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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죽을뻔한 기억
게시물ID : humorstory_4384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inhardt
추천 : 3
조회수 : 61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07/06 16: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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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001년도 1월, GOP 말년 생활.

 

눈은 정말 지랄맞게 많이 온다.

 

GOP 근무생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GOP말년은 특히나 무료하다.

 

말년이라 근무 빼주고 작업 빼주니,

 

정말 한가하다 못해 “나는 왜 여기서 숨쉬고 있나?”라는 철학적인 사색에 빠지는 일이 주요 일과이다.

 

가끔 애들 대신해서 근무를 서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겨울 혹한기에는 큰 맘 먹지 않으면 힘들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말년은 신삥, 짬찌보다 추위를 더 타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동안 자는 것은 고역이었다.

 

겨울잠 자는 곰도 아니고, 하루종일 잠만 자다보니 나중에는 잠도 오지 않아 뜬눈으로 낮밤을 지샌다.

 

아마 그래서 다들 군 생활 말기에는 일명 '개말년' 짓을 하는 것 같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매일 저녁 후반야 근무인 애들 수면시간에 텔레비전을 소리 높여 틀어놨으며(실제 시청하지는 않는다)

 

전반야 근무인 애들 복귀해서 자려고 하면 줄이 2개나 끊어진 병신 기타를 들고 락스피릿을 뽐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매를 벌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쫄다구들이 반란을 일으켜 나를 상대로 살인미수(?)를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끔찍했던 날...

 

엄청스레 눈이 오던 그 날도..

 

어김없이 장난을 치다가 애들한테 붙잡혔다.

 

그렇지 않아도 제설작업으로 인해 고생하고 지쳐있을 애들한테 장난을 친게 발화점이 된 것이다.

 

개말년(나를 칭함) 장난 못치게 재워야 한다고 침낭에 억지로 집어넣고 지퍼를 올려버렸다.

 

그 정도 쯤이야 괜찮았다.

 

그런데..

 

나의 은혜를 제일 풍족하게 입은 아들(1년 직속후임)놈이 침낭하나를 더 가지고 와서

 

거꾸로 넣고(다리 쪽으로 머리가 들어가게끔) 다시 봉인하였고.

 

그리고 누군지 모를 다른 놈이 침낭하나를 더....

 

또 침낭하나를 거꾸로 추가......

 

총 4개의 침낭속에 파묻힌 상태가 되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침낭 4개가 겹쳐 집어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근데 이 놈들은 말년하나 잡겠다는 생각으로 넣었다.

 

혹시 이거 기네스북에 등재되지 않을까?(침낭 낑겨입기??)

 

그래. 백번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좋았다. 얼굴에 무좀 걸릴까봐 찝찝했지만

 

나의 넓은 배려심으로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조금 심하게 타이트한 듯 꽉 죄인 것 빼고는 따뜻하고 견딜만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침낭에 꼭꼭 싸여진 저를 초소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순찰로 옆 눈 밭에다 버리고 막사로 들어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웃었다.

 

장난치지 말라고 웃으면서 넘겼다.

 

하지만....

 

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손목 야광시계가 유일한 빛이었다.

 

나중에는....

 

미친놈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장난치지 말라고 무서워서 소리쳤다.

 

깜깜한 어둠도 무섭고....

 

밤이면 돌아다니는 멧돼지, 고라니... 혹여나 나를 밟고 지나갈까 무서웠다.

 

진짜 미친놈처럼 소리질러보고 뒤척여보고,

 

침낭 열어보려고 했지만, 팔이 닿지 않아 당최 열리지도 않고.

 

솔직히 산소 부족으로 세상을 종지부 찍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두꺼운 침낭을 뚫고 눈이 녹아 한기가 들어올 때쯤 인것 같다.

 

이렇게 내가 군대에서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할 때쯤.

 

누군가 침낭을 벗겨주고 있었다.

 

역시 내 질긴 명줄은 종말을 고하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다. 나의 수호천사가 나를 지켜준 것이다.

 

나의 수호천사는.

 

바로. 다름아닌. 연대장.

 

중대장도, 대대장도 아닌 연대장.

 

평소에 얼굴 한번 제대로 본적 없었던 바로 그 연대장.

 

어쨌든,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이 많이 그리웠던 듯하다.

