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원칙에 따라, 노동 32569호인 저는 오늘도 모시는 냥님들의 사료값과 바꿀, 알량한 사적 재화 확보를 위해 출근을 합니다.
다른 냥님들은 집사가 투잡을 뛰러 나가면 현관까지 마중해 주시고, 심지어 가지 말라 투정까지 부리신다는데, 저희 집에선 그런 애틋한 풍경은 연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사가 드디어 침대에서 비켜났다며 사지를 쭉 뻗고 유유히 낮잠을 청하지요.
집사가 출근 준비하는 사이 잽싸게 집사가 누웠던 자리를 차지한 도이. 분명 햇볕을 잔뜩 쬔 저 풍만한 배때지는 푹신하고 따뜻할 터인데, 집사를 향한 태도는 쿨하다 못해 한기가 돕니다.
출근하냥? 사료값 많이 벌어와라.
이것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진정한 자본가의 모습입니다.
흡사 새의 가슴을 연상시키는 격렬한 기지개짓. 이것이 가진 자의 여유일까요.
어랏? 아직도 출근 안 했냥? 어서 가서 일해라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풍만한 보디라인이 구 소련의 당 선전용 포스터에 실린 더러운 부르주아의 삽화를 보는 듯 합니다.
힘 없는 노동 32569호는 자본가의 비위를 맞춰드려야 합니다.
사료값 벌어오는 김에 통조림 값도 좀 벌어오라 격려해주시네요.
통조림의 맛을 상상하며 잠이 듭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날에는 내가 저 녀석의 고양이로 태어나 늦잠을 자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노동 32569호는 출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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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32569호의 피땀어린 노동력이 아낌없이 착취되는 마이 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