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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통일? 민족반역?
게시물ID : sisa_1044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광주노총각
추천 : 4/4
조회수 : 90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1/05/15 21:27:52
그렇다면 소위 신라의 삼국통일은 어떨까? 과연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이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성립하기 이전에 그들이 하나의 공동체에 속했던 경험이 있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한국의 국사교과서에서 통용되고있는, 전통적인 '삼국통일' 관념은 기실 이러한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국사교과서에서는 한국사의 시작이 기원전 2333년 고조선(단군조선)의 건국에서 비롯되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삼국의 역사는 고조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전체적인 관점 하에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야기에는 일단 문제가 없는 듯 하다. 본래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속했다가 갈라진 나라들이 다시 하나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금 자세히 뜯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데 있다. 실제로 국사교과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고조선'이란 단군조선을 가리키지 않으며, 기자조선의 일부와 위만조선만을 인정하고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333년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란 다만 형식적으로 갖다붙인 말일 뿐 그 역사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은 후대의 고려 백제 신라 삼국과는 사실상 전혀 무관하며, 삼국의 조상들이 그 공동체로부터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모순된 설명으로부터 역사인식의 무한혼돈이 야기된다. 현행 '국사'의 통설은 껍데기만 햝아보면 그럴 듯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이 안 되는 모순덩어리인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란, 삼국 이전에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하나의 공동체(단군조선)가 존재했었다는 전제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그 기록이 남아있는 고려중기 이래 전통시대의 역사가들은 모두 고조선의 존재를 관념적으로나마 전제하고 역사를 서술하였고, 그러한 전제하에서 신라가 백제 고려를 정복한 행위를 '일통삼한'이라 표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서술이 모호하기는 해도 전체적으로는 일맥상통했었다.

그런데 오늘날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통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단군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개 고조선이 기원전 4세기경부터 기원전 1세기경까지 지금의 평양지역에 있었다가 사라진, 국가단계에 이르지 못한 작은 성읍 공동체에 불과했다고 본다. 삼국은 만주-한반도 지역에 등장한 사실상 최초의 국가이며, 서로 다른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이란 관념은 애시당초 말이 안 되는 것으로 폐기되어야만 한다. 삼국이 처음부터 남남이었다면 그것은 다만 정복일 뿐 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해석이다. 과학이 아니다. 역사적 문제란 '과거가 정말 어떠했느냐'가 아니라,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말이다. 때문에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다만 논리적 일관성일 뿐이다. '그것이 사실이냐'는 어차피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다만, 담론 자체내에서 앞뒤는 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해석은 태생적으로 모순의 딜레마에 빠진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담론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삼국 이전의 단군조선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존재했음이, 즉 삼국이 하나의 '민족'(ethnic group. 'nation'이 아니다.)이었음이 인정되어야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또 문제가 발생한다. 역시 그 '민족'의 구성원이면서 '통일신라'와 동시에 존재한 발해가 있기 때문이다.

7세기 나당전쟁에서 승리한 신라의 영토확장은 대동강 이남 선에서 그쳤고, 그 이북의 옛 고려 영토는 30년간 공백지로 남아 있다가, 스스로 고려의 후신임을 천명한 발해가 건국되면서 그 영역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라와 발해가 존재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라고 불릴 수 없으며, '신라의 삼국통일'또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성립시키려면 발해는 '민족'에서 제외되어야만 한다.

발해의 영역은 7세기 고려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발해 건국의 주체가 말갈족이며 따라서 고려의 후예가 아니라는 주장은 무의미하다. 발해 왕은 스스로를 '고려 왕'으로 자칭하였다. 고려의 옛 땅에 살았던 발해인은 고려의 후예일 수밖에 없으며, 또 자신들 스스로 그렇게 여겼다. 고려가 한국사라면 발해 또한 한국사이고, 발해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고려 또한 한국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논리적 모순은 아니지만 또 한가지 문제가 생긴다.

삼국이 하나의 '민족'이었음을 전제한다면, 외세인 당을 끌어들여 같은 '민족'인 고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의 행위는 '민족 반역'이라는 신채호식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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