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심리 상담을 받고 왔어.
더 이상은 혼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벼랑끝에 선 심정으로 힘들게 결정해서 찾아간거야.
내 스스로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였으니까.
아버지는 도박중독자에 가족에게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것.
하나 뿐인 누나는 정신분열증으로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는 성격장애에 알콜중독으로 누나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나는 이 환경을 극복해가는게 아니라 함께 망가져 가고 있다는걸 내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해야하는 힘든 자리였어.
..상황이 워낙 더럽다보니까 상담사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해하더라.
가족이 전부 이러니 어떤 해결책이 있을리가 만무하지.
그저 지금같은 무기력하고 우울한 내 마음에 조금의 변화만 생겨도 좋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나와야했어.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하게 되더라.
고등학교 친구는 바쁘다고 하고, 대학교 친구는 연락을 받지 않더라.
분명 별 일 아닌데 괜시리 더 기분이 울적해지는거 있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간신히 집에 돌아오니 오늘도 어머니는 술에 쩔에 누워 계시네.
마음 한 편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은 느낌에 도망치듯이 다시 집을 나와 하천가를 달렸어.
청승맞게 혼자 비를 그대로 맞아가면서 2km나 달리고 나니까 얼굴에서 눈물인지 빗물인지 뭔가 줄줄 흘러내리더라.
그러다 나도 모르게 전 여자친구한테 연락하게 되더라구.
헤어진지는 1년정도 되었지만 아직까지 반쯤은 연인관계로 지내고 있는 요상한 사이지.
사실 토요일날 상담받으러 간다고. 솔직히 혼자 거기까지 가는게 너무 힘들 것 같다고. 같이 가주겠냐고해서 같이 가기로 했었거든.
그런데 전날 내일 뭐하냐고 물어봤는데 그녀는 나랑 한 이야기는 까맣게 잊고 친구들이랑 내일 술 자리 약속이 있다는 거야.
..내심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 반복해서 물어봤지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관두고 결국은 혼자 갔다 오게 된거야.
그래도 상담 받고 나니까 가장 먼저 생각나더라고.
몇 시간동안 답장이 없길래 걱정되서 방금 전화해봤는데 술 먹는 중이야. 전화하지마. 하고 그냥 끊어버리네.
술 먹고 응급실 실려간게 한두번이 아닌 그녀라서 걱정되서 나도 모르게 연락한건데 내 걱정만 참 우습게 되버렸어.
하긴 최근에는 그녀가 잠자리를 요구해도 나는 응하지 않았어.
이 요상한 관계..계속 질질 끌고 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나랑 사귈때도 내가 정을 주지 않으면 다른 남자를 찾던 외로움 많이 타는 여자라는걸...
,,나는 아직도 잘 알고 있지.
담배가 생각나는 밤이다. 나 힘들어해도 되는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