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 - 딴지일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허접한 매체인 경향신문에서, 강의를 하나 하고 있는데, 한국힙합에 대한 이론인데요. 제가 이 강의를 준비하다가 하나 배운 게 있어요. 시의 형태던, 산문의 형태던, 서사가 있습니다. 근데 한국에서는 음악의 장르가 수입되면 그 전에 있었던 장르의 역사가 끊어지고, 끊어지고 그런단 말이죠. 그게 이제,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계속 그런 식입니다. 엔카가 들어왔다가, 그 담에 스윙재즈가 들어왔다가, 포크가 들어오고, 그리고 서태지댄스가 왔다가, 테크노 시대가 오고, 힙합으로 넘어 옵니다. 근데 그 사이에 장르적인 특성은 계속 역사가 툭툭툭 끊기는데 서사를 어떻게 내놓느냐 하는 건, SM이 끊어놔요.
그 전에는 동시의 형태던 시의 형태던 산문의 형태던, 서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기승전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SM이 아주 기가 막힌 발견을 한 거에요. 90년대 말 댄스음악들은 되게 유치한데, 예를 들면, R.ef 노래 같은 게 그렇습니다. 아주 유치하지만 서사가 있습니다. 쿨이나 R.ef 노래들 생각해 보면.
마 - R.ef의 '이별공식' 같은 노래, 스토리가 있다.
U - 그 노래 너무 좋아요. 근데, 이건 학문적으로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 다 조폭 아니면 조폭 근처 양아치에요. 거기서 서사가 나와 봤자입니다.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아도 문학을 별로 숭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큰 친구들이고. 이런 표현 하기 싫지만, 못 배웠으면 더 합니다. 그래서 서사가 유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SM이 생각할 때, 이걸 장사하려고 보니까 안 그래도 저쪽 사람들은 한국말을 몰라. 팔아 줄 사람들의 7~80%는.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이명박의 논리대로 금방 잊어버려. 그렇다면 서사를 없애고 언어가 생겨난 의미를 없애보자. 그래서 그걸 해체 했더니, '이건 뭐야. 씨발' 이 아니라 그냥 '멋있다' 가 나오는 거에요.
보아 노래가 대표적이죠. 이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경영학 이론에 젖어있는 국내 음반사들은 다 그걸 배운 거죠. 그렇게 SM이 첫 깃발 꼽고, 다 그렇게 됐어요. 이제는 서사 있는 가요 없어요. 그리고 교육이 거기에 발을 맞춰서 문학을 최대한 덜 가르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교육받고 집에 가서 음악듣는 어린애들은, 아무 서사없는 환경에서 커요.
거기서 큰 애들이 지금, 래퍼가 됐어요. 그래서 UMC와 달리, 아무도 서사를 쓸 줄 몰라요.
마 - SM의 그 전략이 대중적으로 왜 먹혔을까?
U - 보수의 원리입니다. 전 인생의 절반은 랩으로 배웠는데 이런 멋진 랩 가사가 있어요. 'people fear what they don't understand'(지난 우탱 클랜 기사에서 나왔던, 우탱 내부 그룹인 GraveDiggaz가 사용한 구절. 그 기사 링크는 여기. - 편집자 카인 주)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면 두려워 한다. 그게 보수가 지배를 하는 원리죠.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단계. 공포 단계. 숭배 단계로 넘어가는데 그 짧은 공포 텀을 못잡아요. 그냥 멋있구나로 바로 넘어오는 줄 알아요. SM은 그걸 알고 있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몰랐는데 지들이 무식하고 시장 상황상 이쪽은 모르고 이쪽은 잊어버린다. 그거만 알고 했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 가사를 많이 쓰고 랩 한다는 애들도 그 원리를 모릅니다. 자신들이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무지몽매하게 계속 유지시켜서 자신들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단 걸 몰라요. 먹물 티 난다는 비난에 대한 제 답변은 그거죠. '니들이 지금 내 긴 답변 사이에 나와 있는 이야기가 증명했듯이 너무 무식한 걸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나는 유식한 게 아니라 기본원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일 뿐이겠다. 니들 사이에 나를 섞어 놓으면', 그 얘기죠.
