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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4개 도시 여행기_로마_첫째 날_ 오후_판테온과 나보나광장
게시물ID : travel_127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비틀즈포세일
추천 : 7
조회수 : 8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21 00:35:39
아무도 안 읽어주지만 그냥 오기로..ㄷㄷㄷ
그럴리 없겠지만 앞에 이야기를 혹 읽어보시려면..
그냥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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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간 곳은 판테온이었다자신들도 최악의 피자를 줬다는 미안함이 있었는지 식당 직원들은 친절하게 판테온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줬다판테온으로 향하는 내내 그놈의 짠 피자 때문에 갈증이 났고입도 텁텁했다결국 판테온 주변에서 다시 물을 사고야 말았다.

판테온 앞에 서니 짜증이 약간을 달아났다판테온 앞 작은 광장에서 연주하고 있는 밴드와 그곳에 있던 여유로운 사람들 때문이었다나는 순식간의 그들의 일부처럼 되어버렸다같이 음악을 듣고박수를 쳤다짜증을 사라지게 만든 밴드의 음악에 대한 감사는 판테온을 관람한 후에 하기로 마음을 먹고 판테온 안으로 들어갔다입장료를 챙기려고 지갑을 꺼내며 표 살 곳을 찾는데사람들이 그냥 판테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무료였던 것이다사실 로마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한곳이 판테온이라 무료임에 기쁘기보다 여긴 왜 무료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사람들 줄에 휩싸여 입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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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앞의 작은 광장>

판테온은 처음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인 아그리파에 의해 기원전 27년에 만들어졌다처음 건축 당시의 모양은 현재와 같은 모양이 아니었고지붕도 목조 형태로 되어있었다고 한다그래서 네로 시대인 기원후 80년에 일어났던 로마 대화재 때 모두 불에 탔다이것을 현재의 방식으로 다시 건축한 사람은 하드리아누스였다하드리아누스는 제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시스템을 점검한 사람으로 별명도 부지런한 일꾼이었다고 하는데부지런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던 듯 현재의 판테온을 직접 설계했다고 전한다.


판테온이 유명한 첫째는 바로 그 건축미 때문이다지붕을 완전히 돔으로 둘렀는데그 돔에는 하나의 기둥도 쓰이지 않은 것이다하드리아누스가 다시 만든 시점이 125년이니 거의 2,000년 전의 일인데그때 이런 건축물을 만들 기술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어떤 기술이 쓰였는지는 검색해보면 금방 안다).


판테온이 유명한 둘째는 바로 그 의미이다판테온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 즉 만신전의 의미를 갖고 있다판테온의 최초 건축자인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내전을 마무리했다.이때 로마는 반으로 나뉘어 전투를 벌였으며이집트유대그리스 등 제국 내 여러 나라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내전에 참여했다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도 이 내전에 아우구스투스의 반대편인 안토니우스 편에 참여했다(결국 패배 후 자살하고 만다). 이 전쟁을 끝내고 만든 것이 바로 판테온이다다신교 사회 로마에서 다른 민족의 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이렇게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제국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수많은 전쟁을 끝낸 후 승자의 관용’ 혹은 정치적 제스처 정도로 평가 절하 할 수도 있지만종교 갈등으로 인한 학살이 일어나는 현대에 만신전’ 판테온의 의미는 새삼 마음에 다가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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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안에서 본 지붕의 모습. 가운데 구멍으로 햇볕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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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 내부(아이폰 파노라마)


안으로 들어가니 무료라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가득했다돔을 꼭대기 빈 공간을 통해 들어온 햇빛은 동그랗게 벽면을 비추었고안에 수많은 조각품과 함께 신비감을 더했다물론 하드리아누스 당시의 조각품은 대부분 사라졌다다신교 사회에서 일신교 사회인 기독교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다만 판테온은 풍파를 겪었을지언정 성당으로 바뀌어 다른 건축물처럼 파괴되는 운명에서는 벋어날 수 있었다판테온은 아직도 성당으로 사용되는데 난 비록 무신론자지만잠시 앉아 로마시대 있었을 법한 모든 신들에게 기도 했다.


기도가 끝나고 판테온에서 나오니 이미 밴드는 사라지고 없었다짜증을 사라지게 한 고마움은 이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고마움은 그때그때 표현해야 하는 군이라는 도덕 교과서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뭐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이 곧 미안한 마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잠시 밴드가 있던 장소를 멍하니 쳐다보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선 골목 사이를 지나가야 했는데그 골목에서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그들은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려 들어갔는데어딘가 보니 바로 젤라또 가게였다마침 목도 마르고 피자도 많이 못 먹어 허기도 진데이거라도 먹자 싶어 같이 들어가 젤라또를 샀는데그냥 아이스크림이었다하도 이탈리아 젤라또가 유명하다고 해서 살짝 기대를 했지만예상만큼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다만 이후에도 유명하다는 젤라또 가게를 몇 군데 갔는데 – 몇 군데 갈만큼 먹을 만 하다는 소리다 – 감동을 자아내는 맛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렇게 젤라또를 먹어가며 조금 걸어 도착한 목적지는 바로 나보나 광장이다나보나 광장은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들었던 경기장 자리에 생긴 공원이다후에 경기장은 사라졌는데경기장이 있던 자리는 광장으로 남았으며 주변은 건물로 채워졌다나중에는 분수도 만들어져이 광장을 꾸미고 있다하지만 나보나 광장에서 본 것은 이런 역사성보다 여유였다이 여유는 아까 판테온 앞 광장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하지만 나보나 광장은 이보다 더 컸고더 많은 사람이 있었고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은 식당 밖 테라스에 앉아 식사도 하고와인과 맥주도 마시면서 햇살을 즐겼다나도 그곳 벤치에 앉아 햇살을 즐겼다나에게 이곳에서 보고 즐길 것은 그 햇살이 전부였다나도 식당 어딘가 앉아서 와인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여행의 사실상 첫날인 오늘은 아직 무엇을 해도 어색했다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 다른 곳도 봐야지.’란 강박이 생겼다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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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의 여유로운 사람들..

출처 내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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