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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게시물ID : readers_205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휘
추천 : 2
조회수 : 13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01 01: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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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바람에 안겨 잠에 든다. 잠든다. 흐릿한 풍경을 가르는 소리는 너의 숨처럼, 안개처럼 몹시 시리다. 겨울, 겨울이 내는 소리가 창틀의 서리를 손톱으로 긁는다. 겨울은 잔가지들의 사이로 새나가는 바람이 남긴 희끗한 잔상이다. 나는 그 안개비를 거닐며 잠에 든다.
 
너의 잠. 나는 너에게 잠든다. 너의 잠은 오색의 잉어들이 두른 비늘. 별. 그리고 비늘. 그리고 별. 별하늘. 어느 혜성이 그린 하얀 목도리. 나는 네가 뜬 목도리를 두르며, 또 언젠가의 너의 가쁜 숨소리를 생각하며, 잠든다. 그리워한다. 내가 너의 잠에 물든다.
 
나는 너의 꿈속을 거닌다. 찔레처럼 따가운 가시에, 너의 가시에 스친다. 그 핏방울들을 똑똑 흘려 마신다. 비릿해. 그 비릿함. 그것이 내가 꿈꾸는 잠이다. 홍채에 남은 난잡한 잔상이 사라진다. 비늘. 별. 별하늘이 진다. 안개비가 흩내리는 너의 꿈. 잔가지를 헤치며 나는 성큼성큼 걸어나고, 발이 시려워진다.
 
하얀 목도리가 한 올 씩 풀어진다. 저만치 사라진다. 빛이 퍼진다. 보랏빛 하늘에 번진다. 물푸레나무들이 별가루를 열매처럼 품고, 점차 선명해지는 풍경을 본다. 풍경, 사사로운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주변이 나의 동공으로 스며든다. 나는 안개 속에서 숨을 쉰다. 나는 눈길에 붉은 피를 그레텔처럼 흘리고, 남기고, 바람에 퍼르르 떤다. 얼어붙는다. 바람 한 가운데에 서서 모든 바람에 안긴다. 잠든다.
 
 
2
 
 
빗소리를 듣는다. 숲 속의 그늘에 앉아 그림 동화를 읽는다. 빗방울 하나 나뭇잎을 지나 동화책으로 내려오고, 부딪히고, 산산이 깨진다. 책 속의 밤에 번진다. 물이 퍼진다. 그러자 다가온다. 노란 별빛이 선명해지자 나의 언 발이 녹는다. 혜성은 어디로 갈까, 생각한다. 공중에 남겨진 궤적을 따라 나는 시선을 돌리고, 너의 숨처럼, 보라의 하늘로 오른다.
 
핏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나의 귀는 모른다. 눈을 감으면 빗소리가 된다. 창 밖 빗소리. 서리를 긁는 소리. 소름이 돋아 뒤척이자 네가 다가온다. 다가오렴. 새소리가 들렸는지도 모른다. 겨울, 겨울이 내는 새 소리는 어느 혜성이 그린 하얀 목도리. 그래, 하지만 나는 홀로 앉아 있었지. 너의 잠 속에서.
 
실타래를 따라 올라가면 네가 다시 돌아올까. 사다리라도 있으면 나는 그것을 타고 따라갈래. 속삭인다. 홀로 속삭여서 누구도 듣지 못하는 나의 목소리를 누군가가 듣는다. 차가움, 나의 머리칼이 물에 젖어 깃털처럼 뻣뻣해진다. 동화를 가슴에 품는다. 동화가 네게 스며들도록. 그런 기도를 한다.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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