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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해방전쟁은 선과 악의 싸움이었을까 01
게시물ID : phil_119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고맨
추천 : 2
조회수 : 5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10 15:55:37
바츠해방전쟁...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들만의 전쟁이 있었다.
리니지2에서 벌어진 가상세계의 전쟁...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전쟁은 아니었다. 신문, 잡지에서도 다룰 정도였으니까.
 
물론 내가 바츠해방전쟁을 직접 겪은 것은 아니다.
전쟁이 끝난지 한 참이 지난 후, 웹서핑 중에 마주한 사진 한 장,
아키러스가 리니지2를 떠나는 장면을 보면서...
~ 이런 사람이 있었네... 아 그래 DK연합이란게 있었어?...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웅장한 디지털스토리텔링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혹시 모를 분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주의. 스크롤 압박이 좀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이 부분 스킵하시고 2부부터 보세요.)
 
리니지라는 게임... 다른 MMORPG게임과 마찬가지로
게임 안에서 몬스터 잡고 레벨업하고 레벨업 해 더 센 몬스터잡고...를 계속하는 게임이다.
물론 레벨이 낮은 몬스터만 잡다보면 지루하니 저랩에서 고랩까지 다양한 몬스터가 준비되어 있고,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잡을수록 고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는 이런 아이템들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유저들은 파티를 구성해 사냥을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이 다른 게임과 달랐던 점은... 이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냥 게임만 즐기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다가 괜찮은 아이템을 주우면 돈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뉴스에서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걸 금지하네 마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몇 만원에서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짜리 아이템도 있었다고 하니
유저들에겐 가상현실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였다고 해야 할 게다.
 
그러다 보니 유저들은 게임세계 내에서 질 좋은 몬스터들,
다시 말해 레벨업하기 좋고, 돈 벌기 좋은 아이템을 떨구는 고랩 몬스터가 나오는 구역, 즉 사냥터를 장악하기 위해
파티의 규모를 키워 혈맹이나 몇 개의 혈맹이 모인 연합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잠깐 만나 파티를 형성하는 수준을 넘어 군대에 준하는 조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물론 리니지가 돈 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졌던 것은 아니다.
레벨업, 아이템과 상관없이 친목도모를 위해 게임을 즐긴 유저들도 많았고, 그런 부류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파티나 혈맹을 만들어 같이 돌아다는 데서 오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하지만 게임시스템은 유저들의 친목도모보다
이들이 레벨업과 아이템획득에 주력하도록, 이를 위해 경쟁하도록 짜여져 있었다.
리니지유저 모두가 돈에 환장해 아이템을 찾아 해매고, 이를 위해 파티나 혈맹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시스템 자체는 그렇게 흘러가게끔 만들어져 있었다는 게다.
 
바츠해방전쟁은 이런 배경 속에서 발발했다.
당시 바츠서버(리니지 제1서버)에는 DK혈맹이라는 강력한 전투혈맹이
몇몇 혈맹과 연합해 DK연합을 만들고
자기 혈맹원들의 빠른 레벨업과 아이템 획득을 위해 질 좋은 몬스터가 출몰하는 사냥터들을 통제했는데,
혈맹에 가입하지 않은 캐릭터가 이를 어기고 몰래 사냥터를 기웃거릴 시, PK로 이 캐릭터들을 죽여 버릴 정도였다... 고 한다.
(DK혈맹은 이를 위한 온오프라인의 스파이들과 분조위나 척결단 같은 암살단까지 운용했다.)
 
당연히 일반유저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당시 이들의 평균 레벨이 60이상인 상황에서,
서버 내 다른 중소혈맹 캐릭터들의 평균 레벨은 50정도에 불과했기에, 그 누구도 감히 이들에게 반항할 수 없었다.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어온 가상세계가 현실보다 더 갑갑해졌던 셈이다.
 