마 - 힙합이란 장르가 미국 할렘가에서 마약하고 총질하는 분위기의 장르라면, 거기에서 먹물 티가 안 나는 게 맞을 듯 한데, 에미넴(Eminem)이라던가, 쿨리오(Coolio)라던가, 사회적 발언이나 주장들을 담은 노래도 많지 않나. 그런 음악과 UMC의 가사가 대동소이한데 왜 저쪽에선 뛰어난 뮤지션이고 UMC는 먹물 티 난다고 욕을 먹을까?
U - 전통의 문젭니다. 뒷골목에서 형성이 됐으면 무식해 보이는 게 맞다.인데, 실제로는 뒷골목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고 인종차별에 대한 항거운동 가운데서, 미국 사회운동사 가운데서 힙합이 생겨나요. 힙합이라는 이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붙인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혼자 정해 놓은 거에요. 아프리카 밤바타(Africa Bambaataa)라고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색인종 정치운동 단체가 다 무장단체였기 때문에, 무장단체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아들이에요. 본인도 정치활동을 하다가 유색인종 아이들을 교화시키는 매우 훌륭한 도구가 되겠다. 힙합이라는 도구가.
마 - 의식화 도구였다?
U - 네. 즉, 문화사업이죠. 문선대로 힙합을 세운 겁니다. 근데, 문선대 노릇을 했던 힙합은, 문선대는 곧 깃발이잖아요. 깃발은 곧 정치구요. 그러다 보니까 그 사람들의 정치를 끄집어 내서 오는데 이 무장단체들이, 평등조약들이 어느 정도 관철이 되고 나서 자신들이 할 일이 줄어드니까, 무장만 남아요. 그래서 그게 '갱'이 됩니다. Black Panther(흑표범당. 투팍 기사에서 언급했던 무장정치운동단체. 투팍에 관한 관련 기사 복원본. - 편집자 카인 주) 같은 정치단체들이 나중에 갱의 모체가 된 이유는 무장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거든요. 미국의 총기합법화 하구두 깊은 관련이 있고.
하여간,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했고 계급적 정치세력의 센터에서 생겨난 것이 힙합입니다. 고로,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서사가 없으면 안 되는 거였죠. 그런 전통까지 지금 힙합에 다 묻어 있습니다. 무시 못합니다.
마 -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U - 저는 한 다섯 가지 부류로 국내 힙합의 시류들을 구분하는데. 처음 시작 됐을 때. 이태원이나 미군부대 파벌들. 웨이터도 있고 DJ들도 있죠. 그리고 그 비슷한 류의 연예인 주변사람 무리들. 틴틴파이브. 그리구 인제...외국에서 radical(급진적인 - 필자 마사오 주)한 문화들이 나오면 먼저 접할 수 있는 강남애들. 듀스나 언타이틀이죠. 그리고, 오렌지카운티 친구들. 우리 한인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제일 크게 등장한 세력인 PC통신 하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피씨통신 하던 사람들의 이론이 정설이 됐습니다.
PC통신하던 - 최신의 미디어를 받아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이 그래요. 먹물을 적당히 빨아가지고, 적당한 결론을 내서 지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합니다. 거기서도 신선하고 고려를 최대한 열심히 한 결론이 나오면 좋은데 안 그러고 적당히 나오면 그걸 가지구 우리 게 맞다 그러구 시작을 해 버립니다. 하이텔, 나우누리 이런 동호회 사람들, 자기들한테 맞는 수준이라면서 딱 내놨어요. 태생이 이렇다 보니까, 본질상 보수적일 수 밖에 없었어요. 왜냐면, 서사 없이, 동호회 개념이 만들어 낸 거거든요. 동호인들이 서로 좋아서 만들어 낸 거니까 치열함이 없습니다. 치열함이 없으면 서사가 없어요. 태생부터 글러 먹었다. 그게 점점 펼쳐지기 시작한 건, 대학교 고등학교에 힙합 동아리가 생겨나면서죠. 더 심하죠. 일단 한 번 오염돼서 들어왔고 그냥 한글 발음 뭉개가지고 영어처럼 바꾸는 걸로 들어오고.
