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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계약 울음
게시물ID : panic_103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클레버골드
추천 : 1
조회수 : 6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5/04/12 17: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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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우는 울 줄 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는 연기'만 잘한다..

무명배우 15, 대사 한 줄 없는 단역 속에서도 눈물 한줄기는 늘 정확하게 뺄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없다는 이유로, 그 눈물은 '기술'이라 불렸고, 김남우는 늘 뒷전이었다.

그가 연기자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장 차림의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내일, 성 회장님의 장례식입니다. 당신처럼 울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 회장의 비서였다.

 

조건은 간단합니다. 자연스럽게 울어야 합니다. 참석자들이 진짜라 믿게요.”

대가는요?”

“10억 원입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심드렁하게 묻던 김남우는 얼른 자세를 고쳐앉았다.

 

연기를 다시 한다는 설렘보다는, 감정이 메말랐다는 두려움이 컸다.

눈물은 나오는데, 울지 못했다.

마치 기계처럼.

가려던 비서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성 회장님, 어떤 분이셨나요?”

비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지였던 어린 시절, 빵 하나 훔쳤다가 잡혔습니다.

혼내시지 않더군요.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절 장발장 이야기는 몰랐지만,

장발장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어린 저를 거둬주셨고, 일자리를 주셨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재벌분이 계시는군요.”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겼고, 혼자 남겨진 사람들을 늘 도왔어요. 본인 이름은 어디에도 남기지 않았죠.”

 

따뜻한 분이셨네요. 아주. 따뜻한.”

 

비서는 말을 이어갔다.

 

젊은 시절 한 번의 실수를 했다고 했습니다. 휴식차 갔던 섬마을 여행에서 가족들 모르게 어떤 분과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눴다고 했습니다.”

 

김남우는 불현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목이 메어 단어가 끊겼다. 심장의 요동침이 묘하게 아프게 뛰었다.

 

. 어쩌면 성 남우 님 되셨을 수도 있었겠죠. 회장님도 이 사실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아이를 낳은 것도 몰랐고 장성하여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죠.”

 

하아~ 그렇게 된 거였군요. 그저 어머니는 어린 시절,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고만, 다시는 입에 올리기도 싫다고 하셔서 그렇게 살았는데...”

 

혹시 증오하시거나 분노가 느껴지시나요?”

 

아니요. 항상 그런 줄 알았기에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몰래 술을 드시며 눈물로 지새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너무 자주 너무 많이... 그렇게 어머니도 돌아가셨지요. 그래서 이젠 저도 자동으로 눈물이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정말 모르셨습니다. 이번에 돌아가시면서까지 어떡하든 김남우 님을 가족으로 올리려 했으나 상속을 받을 다른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죠. 그리고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죄송합니다.”

 

계속 더 얘기해줄 수는 없나요? 제 아버지에 대한...”

 

당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신 적이있다고 하십니다. 회장님께서 연기였지만, 당신의 눈물을 보고 많이 흔들리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회장님의 분부로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드리러 온 겁니다.”

 

저를... 보러 오셨었군요...”

 

김남우는 더 많은 이야기를 원했다. 성 회장이란 사람에 대해 알아갈수록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담아 비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비서가 돌아간 뒤, 이상하게도 그날 밤, 혼자 울었다.

아쉬움도 분노도 아닌 순수 눈물이었다.

 

-

 

장례식 날.

 

검은 우산들 아래 흐르는 향냄새, 눅눅한 땅, 낮게 깔린 조문객들의 속삭임... 그 한가운데 김남우는 조용히 서 있었다.”

조문객들 속에서 김남우는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영정 사진 앞에 다가간 남우는 입을 다문 채,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리 없이 흐느꼈고, 곧 들리지 않던 울음은...

목을 타고 올라와 뜨거운 쇳물처럼 터졌다.

그것은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아니라, 처음으로 누군가와 연결된 감정이었다.

