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는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서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 이유는 동성애는 불법이라는 인식이 기독교계에 확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오늘날 시선으로 볼 때 남자들 사이에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장면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다윗과 조나단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나,
혹은 예수님에게 뽀뽀하는 수많은 남자들
(아래 그림은 예수님께 입맞추는 가룟 유다)
얼마전만 해도
남자들끼리 손잡고다니고 어깨동무하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언제부턴가 “동성애로 오해받는다”며 이와 같은 자연스럽고 친밀한 행동이 불편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이면에는 포르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들끼리 친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며, 칭찬할만한 일입니다.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이든,
서로 신뢰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며, 위태로울 때 의지가 되는 관계라면 아주 바람직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신뢰하는 두 사람이 같이 살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시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그렇다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두 사람이 밤에 무슨 짓을 할지 상상하는 것입니다.
사람 머릿속에서 무슨 일을 상상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자유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밤마다 자기 손톱 밑에 젓가락을 쑤셔넣는 일을 하는 것도 자유지만
할 필요도 없고, 하면 오히려 자기에게 고통만 줄 뿐입니다.
상상은 자유지만 자신에게 불쾌감만 주는 상상을 찾아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밤에 무슨 짓을 하는지 상상하는 것
본인도 불쾌하고 상상 당하는 당사자들도 불쾌한데
왜 그걸 그렇게 찾아서 하는지...
저는
그 이면에
그 상상을 시각화시켜준 포르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포르노 뿐 아니라, 오늘날의 수많은 영상매체가
제공하는 다른 사람들의 애정행각 영상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은 아직 미스테리입니다.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본인들은 멜로물을 보면서 즐기는 걸까요?)
결론: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상상하지 않으면 불쾌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