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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집 괴담.txt
게시물ID : cook_1043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rdRain
추천 : 12
조회수 : 1534회
댓글수 : 74개
등록시간 : 2014/07/21 02:41:12
공포게에 올릴까 하다가 오버하는 것 같아서 요리게로 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고 2 무렵의 일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에 분식집이 있었어요

물론 학교에서는 금지하고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점심시간마다, 혹은 야자시간에 땡땡이치고

라면집에 가서 라면 먹고, 서로 노가리 까고

때로는 아줌마와 농담따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런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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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제가 문제학생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나쁜짓을 하고 다녔던건 아니고

당시 리니지1(당대 최고의 온라인게임이었음;)에 푹 빠져서

종종 수업을 빼먹고 피씨방엘 다니곤 했거든요 ㅋㅋ

어찌됐건, 함께 리니지를 하던 친구들과 수업이나 야자를 땡땡이치고

피씨방 갔다가 오는 길에 

그 라면집에 들러서 라면 한사발씩 하고

사탕 하나씩 사 물고(분식집인데 간단한 과자류도 팔았습니다)

유유자적 학교로 돌아오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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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땡땡이를 쳤습니다.

열심히 께임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출출해져서

예의 그 라면집에 들러서 라면 한사발씩 하고 있었습니다.


아, 참고로 설명하자면

엄청 낡은 라면집입니다;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아주머니도 연세가 적지 않아서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도 느껴지는 그런 가게;;

흔히 오래된 가게가 그렇듯 

주변이 조금 지저분하고

테이블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름때로 0.5cm 코팅되어

번들번들 거리는;; 가급적 손에 닿고 싶지 않고

절대로 수저, 젓가락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그런 환경이었는데

그럼에도 그 가게의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가게를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라면집이 족히 10분은 더 걸어가야 할 만큼 멀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라면맛이 기가막혀서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맛입니다; 짭쪼롬하고, 살짝 달달하기도 하면서

제일 신기한게 도저히 라면 1개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양이었습니다;

너무 맛있고 신기해서 몇 번인가 아주머니께 물어봤어요

이거 정말 라면 1개 맞냐

라면이 왜이렇게 맛있냐; 비결이 뭐냐

몇 가지 비결을 듣고 집에와서도 몇 번이나 그 맛을 재현해보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어찌됐건 가게에 들어가 평소처럼 라면을 시켜서 셋이서 후루룩 짭짭 맛있게 먹는데

갑자기 함께 먹던 친구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더군요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안경을 벗고 자신의 그릇을 뚫어지게 응시했습니다


"야 너 왜그래?"


말을 시켜도 대답 없이 그릇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만 먹겠다며 수저를 놓더군요

왜그러냐고 물어봐도 도통 대답을 안 합니다;;

뭐 저랑 다른 한 명의 친구는 신경을 끄고 마저 라면을 맛있게 먹고 국물까지 후루룩 비웠습니다


계산하고 나와서 학교로 향하는 길에

아까 그 친구가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더군요

"야 충격먹지 말고 잘 들어라"

"왜?; 아까 이상하더니, 무슨 일 있었어?"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아까 라면에 바뀌벌레 있었다;"


.......두둥! 충격발언


저랑 다른 친구는 패닉에 빠졌습니다


"야 시발 그런게 있었으면 발견하자마자 말을 했어야지!! 그것도 모르고 난 다 먹었잖아!"

"야 아줌마 옆에 있는데 어떻게 말을 해;; 다 먹고 나와서 말하려고 기다렸지;;"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한창 먹던 도중 그릇 안에 손톱보다도 작은 새끼 바퀴벌레가 들어있는걸 발견했더랍니다;;


현장에서 말하면 아줌마한테 미안하다는 이유로

친구가 바퀴벌레 든(들었을지도 모르는;) 라면을 국물까지 후루룩 다 마시는걸 방조했던 개객기 친구놈을

신나게 두들겨 패면서 서로 다짐했습니다


저 라면집은 다신 안 간다 ㅡㅡ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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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던가

1년의 세월이 흘러 고3이 되어서

야자 도중 친구들과 출출해서 어떡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예의 그 라면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도 제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1년 전 그 엄청난 사태를 겪어놓고도, 다시 그 가게를 찾는 나의 비위를;

멍청해서 다 잊어버렸던 건가, 아니면 비위가 너무 좋아서 '라면 그릇 속 바퀴벌레' 정도로는 끄떡 없었던 것인가!

아직까지도 그때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찌됐건 또 라면을 시켜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뭐;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미 예측 하셨겠지만



네;;; 이번에는 제 그릇에서 바퀴벌레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건더기 스프겠지 했습니다;

까맣고 좁쌀만한 수상한 물체가 

한창 절반쯤 먹은 제 라면그릇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에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갑작스레 잊고있었던 작년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저는 조심스레 숟가락으로 의문의 물체를 떠서

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정말 좁쌀만합니다; 육안으로 식별이 안 됩니다;

게다가 이미 라면과 함께 팔팔 끓여진 뒤라 형체가 불분명해져서

이게 라면 스프 건더기인지 벌레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새 젓가락을 수저통에서 꺼내서

슬며시 괴 물체를 건드렸더니







뭉개진 몸통 밑으로


다리가 공개되더군요




작지만 많은 수의 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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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의 친구의 모습과

똑같이 되더군요;


얼굴이 굳어지면서, 비명을 지를 것처럼 격앙되었지만


차마 지근거리에 계신 아주머니를 생각해서 티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사물식별이 어려우셨을 뿐이지


정말로 자상하고 좋은 아주머니셨거든요 ㅜㅜㅜㅜㅜ




함께 간 친구들이 국물까지 후루룩 다 빨아 먹도록

저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바로 식사를 멈추고 요동치는 위장과 식도를 가라앉히며 친구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죠;;


1년 전 그 친구의 마음이 절절히 이해가 가더군요;


어린 마음에, 아주머니와 어색해질까봐


저는 바퀴벌레 라면을 친구들이 먹는 모습을 티도 못 내고


구경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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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시는 그 라면가게를 가지 않았습니다

벌써 그게 12년 전 일이라니 세월 참 빠릅니다



마지막으로 그 라면집 아주머니께 영상편지(?) 하나 남기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앞 분식점 아주머니

아직도 장사 잘 되고 있으신지요...

너무 성격 좋으신 우리 아주머니

공부하느라 배고플 거라며 라면에 계란 하나씩 더 풀어주시던 우리 아주머니 ㅜㅜㅜㅜ


조금만 기다리세요...

조만간 제가

컴배트 한 상자 사서 찾아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아무리 바퀴벌레라도

소화되면 좋은 단백질 공급원일 뿐이니까요 ㅜㅜㅜ


성장기에, 아주머니 덕분에 영양보충 맛있게 잘 했습니다 ㅜㅜ


아주머니 스릉흡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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