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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선수 뭉클한글
게시물ID : humorbest_1043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마똥마려
추천 : 88
조회수 : 2743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5/08/18 00:31:54
원본글 작성시간 : 2005/08/17 21:34:29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이 또렷하다. 2004년 7월23일 아시안컵 본선 2차전 UAE전이 마지막이었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이. 꼭 1년이 지났다. 경기를 세어보니 15경기다. 2006월드컵 최종예선, 난 필드가 아닌 TV 앞에 앉아있었다. 함께 경기장을 누비던 동료들이 힘겨워하고 고비 맞을 때면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주먹 움켜쥐었지만 그들은 날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난 그들과 다른 곳에 서 있었다. 마치 유리 벽안에 갇혀 있듯. 
본프레레 감독님이 부임 이후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지난해 7월10일 바레인과의 친선경기를 포함해 2경기가 감독님과의 만남 전부다. 많은 걸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아직은 보여드릴 게 더 많은데. 시간은 작은 바람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추측을 접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2003년 을용타 사건이 발단됐다는 말에서부터 감독에게 드러내놓고 항명을 하지 않은 이상 대표팀에서 한 순간 제외될 수 있는가라는 짐작까지. 플레이스타일이 감독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전해 들었다.
진실, 이렇게까지 표현할 것 없지만 기억의 조각을 맞춰봐야 할 것 같다. 추측이 또다른 추측을 낳아 결국은 뒤엉켜 풀지 못할 실타래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부임한 본프레레 감독님이 첫 소집훈련을 가진 것은 2004아시안컵을 대비한 6월말이었다. 당시 난 K리그에서 뛰고 있었는데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부상을 입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래도 첫 대면하는 감독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뛰었다. 7월10일 바레인전. 감독님의 데뷔전에 선발 출전했다. (최)진철이형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나름 만족할 만 했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아 흡족한 경기 내용은 아니었다. 본프레레 감독님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전반이 끝나고 교체돼 나왔다. 믿음을 드리지 못한 때문인지 그리곤 2경기 동안 나서지 못했다.


다시 찾아온 출전 기회. 7월23일 아시안컵 본선 두 번째 경기 UAE전. 선발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래 기회다. 이번엔 뭔가 해내야 한다. 지나쳤을까. 경기 도중 부상 부위에 무리가 가며 통증이 극심해져 갔다. 참기 힘들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의료진에게 몸 상태를 설명하고 후반전엔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본프레레 감독님은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바레인전에 이어 2경기 모두 비슷한 이유로 자빠졌으니 감독님의 역정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당시는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고통스러웠다. 직접 상태를 설명 드리고 싶었지만, 짧은 영어 실력 탓에 그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도 정말이지, 그것이 끝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한 동안은 대표팀 경기를 피했다.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 내 꿈을 이리 헝클어 놓았을까.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라고 자책해 보았지만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쓰러질 수 있었던 순간, 나를 잡아준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내 전부였다. 
세 살 연상의,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한 아내와 네 살과 두 살이 된 태석이 승준이 두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절망에 빠져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 두 녀석 태어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남편, 원망은커녕 온갖 뒤치다꺼리 마다 않고 해주는 아내. 지금은 터키의 대표적 먹거리인 양고기 음식에 길들여져 덜하지만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가 없었더라면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타향살이는 꿈도 꾸지 못했을 터다. 평생 갚아도 그 사랑 보답할 수 있을는지. 얼마 전 둘째 승준이에게 누룽지를 먹이다 채해 혼이 났는데 그래도 정말이지 이 두 녀석이 없었으면 어떻게 여태껏 왔을까 싶다. 
사랑합니다. 표현 다 하지 못할 만큼......

베스트 일레븐 8월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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