그런데 DK혈맹은 이런 상황에서 사냥터 통제에 더해 세금인상마저 단행한다.
~ 현실도 아닌 가상세계에 세금이라니... 이게 가상이야 현실이야~
암튼 리니지세계엔 성이 있고, 공성전을 통해 성을 함락시킨 혈맹은 그 성의 세금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
혈맹은 (공짜로?) 걷은 세금으로 무기나 포션을 구입해 혈맹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는데,
이는 돈(아덴)을 벌기 위해 저랩 몬스터들을 쫓아다닐 시간에 곧바로 고랩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물론 세금이 싫으면 성에 안 들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레벨업을 하려면 사냥을 해야 하고, 사냥을 하려면 무기와 포션을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무기구입, 포션구입 등을 위한 상점과 시장은 성안에 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안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DK혈맹이 아덴 성을 점령한 후 이제껏 10%정도였던 세금을 15%로 올렸다는 점이다.
몬스터를 잡으려면 무기도 업그래이드하고 포션도 자주 먹어줘야 하는데, 여기에 세금을 왕창 매기니
안 그래도 힘겹게 살던 유저들로서는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물론 DK혈맹은 그럴 수 있었다. 강자였으니까.
전설적인 이야기인데... 바츠해방전쟁 초기, 레벨60의 한 DK혈맹원은
자신에게 덤비는 바츠해방군 200명을 혼자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몰살시켰다고... 한다.
당시 바츠해방군이라봐야 레벨9짜리 내복단들이 대부분이었을 테지만, 그 정도로 레벨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레벨업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레벨업을 막는 DK연합에 대한 증오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DK혈맹은 그 모든 증오를 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이후 전개된 바츠해방전쟁을 보면, 그들 개개인의 전투력이나 전술, 전략이 중세 용병부대를 뺨칠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터 통제와 더불어 세금인상이 단행되자 바츠서버의 민심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데 더 살기 팍팍하게 만드니 누가 좋아할까?
결국 DK연맹의 독재와 공포정치는 붉은혁명 같은 중소혈맹의 반란을 불러왔고, 바츠해방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과정에서 바츠서버 해방이라는 대의명분하에 내복단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내복단이란 레벨업과 상관없이 DK혈맹을 무찌르겠다는 신념하나로 모인 1~9레벨의 저레벨유저들의 집단이었는데,
캐릭터를 처음 만들면 제공되는 기본 옷이 내복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들은 변변한 무기나 전투능력, 전술도 없었는데, 현실세계로 치자면 소위 민초들의 무리였던 셈이다.
이들은 전투력이 없는 대신 자신들의 시체를 바리케이트 삼아 DK혈맹원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그 사이 중소혈맹의 고랩 캐릭터(그래봤자 래밸40~50)들이 DK혈맹원을 공격하게 만듦으로써,
전쟁초기 아덴 공성전 등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사실 내복단이라 불리는 레벨9짜리 저레벨유저들에게 이런 전쟁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전쟁은 질 좋은 몬스터가 나오는 사냥터를 중심으로 벌어졌고, 질 좋은 몬스터를 잡으려면 최소 레벨40이상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레벨유저들이 내복단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것은
서버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대의명분도 있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DK연맹에게 해코지를 당했거나
자신의 캐릭터를 살해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레벨업과 아이템에 대한 이해관계, 그리고 복수가 이 전쟁의 원인이었던 셈이다.
 
전쟁은 실제시간으로 약 4년간 이어졌고, 크게 1, 2차로 그 시기를 구분할 정도다.
(게임 내에서는 30분이 하루니... 게임시간으로만 따지면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싸운 셈이다.)
 
