧 공기도 없어지겠지...
외로움?
나한테 외로움이란 단어 쓰지 마.
오늘 내 생일이야.
생일초 대신 지금 산소 경고등이 들어왔다고~!!!
삐삐삐!!!
산소 알림 경고음이야. 왜?! 생일 축가인지 알았어?
너희는 ‘힘들다’ 말할 친구라도 있잖아.
난 그 말을 할 상대도 없어.
아무도 내 신호를 받지 않고, 아무도 내가 살아 있는 걸 몰라.
위치를 알아도 누가 오겠니... 3시간 정도 남은걸...
그리고 그게... 점점 익숙해져 가.
너희들이 사는 지구는 얼마나 편한 줄 알아?
중력이 있어서 발 디딜 땅이라도 있잖아.
“나 지금 떠다니고 있다고. x발!”
미안, 순간 격해졌다. 익숙해진 단 말은 취소할게.
내 다리는 뭘 밟을지도 모르고, 내 심장은 뭘 위해 뛰는지도 몰라.
진짜 고립이 뭔지 알아?
바로 이거야.
우주에 혼자 있는 거.
“어때? 이래도 허세처럼 들려?”
하아~ 그래도 우주 예쁘다.
-
(주변이 조용해진다. 마치 감동적인 침묵이 흐르듯.)
그때 갑자기 누군가 외친다.
“야! 김남우 허세 지수 97점이야!! 개쩔어ㅋㅋㅋㅋ 방금 VRSSO 신기록 보유자됐어.”
“뭐야~ ㅋㅋㅋ 얘 또 혼자 시뮬해? 이번엔 어디갔는데?”
“이벤엔 우주라나 봐”
“저번에 심해고립 졸x 웃겼는데”
“야, 근데 얘 지금 눈물까지 고인 것 같은데? 얼마나 몰입돼 있는거야? 진짜 배아파.”
“김남우~~~ 그만 빠져 VRSSO.(Virtual Reality Showing off Online). 제발ㅋㅋ”
(현실은 밝고 시끄럽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웃고 있다.)
김남우는 여전히 VRSSO 기계를 끼고 있다.
표정은 진지하고, 입은 작게 중얼거린다.
“...허세 아냐... 진짜야... 나 지금... 떠다니고 있다고...”
(스크린은 여전히 가상화면 속 우주를 비춘다.
김남우는 그 안에서 조용히, 우아하게... 그리고 열심히 떠다닌다.
한 줄기 눈물이 귀를 타며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