김남우는 울음을 통해 뭔가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눈물은 뺨을 따라 계속 흘러내렸고,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겨우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근조 화환 뒤에서, 수십 명이 김남우를 바라봤다.

 

저 사람... 누구야?”

저런 지인이 있었어?”

가족도 저렇게는 안 우는데...”

 

장례식이 끝난 뒤, 비서는 앞으로 나섰다.

여러분, 방금 보신 분은 성 회장님의 지인입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 눈물은 연기가 아닙니다. 성 회장님을 기리는 진심 어린 마음이었습니다.”

그분이 살아온 삶이,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오늘처럼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제 유언장을 발표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온 많은 지인 중 내 가족보다 나를 더욱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우는 자가 있다면 가족들에게는 일부만 상속하도록...”

 

누군가 갑자기 말을 끊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게 어딨어?”

 

가족들의 표정은 굳어졌고, 누군가는 어금니를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반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날 가장 진심으로 울던 사람은...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손 변호사님께 들으시면 됩니다.

유언장의 내용을 계속 말씀드리자면 혹시 가족 중 유언장의 내용에 반박하거나 법적으로 대처할 경우 그의 가족에겐 일체 상속하지 않는다.

 

장례식 전체 영상은 법적 효력을 지닙니다.

둘째 아드님은 반박하신 겁니까?”

 

..아니야. 난 끝가지 못 들었었잖아

 

반박하던 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성 회장님의 뜻에 따라 기부재단에 맡겨집니다. 그게 그분의 마지막 의지입니다.”

 

-

 

장례식장 밖.

비서는 조용히 김남우에게 말했다.

당신의 연기,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김남우는 말했다.

그분 얘길 듣고 나니, 그냥...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느끼지 못한 진심 같은 거였습니다.”

 

비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할 나위 없네요.”

그게 그분의 마지막 일이었으니까요.”

점점 나지막하게 말을 흐렸다.

 

돈은 가족들의 상속문제가 끝나는 대로 입급해 드리겠습니다. 분명 뒷조사를 하면서 배우였다느니 뒷돈을 받았다느니 할 테니 말이죠.”

 

, 그러고 보니 제가 잘나가진 않는 무명배우이긴 하나 들키면 회장님 명예와 비서님이 곤란해지시는 거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성 회장님은 많은 연기자분과도 교류가 많던 분이시라.”

 

집에 오는 길에 남우는 처음으로, 자신이 배우라고 느꼈다.

자신의 연기에 항상 부족했던 메말랐던 감정의 벽에 균열을 일으킨 것 같았다.

 

-

 

[성 회장 장례식 12일 전]

 

성 회장님. 전 이해가 안 갑니다.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냥 가족들에게 상속 안 하고 재단에 기부하는 방법도...”

 

이 사람아~ 아직도 모르겠어? 난 죽어서라도 배우가 돼보고 싶은 거야.

내가 살아선 연기를 못 했지만, 죽어서라도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연기 한 장면으로 남기고 싶었어. 그래... 그거면 됐다 싶더라고.”

 

그렇다면 왜 김남우라는 자입니까?”

 

~, 예전에 같이 연극 활동하던 친구의 고별무대를 갔는데 그녀석이 나타나 고성태 아저씨 친구분이냐면서 엄청 싹싹하게 대하는 거야. 자리도 안내하고 음료수도 사주고.

근데 그 녀석이 연극을 망쳐버렸지 뭐야. 울고는 있는데, 감정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거야. 딱 옛날 내 모습이더라고.

하하, 내가 죽어서라도 그 아이에게 진짜 감정이 뭔지 알려주면, 잘 나가지 못했던 연기자 선배로서 마지막 역할을 하는 셈이지.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보니 내 마지막 바램은 우리 비서가 연기하게 생겼구만. 하하하. 얼른 해보게 내가 알려줄게.”

 

곤란해하는 비서와 웃음이 끊이질 않는 성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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