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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유네스키 마야의 망명일화
게시물ID : humorbest_10406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5861
추천 : 50
조회수 : 9654회
댓글수 : 8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4/10 14:43:12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4/10 09:56:12
자국리그에서 정상급 투수로 평가받았지만, 마야는 더 큰 무대에서 야구를 하고 싶어했다. 결국 2009년 WBC가 끝난 후 그 해 여름 마야는 목숨을 걸고 브로커와 접촉, 멕시코로 망명하려 하지만 삼엄한 경비에 탈출에 실패했고,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쿠바국가대표팀에서도 추방됐다. 같은 해 다시 한번 목숨걸고 9월 쿠바에서 탈출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한다. 망명과정에서 가족들 일부 구출에 실패, 이는 미국에서 야구를 지속하는데도 상당한 지장을 미치게 된다.

망명해서 다시 야구공을 잡은 1년 후인 2010년 7월 말 워싱턴 내셔널스와 4년 간 총액 8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나이가 다소 많기는 했지만, 쿠바리그에서 정상급 투수였고 즉전감으로 평가받았기에 워싱턴에서는 금새 미국에서 적응해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맡아주기를 원했다. 실제로 워싱턴과 계약한지 1달만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 3시즌 동안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1승 5패 ERA 5.80을 기록했다. 결국 문화와 언어장벽, 가족문제와 부진한 성적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야구에 집중할 수 없었고, 2013 시즌 종료 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방출되었다가, 2014년 1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2014년 트리플A에서 3승 3패 ERA 2.63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7월 두산베어스 스카우터가 접촉 두산베어스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당시 두산베어스 스카우터는 야구에 몹시 간절함이 있어보였다며, 실력도 어느정도 검증이 된 만큼 안정감을 고려했을때 마야만한 선수를 구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마 마지막에 흘렸던 눈물이 누굴향한 눈물이냐고 물었을때, 밝힐수 없다고 하더니
가족들이 생각났었나봐요.

앞으로도 잘했으면 좋겠네요.

더불어 서건창 선수의 빠른쾌유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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