마 - 근본이 아닌 방법론에 매몰 되었다..?
U - 정확한 예시는 이렇습니다. 모음 'ㅜ'를 발음기호 'W'로 발음합니다. 'ㅆ'이나 'ㅅ'을 불어의 발 달린 쒜로 발음하는 겁니다. 그냥, 이해를 못했으니까 흉내 잘 내면 된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게 없죠.
마 -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수필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전올스타즈'의 구와타 케이스케 때문에 일본어엔 없는 R발음이 생겼다고. 랩을 하면서 발음을 굴리는 게 '한국어를 파괴한다'고 까지 욕을 먹을 일인가? 테크닉으로 볼 수도 있잖을까?
U - 왜곡에 충분한 서사가 있다면 왜곡이 아니라 신조어가 되겠죠. 우리말 대사전을 볼 때 제일 아쉬운 게 조어가 언제 시작 됐는지 이런 표기가 없어요. 언어학자들이 게으르거든요. 게임용어, e스포츠 용어 이런 것들이 지금 막 말이 되거든요. 그 서사는 필요에 의해 생깁니다. 한국힙합이 언어를 왜곡할 때는 SM 원리하고 똑같아요. 그냥 말재주가 없으니까 흐릿흐릿하게 발음 흘려서 외국 거 비슷하게만 보일려고. 애들이 영어를 모르니까 발음만 굴려놓으면 그 '고급스러움'이랑 비슷한. 삼립이나 해태가 외국풍, 유럽풍 이러면서 그냥 더 달기만 한 과자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게 아니에요. 지 살아남으려고 만든 거지. 그러면 왜곡이죠.
마 - 그 동호회 파벌(?)이란 게 현재 울나라 힙합계의 최대 주류인가?
U - 걔들이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했죠. 나머지 네 부류가 조폭 레이블로 알려진 도레미 레코드, 연예인 할려면 TV에 나와야 되지 않나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방송사 주변을 기웃대면서 연예계 구석쟁이를 자처하고 있을 때 동호회 양반들은 홍대를 파고 들었죠. 언니네이발관이 다인 줄 알았던 홍대를 파고 들어서 충성스런 10대 팬들을 만들어 냈고 지들이 '옳다'고 얘기하던 변종이론, 나머지 네 부류는 그것도 만들어낼 재간도 없었던 거에요. 너무 무식해서. 그러니깐 더 무식한 쪽은 감복 받죠. 그렇게 시간이 흘렀더니, 박진영 사장, 양현석 사장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랩 들어 보고 '라임이 없다', 이런 말 하는 상황까지 왔죠.
마 - 음악이란 게, 아까 말했던 프로파간다로써의, 도구로써의 가사 전달이 중요한 음악도 있겠지만 클럽에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맡기는 음악도 있지 않나. 그렇다면 보아류, SM류의 음악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U -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는 오히려 더 크게 서사를 요구한다고 봐요. 미국 클럽에서 히트한 모음집을 들어 보면 알 수 있는데 분명한 목적성과 분명한 메시지가 가사에 박혀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섹슈얼리즘에 얼마나, 어떻게, 왜 경도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경우엔, 가사가 없는 하우스 계열이죠.
