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영화 '연평해전'과 '소수의견'
영화 어벤져스의 흥행돌풍 이후 쥬라기공원과 터미네이터라는 강력한 헐리우드 영화 사이에
두 편의 한국영화가 나름 선전(?) 중이라 하더군요.
연평해전은 말그대로 2002년의 사건을 재연한 것이고
소수의견은 가상의 시나리오라고는 하나 용산참사가 그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 합니다.
모두 실화를 기반했거나 모티브 삼았다는 것 외에도
연평해전의 경우는 투자자를 찾기 어려워 제작에 난항을 겪었다 하고
소수의견은 2013년 이미 제작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투자와 배급사가 개봉을 포기하면서 뒤늦게 세상에 나왔다는 점도 유사하네요.
아무래도 어느 투자처든 간에 두 영화 모두 정치적 편향을 걱정했나봅니다.
이걸 보면 한국은 유난히도 정치색 표명에 민감한 것 같습니다.
외국의 스타들은 공식석상에서도 당당하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던데
이 땅에서는 이상하게 중립을 미덕으로 삼는군요..
사실 정치만큼 삶에 밀접한 것도 없는데다, 민주주의라는게 사실 의견의 대립과 토론을 통한 진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도 정치적 언설이 좀 더 일반화되었으면 하는데 말이죠.
여튼 시작은 이리도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있었으나
개봉 후의 두 영화의 행보는 판이하게 다른 것 같습니다.
연평해전의 경우 서울만 27개 영화관에 상영횟수도 충분하여 어느새 400만 관객을 돌파했더군요.
반면에 소수의견은 그 제목처럼(;) 서울에서 단 2개의 개봉관에 30만..이 조금 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며
너무나 대조적인 행보를 걷고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소수의견을 보기로 했습니다.
연평해전은 예비군훈련만 가도 비슷한 취지의 영상을 자주 보니까요.
딱히 돈까지 내가며 볼 필요가 있겠나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토리도 실화 기반이니 특별한 반전이랄 것도 없겠지요.
문제는 소수의견을 상영하는 영화관이 많지 않았다는 것인데 겨우 00시 35분 상영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관객은 저희 일행을 포함 8명.. 이더군요.
결론은 재미있었습니다.
아이돌 출신이라 걱정했던 윤계상씨의 연기도 캐릭터에 잘 맞았고
이경영, 유해진씨 등 감독 의도하에 배치된 여러 조연들도 제각기 색깔이 뚜렷했는데
김의성씨의 검사 연기는 아주 그냥.. 훌륭하더군요.
다녀와서야 뒤늦게 두 영화의 전문가 평점을 봤는데
연평해전이 4.3, 소수의견이 7.3으로 다행이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은 각각의 전문가 평점과 흥행성적이 정확히 반비례 한다는 점이었죠.
사실 두 영화는 모두 국가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가지 유사점이 있습니다.
둘 모두 국가는 자기 앞에 대역을 세웁니다.
연평해전에서는 교전 중 순국한 젊은 군인들을
소수의견에서는 강제진압작전 중 죽은 젊은 경찰관이 그들입니다.
두 영화 모두에서 국가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수행중인 젊은이들 뒤에 숨습니다.
숨는다는 표현에 울컥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연평해전의 경우 본래 전쟁억제는 근본적으론 정치가들의 몫입니다.
군인은 그를 위한 수단이자 유사시 최후의 보루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는 다소 이상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민들의 평화를 위해 이 젊은이들이 희생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로써 관객들은 시민들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 등에 총체적으로 애국심(?)을 자극 당하며
국가는 논점에서 살며시 빠져나갑니다.
보너스로 반공주의 보수세력들에게 좋은 프로파간다의 소재도 선물하지요.
반면 소수의견의 경우는 정반대입니다.
소수의견에서 국가는 순직한 경찰뿐만 아니라 깡패, 검사와 판사 등 더 많은 방패를 앞세웁니다만
주인공인 윤진원과 장대석 변호사는 오히려 숨어있는 국가를 끄집어내 피고석에 앉입니다.
그리고 피고 대한민국을 향해 100원짜리 국가소송을 제기하죠.
소수의견에서 국가측 변론인인 검사는 온갖 불법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강제철거진압에서의 국가, 더 정확히는 청와대의 개입을 부정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납니다.
이로 인해 결국 검사는 옷을 벗지만, 잘 나가는 일류 로펌에 들어가 변함없이 잘 사는 삶을 삽니다.
그런 그가 주인공 변호사를 훗날 만난 자리에서 말합니다.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결국엔 그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거야."
그리고 자신은 국가의 특별한 지령 때문이 아닌 순수한 봉사로써 행동하였음을 피력하며
그러는 자신에 비해 너(주인공.. 혹은 관객)는 국가를 위해 뭘 했냐고 일갈합니다.
두 영화는 모두 담담한 시선으로 국가주의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똑같이 묻습니다.
국가를 위해 이렇게 희생한 사람들이 있다.
국가를 위해 너는 무엇을 했는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연평해전의 국가는 연단 위에서 깃발을 흔들며 열변을 토하는 듯 하고
소수의견의 국가는 피고석이지만 왠지 안락해보이는 자리에서 일갈합니다.
국민은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두 영화 모두에서 국가의 추궁을 받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말이죠.
사실 학교에서 어렸을 때 배우기로는 말입니다.
국가란 국민을 보호하고 안락한 삶을 돕는 존재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나오는 국가는 거꾸로 국민의 희생과 봉사, 애국심을 바랍니다.
피곤하네요.
제 개인적으로 저 자신은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국방, 납세, 교육의 의무를 모두 충실히..
아.. 근로의 의무도 성실히 지키고 싶은데 국가가 취업을 안시켜주네요. 의무인데 말이죠. 군대는 잘만 보내더만..
여튼 그런데 이제는 목숨까지 바쳐야 하나 싶네요.
우리는 국가주의의 과대를 앞선 역사에서 경험해봤습니다.
2차대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고, 혹은 국가 내부의 문제를 가리기 위해 외부에 시선을 돌리고자 했던 풍신수길이의 사례도 있었구요.
이러나 저러나 그 끝은 전쟁을 동반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영화 소수의견은 그러한 국가주의의 세례를 뚫고 다시 우리 안의 문제로 시선을 돌립니다.
걷지 못하는 자가 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내부가 곯은 국가가 과연 애국심을 아무리 등에 업는 들 뛸 수 있을까요?
사실 대한민국의 반공논리는 친일세력에 기반하는 권력유지비책입니다.
보수세력의 정치적 위기때마다 램프의 지니처럼 나타나 진보를 공격해주지요.
철학용어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영화 소수의견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입는 소수의 일반 시민들을 조명합니다.
그 소수의 국민들이 모여 만들어진게 바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은 절대적 다수인 국민을 소수로 만들고 국가를 우선합니다.
어쩌면 소수의견이란 영화 제목은 그에 대한 역설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