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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함성 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벤치에서 바라 본 관중의 모습은 이글거리는 불사조였다.
용광로의 열기 이상이었고, 함성은 피부를 관통했다.
벤치가 떨려올 정도로...
퇴물.
김남우.
한때 온 국민을 웃고 울리던 국가대표 선수.
영원한 슈팅의 마에스트로. 전설의 10번.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팀에서 가장 나이 많은 벤치 멤버일 뿐이었다.
은퇴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은 남우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월드컵 통산 3골. 리그 득점왕 4회. 한 시즌 리그 최다골 37골.
전설과도 같은 수많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적은 없었다.
작년 평균 경기당 23분. 한시즌에 고작 2골 1도움의 초라한 성적표.
언제부터인가 무릎도 따라와 주질 않았다.
김남우는 더 이상 제대로 축구를 즐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를 향한 팬들의 응원소리도 점차 눈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은퇴를 생각한 이번 시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위권을 멤돌던 그의 팀은 운좋게 리그 우승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의 커리어에 마지막 이정표를 쓸 수 있는 기회. 한층 더 명예를 드높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잘 알고있었다. 올해 자신은 패배가 결정되거나 버려도 되는 경기에만 뛰었다는 것을.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젊고, 훌륭한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뛰지않는 것이 팀이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
남우는 중얼 거렸지만, 경기장의 잔디 냄새와 관중의 함성으로 피가 끌어오르고있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오늘 스타팅 멤버의 선수들이 모두 남우 앞에 서있었다.
“남우선배님 저희가 뛰는 걸 꼭 지켜봐주세요.”
“형! 이기고 올께요.”
“선배, 선배만이 저희를 단합시킬 수 있어요. 알죠?”
막내들은 심한 나이차이로 우물쭈물 거렸다.
남우는 막내들에게 어깨를 토닥였다.
“어이~ 막내들! 걱정마. 이 대선배가 벤치앞에서 그 누구보다 소리놓여 응원하마!”
그말을 들은 막내들은 눈빛이 달라졌고, 한층 몰입했다. 전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고마움에 고개 숙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 모르겠어, 나에게 미안하겠지. 나 대신 뛰는 앳된 녀석들이니.’
모두 다시 한번 남우를 바라보았다. 눈빛엔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그라운드로 내달렸다.
시작이다.
경기는 팽팽했고, 공격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김남우는 유니폼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했다.
짧은 눈 마주침. 간절한 느낌. 지금 이 순간 누군가 골을 해결해줘야 할 타이밍.
감독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벤치의 전설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돌아섰다.
초조한 듯 다시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쳐다봤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몸을 풀려고 하는 김남우의 모습을 보곤 주먹을 꽉 쥐며, 온 힘을 갈아넣었다.
주장은 김남우에게 와 소리질렀다.
“남우형~! 우릴 믿어줘. 꼭 이길께. 꼭 이길테니 지켜만 봐!!!”
녀석들은 알고있었다. 조금만 더 뛰면 내 무릎이 아작난다는 것을.
남우는 분한 마음에 자신의 무릎을 칠 뿐이었다.
우와와와아~~~
후반 89분. 드라마 같은 골이 작렬했다.
1대0. 기적 같은 골.
그는 벤치에서 누구보다 크게 환호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비록 이 우승의 자리에 서진 못했지만, 그들에게 분명 제 역할을 했다고 믿을뿐이었다.
‘그래, 이걸로 충분하다. 이게 팀이라는 거겠지.’
트로피를 든 선수들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리고 MVP로 선정된 스트라이커가 말했다.
“이 우승은 김남우 형 덕분이에요. 형 정말 고마워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김남우는 숙연해졌다. 감동이 벅차올랐다.
눈시울은 어느새 그가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고개를 숙였다.
이제 은퇴를 앞둔 전설의 선수는 오래도록 이런 말을 기다려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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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뛸지 알고 저희 모두 필사적으로 뛰었어요. (하아~)
몇 명은 형이 출전안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했었는데. (하아~)
오늘 내보내 달랄까봐. (하아~) 무서웠어요.
형이 감독님보다 나이가 많잖아요. (하아~) 주장형 말 들어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승의 기쁨이었을까? 목소리는 세상 쩌렁쩌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