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었던가, 재학 중일때는 하루짜리 훈련으로 동원을 대체해서 학생회에서 나눠주는 도시락 까먹고 영점사격 대에충 하다 내려오면 훈련끝이었는데 그때는 휴학 중이라서 도리없이 삼박사일 동원으로 끌려감.
뭐가 전산이 꼬였는지 몰라도 몰려온 예비군 아저씨들은 다들 동네 친구들인데 심지어 서울사람은 나말고는 얼마 있지도 않았음. 뭐 거기까지는 혼자노는거 잘하는 인생이었던데다가 군복입은채로 언제 한 번 놀러오시면 잘해주겠다며 명함을 돌리는 XX나이트 웨이터 아저씨의 삐끼질을 대충 넘길 수 있는 거리감도 있었던지라 상관은 없었음.
다만 부대가 동원사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지 얼마되지않아 예비군 훈련 준비가 미흡했었는데 결정적으로 예비군 아저씨를 재울 내무반이 없었음. 걍 25인용 텐트치고 취침. 당연한 소리지만 샤워장엔 뜨건물도 안나오는데 서울에서 쫌만 올라간 곳인데도 밤이면 6월 칼바람이 장난이 아님. 그런 이유로 샤워를 포기하는 예비군들이 다수 발생.
뭐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만한 수준인데 결정적으로 예비군을 만나본적이 별로 없다던 조교애들 눈빛이 초롱초롱. 뭔가 대단히 기대에 찬 눈으로 초롱초롱. 얘들이 지금 우릴 뭔가 오해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그땐 그게 어떤 결과를 몰고올지 알지 못했음. 알았으면 벌금이 나와도 일단 튀어나가서 다음 기수 훈련을 받았을터.
심지어 예비군도 전역한지 2~3년 밖에 안된 아저씨들이었음. 보통 동원이면 4~5 년차가 섞여있어도 좋으련만 전역한지 얼마 안된 의욕덩어리들만 고르고 골라 모았는지 소총받고 씐났음. 그 와중에 M60 을 간만에 수령하고 애증섞인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던 못난 예비군 아저씨도 있었고 하여간 그런 분위기였음.
하여간 뭔가 예비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진 조교들과 의욕이 넘치는 예비군 아저씨들 틈에 교육을 받게되니 지자쓰, 여기가 헬게이트였음. 당시 주특기 교육이 화학이었는데 나야 탐측쪽으로 빠져서 별탈없었는데 '내가 운전주특기인데 무슨 제독차로 보내냐!' 며 울분을 토하던 아저씨 하나는 어느새 MOPP4 단계 취하고 제독차 휀다에 걸터앉아 살포 준비 중이었음.
방독면 너머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씐나 보이기도 했던것같음.
그와중에 낵아 속한 탐측조에서는 화학탐지기의 구동절차를 두고 조교와 예비군간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걸 보다 못한 소대장은 '저기, 일단 휴식시간 갖겠습니다.' 라며 쿨타임을 요청하고 조교들 없는 자리에서 예비군들에게 '쟤들이 주특기는 소총수지만 화학지원단가서 저거 교육 빡세게 받고 왔거든요. 너무 기죽이지말고 쉬엄쉬엄해주세요.' 라는 조언도 들음.
하여간 그렇게 뭔가 시너지가 퐝퐝터지는 훈련을 마치고 추운 텐트에 들어가 잠을 청하니 아니나 다를까 예비군도 열외없이 불침범 근무가 떨어짐.
근데 보통 동원예비군때 불침범 근무는 생까는게 예의라고 들었는데 아뿔싸, 이 미친 동원부대가 예비군 불침번을 깨우는데 자객을 보냈음. 아니 자객은 아니고 이등병을 보낸거임. 위에서 시키면 앞뒤 사정 안보고 걍 들이받고보는 이병이 예비군 아저씨를 깨우는데 아 이건 아니다, 이런식으로 당하면 예비군 체면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어떤 아저씨가 장장 삼십분을 자는척하긴 했지만 옆에서 자던 아저씨가 '애 불쌍하지도 않아요? 거 대충 근무섭시다. 네?' 이러면서 상황이 종료됨.
결과적으로 훈련기간동안 예비군 불침번 근무는 열외없이 진행됨.
다음날되니 전날의 훈련성과에 뭔가 고무되었는지 화생방보호의 + 보호수갑 + 전투화덮개 + 방독면까지 풀셋트 MOPP4 단계셋이 모든 예비군 아저씨들에게 지급되었는데 말잘듣는 예비군 아저씨들이 그걸 또 입음. 그때 낮기온이 30도에 육박함. 그와중에 난 어찌된 일인지 그 차림을 하고 화학탐지기 + 전선셋 20kg 짜리를 메고 2 ~ 3 킬로 행군도 함.
그날에는 뭔가 교안이 잘못되었는지 81mm 박격포 도수운반도 했... 나 화학주특기인데?
야간훈련도 진행되었는데 이런식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던 소대장이 예비군을 데리고 산으로 가더니 야간관측훈련을 하겠다면 바닥에 드러누우라고 하고 그대로 훈련을 종료함.
이런식으로 훈련이 계속되다가 마지막날에는 일탈하고 싶다는 정서가 뒤늦게 형성이 되기 시작해서 '우리 간부들 몰래 쏘주라도 마셔야 하는게 아닌가!' 라는 결론이 내려져 돈을 대충 모아 외부에서 소주를 추진하고 안주는... 안주는... 취사병을 꼬셔서 닭 세 마리인가를 튀겨서 받기로 함. 그때 돈을 받은 취사병은 '케이준 스타일로 튀겨보겠습니다!' 라며 자신만만하게 돌아갔는데 케이준 치킨이라고 온것이 양념장이 기괴한 색으로 탄화된 닭같은데 하여간 닭이라고 말하면 곤란할것같은 단백질 덩어리였음. 아 이거 뭐야 케이준이라며! 이러면서 예비군 아저씨들이 취사장으로 뛰쳐나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취사병들은 이미 연병장을 오리걸음으로 돌고있었음.
사연인즉슨 짬밥이 별로 맛이 없다는 예비군들의 불만 (아니 짬밥이 사제밥보다 맛없지! 그걸 무슨 불만이라고...) 을 접수하고 대대장이 취사병을 굴려버린거였음.
그광경을 보고 말없이 텐트로 돌아간 예비군들은 하여간 그 탄화된 닭고기에 소주를 두 어잔 하고 취침함.
다음날이 퇴소식이었는데 다들 그때쯤되니 '우리가 너무 훈련을 열심히 받은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하고 뭔가 속았다는 느낌도 받고 그랬는데 부대에서 제공한 버스를 탄 예비군을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조교들의 눈이 촉촉히 젖은걸보고 '아, 상관없나?' 하는 결론을 내림.
그리고 남들과 달리 이 훈련은 보통 예비군 훈련과 달리 매우 빡세다라는 사실을 진즉에 깨닳고 소리없이 울분을 토했던 나는 어찌된 일인가, 퇴소식때 우수예비군으로 연대장인가 사단장인가가 준 표창장과 볼펜 하나를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