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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예요? #5
게시물ID : humorstory_4387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리조각
추천 : 1
조회수 : 45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13 18: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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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술을 마시다가 뛰쳐나와서인지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긴 했다. 학교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길은 대충 3갈래였다.

가장빠른 지름길이지만, 사람이 많은 길, 

골목쪽으로 돌아서 가지만 그나마 한적해서 친구들과 몰려다니기 좋은 길,

그리고 많이 돌아가긴 하지만, 한적해서 혼자걷기 좋은 길.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3번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H는 역시나 한적한 길을 따라서 걷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워크맨을 만지작 거리던 그녀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놀란 표정을 하면서 돌아보았다. 


"오ㅃ.... 아니 선배님. 어쩐 일이세요?"

"응? 어... 아니... 그게... 너 혼자 갈까봐... 그냥.. 내가 바래다 줄께... 아! 저기 지하철역까지만!"

"아 진짜요?"

그녀는 굉장히 기분좋은 듯이 웃었다. 나는 쑥스러워서 그냥 말없이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가자."

"아 같이가요 선배님."

그녀는 앞서 걷는 나를 붙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컥!'


연애감정에 면역력이 없던 내 팔에 감긴 그녀의 팔 때문에 심폐기능이 정지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H는 자연스럽게 내 팔에 팔짱을 낀채로 밝게 웃고 있었고, 나는 내가 이 상황을 어색해 하고있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아... 지하철역 참 머네..."

"그러게요. 어 선배님, 괜히 저 때문에 일찍 일어나신거 아니예요?"

"어? 아냐. 나도 그냥 화장실 가고 싶어서 일찍 일어났어."

"근데 화장실을 지하철역으로 가요?"

"아.. 그렇지. 좀 걸어야 이 소화기능도 활발해지고... 변비도 예방할 수 있는법이니까..."

"아 그래요? 남자들은 변비 잘 안걸린다던데?"

"아냐. 우리과처럼 매일같이 술을 퍼먹는 환경에선 남자들도 안심할 수 없지."

"아 그렇네요. 선배님도 야채 안 드시죠?"


아.. 도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냐...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왜 나는 좋아하는 후배에게 변비얘기를 하고 있을까... 머리속으로는 후회를 하고 있으면서도 내 입은 개드립을 멈출줄 몰랐다.


"화장실 갔다온 사람을 뭐라고 하게?"

"글쎄요?"

"일본사람~~"

"네? 아! 아 뭐예요!!!"

"그럼 깡패중에 제일 건강한 사람이 누구게?"

"누군데요?"

"영양갱~~"

"아 진짜요? 아웃겨 꺄하하하."


H야 넌 진짜 천사나 다름없어. 아 진짜 그때는 내 좌뇌를 꺼내서 명치를 한대 쎄게 치고 싶었다. 그냥 이따위 개드립에 웃어주는 그녀가 한없이 고마울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개드립을 치고, 그녀가 억지로 웃어주는 사이에 갑자기 골목 귀퉁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어? S선배님."

"어라?"

"어라?"


우리 셋은 골목의 한 귀퉁이에서 서로 마주친 채로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S는 무려 남색의 정장(!!!)을 입고 나비넥타이(미친거 아니냐!!)를 맨 차림으로 왼손에는 아마도 학교 앞 꽃집에서 샀을 후리지아 꽃(아마도?)을 든 채로 신나게 걸어오던 중이었다. 

한손에 꽃을 든 채 나비넥타이를 맨 대학생이라... 지금 생각해도 가스렌지 위에 투척된 마른 오징어처럼 손발이 오그라들어갈 지경이 차림새였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재 자취방에서 기거하던 밥버러지 같은 친구놈들의 조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가 내게 말했다.

"야 이건 솔직히 말려야 하지 않냐? 저런 차림으로 여자 후배에게 고백하면 여자후배 기분이 어떻겠냐?"


악마도 내게 말했다.

"야 니가 이 장면을 목격한건 엄청난 행운이야! 앞으로 다가올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두배로 늘려줄 특급 찬스라 이말이다. 잘생각해봐. 너랑 S가 게임비와 탕수육 세트를 건 당구를 치는 모습을!! 

너와 S가 동시에 쿠션에 들어갔지만, S에게 그만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완벽한 우라(바깥 돌리기)찬스가 떴단 말이다! 그때 넌 어떻게 할래?

빙고!!! 바로 이 상황만 옆에서 떠들고 있으면 된다 이 말이야!! S는 알아서 실수를 할거라고!! 너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고 S의 멘탈을 붕괴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아이템을 획득한 것이란 말이다!!!"


아... 아마도 악마의 계략은 날 설득시키기보다는 시간을 끌려고 했던게 확실하다. 우리셋이 약간 벙쪄있는 동안 S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치를 살피다가 우리를 지나쳐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S 선배....님...... 어디가시지?"

"그... 그러게 말이야... 뭐 저런 옷을 입고..."

"오늘 학교에서 무슨 공연 있어요? 꽃까지 들고..."

"그러게... 뭐 저런 옷을 입고..."


그때 H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 설마..."


어라? 그러고보니 K랑 꽤 친한편이었던 H가 오늘 혼자서 집에 간다는 것은 분명히 S가 K를 성공적으로 불러내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다면 혹시 K가 H에게도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H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에이! 모르겠다. 빨리 가요 선배님. 차시간 늦겠어요."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뒤로 한채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역은 생각보다 너무 금방이었다. 분명히 상당히 멀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가까워진 거지? 나는 지하철역의 앞까지 와서도 개드립을 멈추지 않았고, 재미있게 웃던 그녀는 역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저... 갈께요. 선배님."

"아. 그래... 저..."


나는 뭔가 말을 하고 싶었다. 이런 개드립 말고, 그녀가 잠들었을때 몰래 속삭였던 그런 말을 꺼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뭔가 말을 꺼내려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H는 약간 씁쓸하게 웃었다.


"얼른 들어가세요... 선배님들 아직 술마시고 계실거 같은데..."

"그래... 너도 조심히 가고... 집까지 가려면 꽤 걸리겠네... 술 많이 안먹었어?"

"네... 괜찮아요... 금방가요."

"그래...음... 아 막차 오겠다... 어서 들어가."


H는 웃으면서 역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네. 근데 오늘은 진짜 혼자 가기 싫으네요..."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나직하게 말한 소리였지만, 분명하고 똑똑하게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가방에서 회수권을 꺼내고, 개찰구안으로 사라졌다. 


도대체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H가 기다리던 막차는 금방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뒷일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지갑도 삐삐도 없었지만, 나는 그대로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동안 막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H는 2번열처와 3번열차의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었고, 나는 다행히 늦지않게 H가 서있는 곳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문이 열렸고, 나는 H의 손을 잡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어?!! 선배님?!"

"아... 헉...헉... 데려다 줄려고."

"아니... 집에 어떻게 가시려구요!"

"아... 뭐... 어떻게 되겠지 뭐."


참 병신같은 대답이었지만, H는 그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막차인 지하철은 사람이 꽉차있었고, 우리는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H는 빨개진 얼굴을 그대로 내 가슴에 묻으면서 안겼다.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는 술에 취한채 서로를 안고 지하철 벽에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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