 

연대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쪼금 나왔다.

 

연대장 통신병한테 들은 얘기로는 총을 쏠 뻔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까 오줌도 조금 지린거 같다.

 

무슨 이상한 소리(내가 광분하던 소리가 침낭이 너무 두꺼워 파묻혔는지 아주 작고도 미묘한 소리만 나왔다고 한다)가 들려서

 

조심스레 와보니 눈밭에 이상한 게 꿈틀거리고 있어서

 

간첩??!! 위험한 야생동물?? 머 이런 건줄알고 정말 쏠려고 했단다.

 

솔까말 연대장님 입장에서는 수류탄 안 던진게 어디냐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구출되었다.

 

우리 연대장님 너무 착하셨다.

 

나보고 누가 그랬냐고 물어본다.

 

“어느 나쁜 개아들놈으 시키가 이렇게 못된 방법으로 갈구냐”고...

 

괜찮다고 다 말하라고 한다.

 

아!! 내 생전 쫄따구때도 단 한번 한적 없던 <소원수리>를 지금 하라는 것인가 보다.

 

당연히 나는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집념의 연대장은 우리 소초로 같이 가자고 한다.

 

다시 한번 괜찮다고 했다.

 

당연히도 결국 끌려갔다. 막사로.

 

머 대충 상황 안봐도 4D 이겠지만.

 

당연하게도 막사 뒤집어졌다.

 

나는.. 아닌 밤중에 소초에 연대장을 소환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애들은 자다말고 여기저기서 “단결”을 외쳐댔고.

 

부소대장은 팬티바람으로 연대장을 안내하려고 폼 잡고 있었다.

 

우리 착하디 착한 연대장님....

 

막사 들어가자마자 사자후를 터뜨렸다.

 

"어떤 새끼가 쫄따구에게 이딴 듣도보도 못한 얼차려를 주냐!!!"

 

아~~~ 이건 도대체 뭔 상황인지 알수 없는 소초 내무반은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여기 이 새끼 눈밭에 파묻은 새끼들 나오라고!!!! ”

 

여기서 “이 새끼”는 활동복 차림에 침낭 4개를 옆에 한가득 끼고 서 있는 나를 칭함일것이다.

 

오 주여...;;; ㅆㅂ

 

내무반 애들 중 눈치가 그나마 빠른 어느 놈인가 입을 열었다.

 

" 후임병 아니고 우리 내무반 왕고입니다. 말년...."

 

다시 한참동안의 정적...

 

연대장이 그 녀석, 그리고 나를..

 

몇번을 번갈아 보신다.

 

나는 눈빛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무사히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착하던 연대장님은 대충 상황파악 되신 듯.

 

나를 쳐다보며...

 

"너 이 개XX.. 얼마나 애들을 그동안 못살게 굴었으면 애들이 너를 밖에다 파묻어??? 이XX 영창 보내버려~~!!! "

 

어머나 18... ㅠㅡㅠ

.

..

소대장이랑 부소대장이랑 나중에 들어오신 중대장님이랑....

 

연대장님을 부여잡고 말리셨다.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이 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쨌든 상황 종료.

 

나의 생명의 은인이신 연대장님은.

 

커피 한잔 드신 후 막사를 나가시며... 우리 내무반에 한 마디 하시고 가셨다.

 

"야.. 저 XXX.. 아까 침낭에서 꺼내주니까 울더라~ "

...

.

착한 연대장님...

 

생명의 은인이셔서 감사하긴 합니다만... 굳이 그 말씀은 안하셔도 됐었는데....ㅠㅡㅠ

 

아무튼 어느 길었던 한겨울밤,

 

나에게 정말 악몽같았던 그 밤은 지나갔다.

 

나와 친했던 상병 놈이 새벽 근무 나가면서 위로랍시고 한마디 건낸다.

 

"형... 울지마..."

...그 이후 상황은 왠지 연말 시상식 분위기였다.

 

나는 어떤 상도 받은 적도 없는데...

 

수상소감 얘기한 적도 없는데...

 

그리고.. 눈물 보인적도 없는데....

 

나의 팬클럽(?)인 내무반애들이 갑자기 외치기 시작했다.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

 

아... 추억을 회상하니... 애아빠가 된 지금에서도 또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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