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그림은 보는 관점에 따라 오리로 보이기도 하고 토끼로 보이기도 합니다. 눈과 뇌에서 이루어지는 시각 메커니즘을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이 그림은 이재명의 실체에 대한 논란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슬픈(또는 잔혹한) 가족사가 이재명의 형인 이재선(사망)의 잘못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재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반대라고 말합니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그의 가족사가 슬퍼진 것은 이재선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반대자들은 이재명의 권력욕 때문에 그의 가족이 희생당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재명이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에 관해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에 '노란리본이 지겹다'며 그를 공격하는 중년 여성에게 '어머님 같은 사람이 나라를 망친다'며 '당신의 자식이 죽어도 그럴 것입니까?'라는 호통에 통쾌해 했지만, 반대자들은 '당신 자식이 그런 일을 당할 겁니다'라는 말에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잘못은 중년 여성이 했는데 대가는 그녀의 자식이 치를 거라는 말에서 형님 부부와의 패륜적인 폭언·욕설 공방이 오버랩 됐습니다.
위의 사진(원래는 그림이다)을 15cm 정도의 거리에서 보기 시작해 30cm 정도 뒤로 물러나며 보면 아인슈타인이었던 얼굴이 마릴린 먼로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안경을 벗고 봐야 한다). 이런 변화는 두 눈의 시차 때문에 일어나는데, 이재명에게서 '전투형 노무현'을 발견하는 사람과 총통이 되기 전의 히틀러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승자가 곧 정의'라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믿음이 경지지사 선거에서도 적용된다면, 그리고 현재의 지지율이 투표장까지 이어진다면 상대적 다수인 전자가 옳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상대적 소수인 후자가 옳을 것입니다.
선거라는 시스템을 기준으로 하면 이재명 지지자들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승리가 보장된 싸움에 명예 따위란 없다'고 생각하는 반대자들도 퇴진운동을 멈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전자는 이재명의 변화를 강조하며 그가 경기지사에 당선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 것이며, 후자는 이재명의 변화를 믿을 수 없다며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제시하며 평행선을 달릴 것입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 다 그들이 보았거나 찾아낸 여러 개의 파편과 흔적들을 가지고 전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둘 중에 어느 쪽의 조각 맞추기가 진실에 가까운 지는 이재명 자신과 '혜경궁 김씨'로 의심받고 있는 그의 부인만이 답해줄 수 있지만, 양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은 확실합니다. 경찰이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상 tvn 드라마 <라이브>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은 제로라 할 수 있습니다.
꿈꾸면서도 외치지 않는 자에게 용기를
지켜보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 투지를
결말을 상상하면서도 처음에 저항하지 않은 자에게 결단을
결과의 숭고함을 내세워 과정의 폭력성에 눈감은 자에게는 정의를
당장의 이익에 자발적 복종을 선택한 자에게는 진실을
현실의 한계에 짓눌려 침묵하는 자에게는 참여를
개인의 자유와 견해의 다름을 주장하는 자에게는 연대를
그리고 모든 이들이 죽음에 이르러 마침내 내려놓을 고뇌의 여정에 대가 없는 평화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