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오징어 까마귀 잡아먹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꾀를 써서 힘을 들이지 않고 일을 해낸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세간에 전해진 다음과 같은 오징어의 '생태'에서 나온 말이다. 오징어는 죽은 것처럼 물 위에 떠 있다가 까마귀가 잡으려 하면 오히려 발로 까마귀를 감고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사람들은 이 속설의 증거로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이름이다. '오징어'가 워낙 한자로 '오적어'(烏賊魚)였고 '까마귀 도둑'이라는 그 뜻이 위 이야기에서 유래됐다고 풀이된다. 오적어 발음이 변해 오징어가 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헌 자료다. 실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전(1758~1816)이 책 '자산어보'에 위와 같은 오징어의 까마귀 사냥이 소개됐다는 것이다.
◆ 까치가 오징어한테 속으랴= 오징어는 머리가 좋다. 문제해결 능력을 배우고 이를 응용할 수 있다. 갑오징어는 물을 뿜어 펄을 불어내고 그 속에 있던 게나 새우를 잡기도 한다. 갑오징어는 또 피부 색을 바꿔가며 의사소통을 한다. 갑오징어는 피부를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바꿀 수도 있다.
영리한 오징어가 까마귀를 속일 수 있을까. 까마귀는 오징어의 속임수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 까마귀는 오히려 가장 교활한 동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꾀가 많다. 까마귀는 영장류를 제외한 동물 중 드물게 도구를 사용한다. 잔가지 같은 사물을 도구로 써서 먹이를 잡는다.
둘째 의문이다. 오징어가 저보다 더 크고 부리라는 무기를 지닌 까마귀를 제압하고 나아가 통째로 잡아먹을 수 있을 듯하지 않다. 도서출판 여초가 펴낸 생명과학대사전에 따르면 오징어는 작은 어류, 새우, 게 등을 잡아먹는다.
◆ 오징어 낮에 200m보다 깊이 머물러= 두 동물의 생태가 의심을 더 부추긴다. 오징어는 낮에는 수심 200~300m대에서 지내다 밤이 되어서야 앝은 바다로 올라오는데, 이 때에도 수심 20m 안팎에서 다닌다. 오징어가 낮에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까마귀 잡이 미끼로 쓴다는 얘기는 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또 숲에서 사는 까마귀가 바다에서 오징어와 조우한다는 '설정'도 이상하다. 까마귀는 들쥐, 벌레, 다른 새의 알, 새끼, 곡류, 열매를 먹는데, 제가 평소에 섭취하는 먹이가 있지도 않고 사냥법도 통하지 않는 바다로 가서 날아다닌다는 얘기가 수긍이 가지 않는다.
생물학자가 아닌 필자가 오징어가 과연 까마귀의 천적인지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까지 읽은 독자께서는 그런지 아닌지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 남북조시대 기록에 처음 등장= 오징어가 까마귀의 적이라는 데에서 '烏賊魚'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유래설은 오래 된 얘기다. 명나라 시대인 1596년에 간행된 서적 '본초강목'은 이전 서적 '남월지'를 인용해 이 이야기를 전했다. 현재 전해지지 않는 '남월지'는 중국 남북조시대 인물 심회원이 589년 남쪽 지방 토착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은 책으로 알려졌다. 이 얘기가 지난 1500여년 동안 오징어와 까마귀에 대한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烏賊魚'에서 '賊'자가 워낙은 다른 글자였다는 풀이도 있다. 워낙은 이와 발음이 같은(중국어 기준) 魚卽자가 들어갔다가 더 간단한 글자인 賊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魚卽은 '오징어 즉'자다. 이 풀이에 따르면 원래 단어 '烏魚卽魚'는 '까마귀처럼 까만 먹물을 뿜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한편 조선 숙종 때인 1690년 간행된 중국어 사전 '역어유해'는 오징어를 '烏O魚'로 표기했다. O에 해당하는 한자는 요즘 쓰이지 않는 '賊' 아래 '魚'를 받친 글자로 오징어를 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단어는 '까마귀 도적'이 아니라 '(먹물이) 검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 정약전은 믿지 않았다= 마지막 의문이다. 실사구시를 표방한 실학자 정약전이 이 이야기를 그대로 자신의 책에 적었을까.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남월지'를 인용해 "오징어는 까마귀를 좋아하는 성질이 있어, 물 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오징어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쪼으려 할 때 발로 감아 잡아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 먹는다"고 전하고 다른 설도 소개한 뒤 "그러나 아직 실상을 보지 못하여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약전은 이 이야기를 '우화'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자료)
정약전 저, 정문기 옮김, 자산어보, 지식산업사
박수현, 오징어, 네이버캐스트 이미지사이언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contents_id=24240동아일보, 강아지 지능의 문어, 수명은 고작 2년 '가문박명', 2011.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