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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과 같은 화생방훈련
게시물ID : humorstory_4381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같은내술
추천 : 1
조회수 : 53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6/25 17: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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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9x년도 겨울이었던것 같은데...

 

 전라남도의 육군화학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플라스틱 헬멧쓰고 조교랍시고 교육생들 굴리며 군생활의 마지막을 보내던 중에 재수도 없지, 말년에 혹한기훈련을 받은적이 있다.

  장소가 전라남도니 추워봤자이며 전투부대도 아니고 교육기관의 훈련이 얼마나 힘들것이며 가뜩이나 인원이 부족해서 말년병장도 열외없이 조교지원임무에 투입되는 쉣스러운 상황에서 2박 3일 이상의 훈련이 가능할리도 없고...

  "축구나 하고 오지 뭘..."

  뭐 이런 각오를 하고서 축구공을 트럭에다 실고 훈련장에 도착하고 텐트치고 칡뿌리 찾는다고 설치고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바라지 않았던 정작과장이 훈련장에 나타나고 말았다.

  그는 최악의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할 많은 요소를 골고루 지닌 인간으로서 장교와 부사관, 사병을 가리지않고 욕을 퍼붓고 구타를 하고 제실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어두운 군생활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인간으로서 중령진급을 앞두고 구타사고가 발각되어 진급이 막혀 군복을 벗을 날만 기다리는 상태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 와중에도 '윗선에 잘보여야한다.' 라는 생활신조는 여전한 상태였다(그쯤되었으면 윗사람 눈치 안보고 떵떵거려도 좋으련만...).

  그런 그가 "밥먹고 축구나 한 껨?" 하는 화목한 분위기가 흐르는 훈련장을 덥쳤으니 장교부터 시작해서 부사관 사병까지 유쾌한 기분이 들리 없지(모르긴 몰라도 장교와 부사관은 예전에 다들 '쪼인트'를 까였을거다.). 다만 그 곳에서 가장 계급이 높았던 정작과장만이 천성인듯이 주변의 저주섞인 시선을 쌩까며 애초에 널널하게 진행되어야 할 훈련을 심각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 그것만이라면 참을만했지...

  그러나 상황은 화학학교장이 훈련장을 순시한다는 급박한 무전연락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담배꽁초 하나라도 수색해서 처리하는 긴급하고도 정밀한, 결과적으로 빡센 주변청소가 실시되고 마침 순서로 정해져있던 화학장비설명회(를 가장한 잔탄소모시간)가 진행되려던 때에 '윗선에 잘보여야 한다.'라는 씹쓰러운 생활신조를 가진 정작과장은 애초에 가볍게 기획되었던 장비설명회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E-8 발사기였다.

 예전 '페포포그차' 라고 부르던 차량 위에 장착되던 다련장 최루탄 발사기.

 

pepper.jpg

 (기억나는가...)

 

  시위진압은 물론 대간첩작전에도 쓰인다는 그 불쾌한 장비는 애초에 '이렇게 발사된다.' 라고만 같이 훈련에 참가한 본부근무대 인원에게만 설명할 예정이었다(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본부근무대는 화학장비를 접할 기회가 드믈다.).

 

 그러나 정작과장의 한마디는 상황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애들 저 안에 집어넣고 방독면 착용훈련을 시키자구."

 

학교장 순시에 오버하는 짓이었으며 방독면 끼고사는 조교들을 제외하면 '최루탄 맡고 좃되봐라.' 라는 명령의 순화된 형태에 불과한 이런 씨바스럽고 불합리한 명령을 거부할 자는 안타깝게도 그 훈련장에는 없었다.

  그리하여, E-8 발사기의 예상오염지역으로 거의 모든 사병들이 단독군장과 방독면을 휴대한 채로 투입되고 학교장의 훈련장 예상진입 시각에 맞추어 발사기의 격발장치는...

 

당겨졌다.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익숙한 소리에 조교들은 미친듯이 방독면을 뒤집어 썻으나 상황 파악에 아무래도 늦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외의 병사들에게는 하얀연기를 뿌리며 쏟아지는 플라스틱탄두가 아무 거리낌없이 쏟아졌다.

 

 방독면을 쓰면 시각과 청각이 제한된다.

눈 앞을 뒤덮는 하얀 연기는 다른곳의 풍경인것만 같았다.

 눈과 코를 자극하는 최루가스(CS)는 정화통의 필터로 완벽하게 걸러지고 들리는 소리는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의 압력차에 따라 방독면의 안면부가 불룩거리는 소리와 안면부 안에서 증폭된 나의 숨소리. 그리고 눈 앞에는 하얀 연기가 너울거리고 그 안에서 방독면을 손 안에 든 병사들이 또 너울거리고...

 

 그래, 지옥이었다. 내 눈 앞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그들이 지르는 욕지거리를 듣지 못했으며 시아 밖에서 절규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건 전투였다. 총을 쏘고 대포를 쏘는 자가 보이지 않는...

 

 잠시 뒤에 방독면을 썼던 병사들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녀석들에게 방독면을 씌워주며 구조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부끄럽게도 '난 살았어!' 라는 흥분에 취해 멍청하게 서있었던 나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것도 같다.

 

 "어? 역풍이다!"

 

 과연 CS 의 안개는 이동하고 있었다. 정확히 발사한 지점으로.

 그리고 그 곳에는 정작과장이 있었다.

 아울러 옵저버가 흔히 그렇듯이 그는 방독면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사건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정작과장은 CS 탄을 정면으로 맞으며 쭈구리고 앉아 울며 주변의 부사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고 한다.

 

 "으흐흐흥~ 으흐~ 다 지나갔냐?"

 

 비극적인 얘기일려나, CS 탄의 연기를 본 학교장은 현명하게도 차를 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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