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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애기똥풀
게시물ID : readers_103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부버섯전골
추천 : 2
조회수 : 33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2/14 19:34:08
 
-애기똥풀
 
그런시기가 있었다. 자라나야할 아이들이 부모손에 메여 뼈만 앙상한 채로 죽어가던 시기. 개울에서 멱이나 감으며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던 아이들에게 참혹한 전쟁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에게 그들이 잡은 부모의 손이라는 것은 생명줄과 같았다. 물밀듯 밀려오는 피란민에 미아가 되거나, 쉼없이 쏱아지는 총성과 포탄을 만나 고아가 되거나, 혹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기아가 되버린 아이들은 앳된 목소리로 하루종일 제 어미만 부르며 꺼져갔다.
한 아이가 제 어미의 손을 잡고 도랑물을 건너고 있었다. 바쁜 어미의 발걸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방참방 발길질을 멈추질 않았다.
정처없이 남으로 남으로 떠도는 여정에 지칠만도 하건만 아이는 아직 아이 특유의 순수함을 잃지 않은 얼굴로 헤실거리며 웃었더랬다.
세상물정 모르는 여섯살난 아이가 그저 제 아비 보러 간다 말하였더니 힘들다 내색않고 쫓아와 주는게 영 대견스러웠다.
가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보는 것마다 이 것은 무엇인지 저 것은 묻는게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지만 대답않고 묵묵히 걸어가면 아이도 군말않고 따라왔다.
어느 하루는 노란 풀꽃이 눈에 띄어 줄기채 한 웅큼 손에 쥐고 나타나 이 꽃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지만 알 턱이없어 그냥 쉬이 버려두고 오너라 말을 했다.
제 어미의 말이라면 곧장 듣는 아이는 제가 가는 옆길에 살포시 놓아두었지만 뒤이어 밀려오는 피란민의 발걸음에 짖눌렸다.
꽃을 쥐고있던 아이의 손에 노란 꽃이 한아름 핀것 마냥 노란물이 들어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다. 보따리에 들어있던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감자 한알로 겨우 허기나 달랠 수 있는 지경이었다.
평소 보채지 않던 아이도 배고픔에는 장사 없다고 전에없던 칭얼거림을 하기 시작했다.
피란이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말이 없었던 어미는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굳은살 박힌 발은 물집이 진물어 끼워 신은 버선이 누렇게 색이 베었고 허기가지니 짜증이 솟구쳤다.
빨갱이를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들지 못해 깨있어도 깨있는것 같지 않은 몽롱한 상태가 계속 되었다.
아이에 보챔이 심해질수록 어미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내 먹을것을 덜어 아이배를 채워주고자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런걸 생각할 수 있을 여력이 없었다.
산 사람이 아니라 산 짐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섯살 난 아이의 발로는 믿기 힘들 만큼 많은 거리를 걸어왔다.
아이도 한계였다. 다리는 부서질만큼 아프고 울어 제낀 목에선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선녀보다 곱고 순했던 어미는 제가 무른 말을 할라 치면 차갑게 노려 볼 뿐이었다.
아이에게는 더는 견딜 수 없는 모진 시선이었다.
아이는 결국 풀가에서 풀썩 주저 앉았다.
목소리가 나질 않으니 방울방을 헐떡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놀랍게도 땀에 젖은 손이 스르륵 자신을 놓아 버렸다.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허공을 휘젓던 아이는 그 손이 여러 사람들 틈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아이에 손이 허공에 맴돌았다.
손에는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은 노란 꽃 한송이가 피어 있었고 생명줄을 놓친 아이는 서서히 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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