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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요동으로 올라갔다면 벌어졌을 일??
게시물ID : history_103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진지합니다
추천 : 6/4
조회수 : 241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6/28 22:23:44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시점에서 이성계와 고려의 5만 군대는(전투병은 4만 이하) 이런 도전에 직면해야 함.
 
 
 
1. 주원장의 6왕
 
희대의 개깡패 주원장 휘하에서 특공을 세워 왕으로 까지 추봉된 베스트 식스,
 
서달, 상우춘, 등유, 탕화, 목영, 이문충이 그들이고 위화도 회군 시점에서 생존한 사람은 탕화와 목영.
 
탕화는 나중에 고향으로 가서 주원장의 숙청을 피했지만,
 
1388년 시점에서는 아직 내려가기 이전이었고, 목영은 왕성하게 활동중..
 
이들은 원나라 군벌들과 이미 대판한 경험도 있으며, 유사시 군대를 동원한 움직임을 보였을듯 
 
 
2. 풍승, 부우덕, 남옥, 경병문
 
6왕 이전에, 이 당시에 왕성하게 활동하던 장수들이 이런 장수들..
 
당장 남옥은,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던 바로 그 해, 
 
군사 15만을 이끌고 북원을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리고
부우덕은 20만 대군으로 위화도 회군 직전인 1387년에 요동의 나하추가 격파당한다
 
 
3. 주체
 
그리고, 요동에서 엎어지면 바로 옆동네 북평은, 다름 아닌 미래의 영락제, 주체의 영역
 
주체는 정난의 변에서, 물론 건문제의 삽질이 있긴 했어도 불리한 전력으로 계속 싸웠을 정도로 용장이라는 평가와 함께
 
더군다나, 주체의 밑에 딸려있는 직속군만 하여도 당시 고려의 전군을 능가하는 숫자..
 
 
 
 
 
 
 
즉, 이렇게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시작하게되면

 
부우덕과 남옥을 처바르고
 
이어 등장하는 탕화와 목영을 박살내고
 
북평에서 재수복을 시도하는 주체까지 확실히 때려잡아야
 
요동을 손아귀에 집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남옥이나 부우덕이나 한번 움직일때 동원하던 군사가 
 
15~20만이나 되는 대군이였고

 

고려 요동 정벌군의 숫자는
 
共三萬八千八百三十(공삼만팔천팔백삼십) : 모두 3만 8천 8백 30명이고
傔一萬一千六百三十四(겸일만일천륙백삼십사) : 심부름꾼이 1만 1천 6백 명이었다.


 
실제적인 전투병은 3만 8천 30명


군대의 보급에 대해서는


 
 
以崔瑩(이최영) : 최영에게
兼海道都統使(겸해도도통사) : 해도 도통사(海道都統使)를 겸하게 하였다.
瑩白禑曰(형백우왈) : 영이 우에게 아뢰기를
臣任事旣多(신임사기다) : “신이 일을 맡은 것이 이미 많은데  
又都統海道(우도통해도) : 또 해도를 도통(都統)하면
臣恐不堪(신공불감) : 신이 감당하지 못할 듯합니다.
且今戰艦纔百艘(차금전함재백소) : 또 지금 전함이 겨우 1백 척밖에 안 되며
戍卒僅三千(수졸근삼천) : 수졸이 겨우 3천 명입니다.
臣若行師(신약행사) : 만일 군사를 출동시킨다면
當用兵萬餘(당용병만여) : 1만 명은 써야 하겠는데
倉廩匱竭(창름궤갈) : 창고가 모두 비었으니
何以供億(하이공억) : 어떻게 공급한단 말입니까." 하였다.
禑曰(우왈) : 우가 이르기를
備禦事劇(비어사극) : “방비하고 막는 일이 급하므로
不獲已(불획이) : 부득이
以卿兼之(이경겸지) : 경으로 겸하게 하는 것이니
其無固辭(기무고사) : 굳이 사양하지 말라.
且以吾國軍需(차이오국군수) : 또 우리나라의 군수(軍需)로써
餉萬餘兵誠難矣(향만여병성난의) : 1만여 명의 군사를 먹이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請卿用三千(청경용삼천) : 경은 3천 명의 군사를 써서
使一當百(사일당백) : 한명이 백명을 감당하게 하라." 하였다.



원정이 아니라, 내지에서 군사 1만명 보급이 어려워서
 
3천명으로 한명이 백명씩 당해서 싸우라고 드립하는 상황

 

이런 개막장 상황에서 알렉산더가 동방국가들을 때려잡듯이 이성계가 주체까지 처바른다면
 
나폴레옹,한니발 등등..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만든 교과서에서도 언급하는 그런 위인이 될듯
 
 



자....이성계 입장에서 보자면 5만을 이끌고 
 
15만 군대의 남옥을 무찌르고 20만 군대의 부우덕을 격파하며
 
탕화를 무찌르고 목영의 기병을 격파한뒤
 
10만 이상의 군대를 거느리고 북평에 있는 주체를 무찌르는 일과,





말을 되돌려서 이런 명령을 내린 왕에게로 달려가는 일 중에
어느 쪽이 좀 더 쉬울지는 상상하기 편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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