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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븅신사바] 공포 소설- 가로등
게시물ID : humorbest_10508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랑결혼하자
추천 : 14
조회수 : 2827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5/07 04:33:45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5/02 23:28:43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이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어쩌다가 있을 법한 일에 속하는데, 이를 지금 기술하는 이유는 이것이 퍽 괴상한 일에 속하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밤은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알다시피 으스스하다. 가로등마저도 불이 나가서 깜박거릴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이런 말을 남들에게 말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남자임에서 기인하는 어떤 허세였을 것이다. 오늘도 야근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K사를 다녔는데 악질적으로 야근을 시키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먹고 살기 힘드니 야근 수당은 주지 않아도 일하는 처지었다.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을 뜨려고 노력하면서 축축한 밤거리를 걸었다. 쨍쨍했던 낮이 무색하게 저녁부터 내린 비는 기분 나쁘게 와이셔츠를 적시며 피부에 달라붙게 했다. 춥고 으스스했다. 나는 우산을 고쳐 잡으면서 조금 긴장을 했는데 그것은 집으로 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어떤 골목 때문이었다.

 

골목이라는 건 누구나 알다시피 인적 없고 조금 어둡고, 가로등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곳이었다.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지나갔을 법한 그런 골목. 내가 이 골목을 조금 두려워하는 것을 친구에게 말한다면 나이를 헛먹었다면서 등짝을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골목은 뭔가 달랐다. 가로등이 제멋대로였던 것이다.

 

가로등은 평소에 멀쩡하다가 내가 그 밑이라도 지나가려고 치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기능을 상실했다. 사람만 지나면 가로등이 꺼지는 센서라도 달린 줄 알았다. 그냥 언제나 그랬으면 나는 그 가로등이 고장 난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내 앞의 여자가 지나가고, 어린 아이와 다정한 아버지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나 간 순간, 가로등이 다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다는 것을 깨달은 때였다. 나는 그 때 매우 두려운 기분에 사로잡혀서 그 골목을 빠르게 달려 나왔다.


사실 가로등이 제멋대로인 것이야 그 지역 공무원에게 민원을 넣으면 될 일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고. 조금 부끄러웠지만 지역사회에 관심 많은 척 하며 언제는 민원을 넣은 적이 있었다. 외딴 골목에 있는 가로등이 깜빡거리니, 좀 바꾸라는 내용의 민원이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그 골목을 두려움에 떨면서 지나갔지만 그 가로등은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그 밑에 서자마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갔다는 신호를 보였다. 문득 두려움을 이긴 호기심에 내가 그 골목을 빠져나가고 잠깐 그 골목 밖에서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가로등은 내가 간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마냥 잠깐 껌벅껌벅 거리더니 환하게 골목을 비췄다. 허겁지겁 길목을 빠져나가서 엘리베이터에 올라 거울을 보니 나는 반쯤 울고 있었다.


나는 아예 이제는 담당 공무원에게 민원 넣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가로등이 저 모양이냐고 신경질 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공무원은 당황한 듯이 네. 네. 하고 차분하게 대답하다가 곧 나에게 조금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친지 오래인데요. 네? 우편으로 갔을 겁니다. 사실 고장도 없는데, 그냥 일단 노후 된 거 같으니 교체까지 다 했다고 돼 있어요.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제까지도 그 가로등은 내 바로 위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었다. 나는 꼭 두려운 기분에 사로 잡혀서. 네. 네. 죄송합니다. 하고 병신 같은 소리만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한참 보지 못한 우편함으로 달려가니 각종 고지서와 함께 민원 처리에 대한 우편이 날아와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읽고 또 읽으면서 머리가 텅 비워 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나 오늘도 나는 그 가로등 밑을 지나가야만 한다. 입김을 내뱉으니 하얗게 올라오는 것이 옆 가게 네온사인 불빛에 비쳐 보였다. 잠깐 골목 앞 편의점에 들려 맥주를 한 캔 사고 우산을 펴기 전 골목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가로등은 밝고 환하게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다시 지나가야할 시간이었다.




작가의 말: 밤에 심심해서 썼습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꿈과 공포가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
출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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