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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예요? #8
게시물ID : humorstory_4387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리조각
추천 : 2
조회수 : 52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7/14 17: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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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탄 :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8748





어려서부터 나는 선천적으로 달리기를 못했고, 고2때부터 키가 크지 않았으며, 수업시간에는 잠이오고, 여자를 보면 시선이 돌아가는 병을 가지고 있었다. 이 병은 병명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병이라서 나는 꽤 심각한 증상을 앓고 있었음에도 신검에서 얄짤없는 1등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빌어먹을 국방부 같으니.

선배들은 모두들 내 입대를 축하해 주었고, 특히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 형들은 군대에 갈때의 주의사항과 자신들의 군대축구 얘기 썰을 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얘기가 시작되면 동기 여자애들과 후배여자애들은 어느순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군대에 가기전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던 나는 입대를 약 20일정도 남겨놓고 자취방 계약을 마무리 짓고 짐을 모두 챙겨 본가로 내려왔다. 그 옥탑방은 내 뒤를 이어 다른 친구가 들어가기로 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놀러다니다 오랫만에 내려온 집에서 나는 심신을 달래고 있었... 긴 개뿔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따르르르릉!!"

집에서 뒹굴 거리고 있을때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선배님. 집에 계셨네요."
"어라? 누구냐? K? 왠일이야."
"선배님 영장 나오셨다면서요. 축하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아 그래. 그렇게 상냥한 목소리로 나에게 엿을 먹이지 말아줄래?"
"어머. 전 정말 축하 드리고 싶어서 그런거예요. 남자는 군대에 갔다와야 멋있어지잖아요? ㅋㅋㅋㅋ"
"야 죽을래?"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 받던 K는 갑자기 나에게 학교로 오라는 퀘스트를 주었다.

"오빠 놀지말고, 학교 앞에 오세요. 저 친구들이랑 있어요."
"지금? 지금 서울까지 가면 너무 늦을텐데..."
"그래요? 입대까지 며칠 남았죠?"
"기다려 금방간다."

나는 입대하기전에 위장에 빵꾸나서 갈려고 그러냐는 어머니의 걱정어진 욕지거리를 마음속에 깊이 새기면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군대에 가야한다는 초조감때문에 나는 하루라도 허투로 보낼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한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학교의 단골 호프집에 도착하자, 사장님이 반겨주셨다.

"야 조각아. 너 입대가 언제라고 그랬지?"
"다음달 초예요...."
"오 얼마 안남았네. 총은 샀어? 그거 PX에서 사면 비싸. 형한테 30만원만 주면 좋은 걸로 구해줄께."
"와 사장님. 방금 발언 녹음해서 동대문 경찰서에 제출해도 되죠?"
"하여간 요즘 것들은 놀리는 재미가 없어."

사장님과의 정감어린 면담을 뒤로한채 나는 호프집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K의 친구들이야 어차피 내 후배들인데, 그놈들이 여기에 있었다면, 호프집 안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호프집의 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테이블에는 K가 혼자서 500cc 잔을 앞에놓고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너 뭐해?"
"어 왔어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너 혼자 뭐하냐?"
"아, 사실 원래 저 혼자였어요. 저녁에 심심한데, 선배님 생각나서 전화해봤죠."
"아 그래? 굳이 이렇게 정성스럽게 엿을 먹일 필요는 없었는데.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네?"
"괜찮아요 너무 감동하실 필요 없어요. 술을 사시면 되는 일이니까요."

나는 호프집의 구석에 앉아서 K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선배의 뒷담화와 내친구들의 뒷담화, 최근 나온 만화책 얘기와 패닉과 지누션 얘기를 했다. 입대전의 날들이란 그런 아무런 영양가 없는 얘기들이 위로가 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술이 조금 들어가면서 K의 얼굴은 처음보다 훨씬 어두워졌다.

"전 사실 97학번 오빠들 중에 조각이 오빠가 제일 좋아요."
"그래 나는 98학번 여자애들 중에 니가 제일 잘생긴거 같어."
"그쵸? 제가 쫌 예쁘잖아요."
"아냐 넌 예쁘다기보단 남자다운 편이지."
"그게 그거죠. 쳇."
"그게 그거라고 하자."

어느순간 K의 말이 끊겼다. 나는 호프집 의자에 기대서 잠시 카운터 위쪽에 달린 TV를 쳐다보았다. 뉴스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오빠."
"왜?"
"군대 안가면 안되요?"
"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K를 쳐다보았다. K는 울고 있었다.

"야, 너 왜그래? 울려면 내가 울어야지 왜이래. 얘가?"
"안되겠죠? 안가면 안되겠죠?"
"야야, 울지마 내년에 니 동기들도 다 갈거야. 군대 가는게 뭐라고 울고 그러냐?"