1차는 DK연합의 폭정에 지친 붉은혁명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에 몇몇 군소 혈맹이 연합해 DK연합에 대항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전력의 열세로 바츠해방군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지만, 이 과정에서 DK연합도 분열을 겪게 된다.
당시 DK혈맹의 군주였던 셰도우여솔은 이참에 바츠해방군의 뿌리를 뽑겠다며, ‘용의 계곡으로 불리던 자신의 사냥터를
제네시스라는 동맹혈에 맡기고 바츠해방군을 추격하다 혈맹원들의 불만을 사 회군했는데,
(혈맹원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냥터에 가서 레벨업과 아이템획득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바츠해방군을 잡겠다고 그 사냥터를 떠나 레벨업도 못하고 아이템도 못 얻는 시간이 길어지니,
혈맹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 사이 용의 계곡을 차지하고 있던 동맹혈 제네시스가 용의 계곡에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DK혈맹이든 동맹혈 제네시스혈맹이든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사냥터였고, ‘용의 계곡은 레벨업을 위한 최고의 사냥터였다.
둘이 함께 나눠가지기엔 작고,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포기할 수도 없는 곳...
결국 DK혈맹은 힘으로 제네시스를 몰아내고 용의 계곡을 되찾지만,
사냥터에서 밀려난 제네시스가 바츠해방군에 투항하면서, 바츠해방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한때 DK연맹에서 DK혈맹 다음으로 전투력이 강했던 제네시스가 바츠해방군에 투항하면서 전력의 균형이 얼추 비슷해졌던 것이다.
여기에 내복단이 가세하면서 바츠해방군은 DK연맹의 성들을 하나 하나 빼앗아갔지만,
이번엔 전리품(성과 사냥터)을 놓고 바츠해방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결국 새 군주 아키러스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정비된 DK혈맹이 전세를 역전, 바츠해방군을 완전히 궤멸시키면서 1차 전쟁이 끝난다.
이후 바츠서버는 아키러스가 스스로 권자에서 물러나기까지 1년 반 동안 DK연합이 완벽하게 통제하게 된다.
 
 
 
보통 바츠해방전쟁에 대한 기록은 여기까지가 대부분인데, 아마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악에 대한 선의 분노, 반란과 승리, 자중지란에 빠진 선,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악, 그리고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다 쓰러져가는 용사들의 노스텔지어... ~
 
하지만 왠지 뭔가 모를 냄새가 난다. 니들은 딱 여기까지만 봐~ 하는 듯하다.
그래 내복단? 사이버세계 최초의 민중혁명? 훌륭했지. 근데 그래서 어떻게 됐지? 자중지란에 빠져 망했잖아.
니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아. 하지만 니들은 그걸 누릴 힘도, 자격도, 시스템도 없어. 한 번 경험해 봤잖아?
그러니 이제 닥치고 수그리고 쥐죽은 듯 살아~ 라는 메시지를 날리는 것 같다. 실패에 대한 기억만 남기려는 듯하다.
왜냐면 인터넷에서 바츠해방전쟁에 관련된 글을 찾아 읽다보니...
전쟁은 4년 동안 이어졌다면서 다들 1년 남짓 되는 1차 전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그 이후에 대해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지? 왜 해방전쟁이라면서 실패한 이야기만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 겨우겨우 2차 전쟁의 전개과정을 찾게 되었고,
여기서 결국 바츠서버가 해방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2차 전쟁은 드라마틱한 부분도 없고, 영웅도 없고, 재미도 없다. 마치 삼국지 후반부를 읽는 것 마냥 김이 빠진다.
아키러스의 퇴장, DK연합의 분열과 해체, DK연합 내부의 반란과 그 여파로 촉발된 여러 군소 혈맹의 연합,
그리고 여러 혈맹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벌이는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전쟁...
하지만 이 전쟁을 통해서 바츠해방군은 DK연합을 몰아내고 바츠서버를 해방시켰다.
재미는 없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모델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해방의 이야긴 묻힌 채,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래 현실은 재미없다. 재미없으니 찾는 것이 천국이고 이상이고 유토피아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쨋든 우리는, 나는 현실 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꿈만 꾸려하는 걸지도...
 
3차는 해방전쟁의 주역이었던 붉은혁명이 예전 DK혈맹처럼 사냥터를 통제하면서 발발했다고 하는데,
하지만 이때쯤엔 이미 이 모든 전쟁이 게임개발사의 농간임을 눈치 챈 게이머들로 인해 뜻드미지근하게 흘러갔다고... 한다.
 
바츠해방전쟁의 웅장한 전개과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네이버나 위키백과에도 있고, 책으로도 나왔는데, 잘 정리된 글들은 웬만한 SF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을 능가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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