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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네 말은 그곳에 갔더니 좀 더 빨리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는다 이거지?”
다이어트가 최고의 성형이었다는 걸 입증시켜준 친구 녀석은 연신 고개를 끄떡였다.
‘뭐 엄청 예쁜 PT 트레이너라도 있는건가?’
최근들어 부쩍 과체중이 된 김남우는 그렇지 않아도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문제는 운동은커녕 집 앞 산책도 귀찮다는 점이었다.
체중을 재고 한숨을 내쉬며
‘아, 이러다 100Kg 찍는거 아냐.’
속는 셈 치고 친구가 알려준 곳에 방문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헬스장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야외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문.
한 쪽은 전면 거울로 이루어져 있있고,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반대쪽은 넓히는 건지, 뭔가를 더 설치하려는 건지 거대한 가림막이 가려져 있었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큼한 땀 냄새가 코를 찔렀고, 90~00 년대 유행하던 댄스풍 노래들이 귀를 때려 박고 있었다.
“고객님. 처음 오셨나요? 부담 갖지 마시고 하루 체험해 보세요.”
어딜봐도 예쁜 PT 트레이너 누나를 찾지못해 아쉬웠다.
이렇게 온 것이 아까웠던지 남우는 대충 가벼운 아령 몇 번 들어올려보고, 거울을 보며 스트레칭 몇 번 하고는 이내 주변을 흘끔거리며 러닝머신에 올라갔다.
겨우 평상시의 발걸음으로 어쩐지 운동보다는 러닝머신 앞 모니터에서 나오는 걸그룹의 안무에 더 집중하는 남우였다.
가요방송도 끝날 무렵 미세하게 땀도 났다.
‘역시 헬스장은 뭔가 나랑 안맞아.’
-
다음 날 김남우는 미칠 듯 할 근육통으로 고생하게 된다.
“와씨! 아령 몇 번 들고 스트레칭했다고 이렇게 온 몸이 아프다고? 말도안돼!”
오늘은 아파서라도 못가겠다던 남우는 욕조에 뜨거운 물받아 온 몸을 풀고 있었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온수 찜질을 마친 남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체중계에 몸을 실었다.
“뭐어~! 4.5kg? 게 원래 하루 만에 빠질 수 있는 건가?
찜질 효과인가? 뚱뚱할수록 빠지는게 극적인건가?
아씨! 뭔 운동을 해봤어야지. 알지!”
헬스장에 가고 싶지 않던 남우는 어떡해서든 안 갈 핑계를 생각해 보지만 4.5Kg의 유혹은 꽤나 컸다.
오늘은 체험이 안되었다. 등록비를 낸지 불과 27분만에 후회가 밀려왔다.
역시나 운동과는 안맞는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스트레칭을 조금 더 했다. 아직 몸 이곳저곳이 쑤셔와서 어쩔 수 없었다.
러닝머신에 올라간 남우는 이것저것 채널을 눌러보곤 걸음정도의 스피드를 올렸다.
‘오늘은 영화나 보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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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다시 근육통이 찾아왔다.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니~! 이게 ... 하참! 내가 국가대표 경기를 뛴 것도 아니고 이게 말이돼?!”
그런데 체중이 빠져있다. 근육통의 근육통이라서 그런지 어제 보다는 덜 아픈 느낌이었다.
매일 매일 체중은 빠졌다. 근육 운동을 한 적은 없으나 근육이 붙고있었다.
일주일 쯤 되자, 헬스장에 다녀오자마자 지쳐서 야식으로 폭식을 하고 말았다.
‘원래 치팅데이라고 일주일에 한 번은 먹고 싶은거 막먹어도 되는거야.’
치킨, 피자 한판, 라면과 콜라 2리터, 튀김과 떡볶이까지...
다 먹고 난 후 남우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살이 빠졌다.
체력도 붙기 시작하고 곧잘 무거운걸 들수있게도 되었다.
19일 후, 김남우는 몰라보게 멋진 몸매가 되었다. 트레이너분과도 많이 친해졌다.
‘아씨~ 핸드폰!!?’
다행히 헬스장은 마무리 정리를 하고있었다.
“트레이너 형, 핸드폰 좀 찾고 나올께요.”
“어, 그래. 우리도 씻고 그래야하니 천천히 잘 찾고 들어가. 미안한데 불은 약 등 하나만 켜줄게. 이 시간에는 끄는 게 지침이라서.”
어디다 흘린걸까 이곳저곳을 찾다가 공사하는 가림막 쪽 후미진 곳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려는 순간 이상함 낌새를 눈치 챘다.