마 - '논란'이라는 건 서로 자기가 옳으네, 그르네를 갖고 싸우는 걸 텐데... 소위 '디스하는' 가사들이나 지금 얘기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싸우자", "한 판 붙자"는 느낌이 아니라 아래를 굽어보며 "난 평범하고 지들이 병신같이 구는 건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라는 느낌이다.
U -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컨텐츠, 문화컨텐츠를 만든답시고 하는 놈이 만들어내는 작품에는 작가의 캐릭터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거를 평상시에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인터넷용어로 '관심병종자'다, 진중권 씨 같은 분들 - 그래서 제가 무시하는 건데, 그렇게 부르는데 - 트윗에서, 일상에선 그러면 안 되지만 - 당연히 제가 하고 싶은 얘기겠지만 - 작품에서는 그 캐릭터가 있어야 된다고 보고 제가 잡았던 캐릭터는, 평상시엔 하지 않고 사람들 만났을 땐 절대 하지 않지만 작품에 집어넣었던 것은, 분명히 그 캐릭터죠.
"너네가 틀렸다는 건 분명한(쓸데없는) 말다툼이다." 그 정신상태를 기반해서 랩을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미국사람들이 부르는 '배틀'이고. 그 마인드로 쏘는, 랩을 하는 행위를 일반적으로 미국사람들은 스웨거 (Swagger : 솔직한 당당함, 으로 요약되는 자신감 있는 태도. 주로 힙합에서 진정성과 외면이 합치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할 때 거론하는 단어.관련기사 링크. - 편집자 카인 주)라고 부릅니다. 근데, 나는 그저 일반적이라고 믿고 했는데, 사람들이 다른 사람 랩을 듣다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럼 그건 제가 잘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 - Shubidubidubdub 에서 깐 라인은 어떤 뮤지션들이었나?
U - 자랑인데, 99년이었어요. 우리 학교에도 힙합동아리가 생겼어요. 처음으로. 그래서 제가 한탄을 했어요. 10년 뒤에 우리나라 힙합은 다 씹창 나 있을 것이다. 서사도 없고, 한국어 왜곡 시키고, 아무도 못알아듣고, 지들끼리 좋다고 복덕방에 앉아서 장기 두는 노인네들 마냥, 그들은 결국 심지가 없다 보니까 누군가가 자본을 들고 와서 탑골공원에 와서 '가라' 그러면 가 버릴 우둔한 친구들로 전락해 버리거든요. 그렇게 될 것이다. 안그래도 PC통신에서 시작된 것만 해도 한참 잘못 됐는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대학교, 서열문화밖에 없는 곳에 들어와서 멍청한 선배들이 '이게 맞는 거야.' 그렇게 군대식으로 배워갖구 나와서...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가사의 내용을 들으면서 감흥을 얻는 배틀문화, 요즘 어린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제야 생겨나기 시작했거든요. 전 거기서 희망을 보는데. 홍대 하고 대구의 국채보상공원 쪽에서 배틀하고 그런 어린 친구들이 있습니다. 마주 보고 랩을 주고 받으면 서사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이 부분에서 UMC가 언급한 운동은 허클베리 피와 JJK가 주도했던 프리스타일 랩 모임인 랩어택을 비롯한, 일련의 프리스타일 랩 붐 현상이다. 감히 본 편집자도 발가락 하나는 거들었다고 뻥 90%의 숟가락 좀 댄다. 현재도 이어지고 움직임으로, UMC는 이 움직임을 선도했던 JJK/허클베리 피 두 사람이 한국 힙합의 희망이라고 평했다. - 편집자 카인 주)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비겁하게, 내가 음원 내놨으니까 이게 진리야.
그들은 키보드가 있었거든요. 그 키보드에 지금 우리나라 모든 메이져 기획사들 다 말린 거에요. 십 년 지나니깐. 거기까지는 제가 어설프게 예상했었는데. '설마 돈 많은 애들까지 여기 속겠어?' 이랬는데 돈 많은 애들이 무식하다 보니까 쉽게 속드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