나는 쌔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숙인채로 울고있는 K의 모습은 누가봐도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럼................. 해주시면 안되요?"
"뭐?"
"군대가기 전까지만... 저랑 사귀어 주시면 안되요?"

K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때가 되서야 나는 무언가 눈이 떠진기분이었다. 

"너 설마..."
"저 오빠 계속 좋아했어요. 오빠가 H한테 관심 있던거 알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니... 너..."
"H도 제가 오빠 좋아하는거 알았어요... 오빠랑 H랑 사이가 틀어졌을때 전 내심 기뻤어요. 내가 너무 못된 거라는 걸 알겠는데, 마음이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뭐라고?"
"S오빠가 저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전 계속 죄책감이 들었어요. 더구나 오빠랑 정말 친한 사람인데, 내가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어쩔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S 오빠랑 사귀었어요. 그 오빠가 너무 잘해줘서 너무 좋았는데, 차라리 그때 오빠를 안봤으면 좋았을텐데..."
"무슨 얘기야 너!"
"미안해요. S오빠는 제가 오빠 좋아하는거 알아요. 그래서 헤어졌어요. 저 오빠한테 이 얘기 평생 안하고 싶었어요... 근데... 2년간이나 오빠를 못본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K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면 안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H에게 고백했던 그날 밤 술에취해 옥탑방벽에 기대서 잠들었던 S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H가 너무 보고 싶었다.

"미안해. 내일 전화할께."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채로 울고있는 K를 남겨두고 호프집을 빠져나왔다.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하철역에서 H에게 삐삐를 친 뒤 음성을 남기고 그대로 H의 집앞으로 갔다. H가 과연 나올까? 왜 나는 그렇게 멍청했을까? 왜 나는 그렇게나 소심했을까... 왜 나는...

후회와 자책을 계속하면서 나는 H가 살고있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날씨가 쌀쌀했다. H가 나올까? 전에 왔을때 봐둔적이 있던 놀이터로 갔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서 나는 하염없이 H를 기다렸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때문에 나는 머리에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덜덜 떨고 있었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을때 아파트쪽에서 낮익은 모습이 보였다. 츄리닝 차림의 H는 나를 보자 잠깐 멈칫 했지만, 곧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그네에서 일어나 H가 걸어오는 것을 마주보았다.

"아... 선배님... 좀 놀랬어요. 갑자기 오신다고 해서."

H는 내 눈길을 바로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오내지 슬픈 기분이 되어버렸지만,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아.. 잘 지냈어?"
"아 네... 이제 방학인데요 뭐..."
"나 군대가."
"네... 들었어요... 죄송해요 환송회 못가서..."
"괜찮아. 가기전에 얼굴 봤음 됐지..."

우리는 딱히 나눌말이 없었다. 나는 H를 보기 위해 달려왔지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고? 아직도 널 좋아한다고? 이제 20일 후면 군대에 가야하는데? 지금 널 좋아한다는 말을 다시금 꺼내봐야 무슨 의미가 있지?

"건강히 다녀오세요... 오빠 복학할때쯤이면 전 졸업반이겠네요?"
"그렇겠네... 뭐 학교 4년 다녀서 뭘 배워. 한 6년쯤 다니게 휴학 좀 하고 그래."
"그럴까요? 좋네요. 헤헷"

H는 고개를 들고 나를 향해서 웃어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깨달았다. 무슨 의미가 있다니? 내마음을 전했다는데 의의가 있지.

"일이 이렇게 되서 참 그렇지만. 나 너 좋아했었다."
"네?"

너무 갑작스럽게 꺼낸 그 말에 H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니가 또 말하지 말라고 할까봐 잽싸게 말했어. 속이 다 시원하다."
"오빠..."
"사람이 살다보면 인연이 엇갈릴 때도 있는거고, 뭐 그런건데, 우린 뭐가 그렇게 심각했을까?"
"전... 미안해요. 그때는 제가 너무 당황해서..."
"괜찮아. 어차피 20일 후면 너한테 다그칠 사람도 없어. 설마 내가 이 와중에 너한테 사귀어 달라고 징징대겠냐?"
"전..."

쿨하게 하자. 쿨하게.

"이제 내가 말했으니까, 우리 서먹한 사이도 끝나야겠지? 나 군대가면, 멋있는 남자도 만나서 연애도 하고, 대신 휴가나오면 하루정도는 놀아주면 되지. 내가너무 찌질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않게 해줘."

H는 약간 머뭇거렸지만, 확실하게 내 품안에 안겼다. 이별의 포옹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잘 있어."
"잘 다녀오세요."

나는 H를 품에 안은 채로 조용하게 인사를 하고, 그녀를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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