남우는 구부정한 자세로 눈동자만 후면을 바라봤다.
거울 속 자신이 엄청 열심히 운동을 하고있었다.
김남우는 자신도 모르게 악!하는 소리를 질렀다.
거울 속 남우도 당황했는지 잠시 운동을 멈추고 안절부절하였다.
“자..잠깐 남우야. 놀래지마!”
남우는 거울이 말을 걸어오는 상황에서도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너.. 너 뭐야.. 나랑 닮았는데 엄청 멋있네. 잘생겼다.”
김남우는 얼굴만 닮고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몸은 너무 과한거 아니냐는 말은 차마 할수없었다.
“나는 너의 여러 의식 중에 운동을 하고싶어하는 의식체야. 본체인 네가 와야지만 그 짧은 시간에 운동을 할수 있어서 아~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난 운동중독이야.”
“혹시 너가 운동해서 내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었던 거야?”
“어, 맞아. 운동하기 싫어하는 너의 사념체가 날 만들었어. 나도 왜 만들어 진지는 몰라. 다만, 운동이 하고 싶었어.”
이제 자신이 왜 헬스장만 다녀오면 근육통이 생기고, 체중이 빠졌던 이유가 납득되기 시작했다.
“저기... 귀찮아서는 아니고 그냥 너가 여기서 계속 운동하면 안되는거야? 너무 많이 하진 말고 적당히!”
“안돼. 너가 와야만 내가 운동할 수 있어. 그것도 온다고 해서 매번도 아닌 것 같아. 요기 거울아래 붉은색 표시보여?”
“어! 8?”
“하하하. 본체인 너는 웃긴애구나.”
“아무튼 이 거울에 너가 노출이 되야 내가 깨어나는 것 같아. 너가 운동효과를 보려면 이 앞에서 하는 게 제일 좋지. 스트레칭이라던가. 이해했어?”
김남우는 비밀을 알고는 알지못할 희열을 느꼈다.
의식체인지 사념체인지는 힘들면 그저 가끔와서 조금 거울앞에서 쉬다가라고 말했다.
저런 근육맨이 혹시라도 헬스장에 안올까 간절하게 부탁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김남우였다.
그 뒤로 김남우는 아예 그 거울 앞에서 잠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가는 일이 많아졌다. 대략 30분정도 머물다 갔다.
근육이 과하지 않게 조절까지하면 나왔다.
가끔 그 거울앞으로 얼굴에 뭐 묻은걸 털어내는 척하며 낮은 목소리로 주문까지 넣었다.
“다리, 다리”
“복근, 복근”
“어깨, 어깨”
이제는 모델이라해도 손색없는 몸매.
“트레이너 형! 안녕하세요. 공사 끝났나 보네요.”
“나왔어...오늘은 가슴부탁해.”
나지막히 속삭이던 남우는 거울에 손을 짚더니 앞 자리에 앉았다.
유튜브를 틀자마자, 남우는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한번에 느꼈다.
사념체에게 손을 뻗어 입을 열어보려한다.
“하...하지..마. 운동..하지마.. 커...커헉...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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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깁니다. 형사님”
마형사는 헬스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얼마 전 헬스장에 갑자기 쓰러진 김남우.
온몸의 근육세포가 갈기갈기 찢어져있었다.
부검의는 이렇게 운동을 할거면 엄청난 양의 프로틴(단백질 보조제)이 필요했을거라고 추측했다. 스테로이드 주사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마형사는 천장 구석을 보더니 헬스장 트레이너에게 CCTV를 돌려봐달라고 부탁했다.
영상의 김남우는 헬스장에 들어와 트레이너와 인사를 하고,
거울에다 손을 올렸다 바로 앞에 자리잡아 유튜브를 틀고 곧 괴로워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헬스트레이너도 의사도 경찰도 이 의문의 죽음에 어리둥절했다.
‘심장질환도 아니라 과도한 근육파열로 온 신경이 찣겨죽었다라...’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마형사는 마지막 김남우가 유튜브를 보다 쓰러진 곳에 앉아보았다.
‘집에는 약물이나 프로틴은커녕 인스턴트식품과 배달음식의 흔적만 있고... 흠...’
이내 서서히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봤다.
천장도
바닥도
우측에 밖이보이는 풍경도
좌측에 데스크도 이상할 점이 없었다.
그저 형사의 고심하는 모습을 앞 뒤에 거울의 표시대로 서로를 교차해 무한대(∞)를 만들고 있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