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의 경영 승계는 삼성전자그룹(이하 삼성)으로써는 십 수년 전부터 해왔던 작업입니다. 이는 모든 재벌이 하는 것이라 삼성만의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건희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삼성의 승계작업이 빨라져야 했고, 삼성의 경영승계에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제일모직을 공중분해시킬 필요가 생겼습니다. 때맞춰 이명박근혜 9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랜들리’와 박근혜의 줄푸세는 온갖 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승계작업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미래전략실이 주도한 승계작업에서 관리의 삼성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속출한 것을 설명하려면 이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온갖 무리수들은 이명박근혜 9년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근혜가 집권했을 때 밀어붙인 것이지요.
오늘 썰전에서 다룬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의 경제관을 가진 박형준은 로직스의 회계기준 변경이 국제기준을 따랐기 때문에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자회사를 관계회사로 돌리는 과정에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과 복제약 유럽 허가를 이유로 로직스의 미래가치를 12배로 뻥튀기한 것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로직스가 회계기준을 바꿔 미래가치를 12배로 뻥튀기한 것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로직스의 자회사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적대적 M&A)가 거의 100% 확실해야 합니다. 로직스의 뻥튀기는 바이오에피스의 복제약 유럽 승인 획득 때문에 가능했지만,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12배까지 올리는 것은 100% 불가능합니다. 콜옵션 행사는 뻥튀기를 위한 사전작업이었습니다.
금감원도 이 부분에 주목했는데, 심지어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를 로직스 측에서 요청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불법적인 분식회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직스를 뻥튀기하려고 아예 작정한 채 모든 일을 진행했다는 뜻이 되니까요. 금감원의 판정에 금융위가 동의하면 파생상품을 이용한 불법적 분식회계 때문에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된 엔론사(당시 미 기업랭킹 5위)처럼 로직스도 상장폐지를 면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럴 경우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로직스의 뻥튀기가 무효화되는 것을 넘어 삼성물산과의 합병이 불법으로 귀결됩니다(삼성장학생이 즐비한 법정에서 최종 판정이 나겠지만). 로직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삼성물산과의 합병비율도 정당성을 잃어버립니다. 삼성으로써는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의 경영 승계가 백지화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한 것이지요.
유시민 작가가 로직스의 기업가치가 높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로직스가 상장폐지되면 주주들의 피해가 크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연쇄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의 붕괴에 비견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너무 커서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적용되는 실제 사례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유 작가의 바람처럼 로직스의 기업가치가 높다면 수천억 수준의 벌금과 이재용의 퇴진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운용에도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한진그룹 정도라면 해체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지만 한국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외국인 주주 비율이 최대 걸림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반삼성 정서(이재명처럼 재벌체제 해체 운운하는 것은 경제현실을 너무 모르는 소리다)로 접근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국정농단과 적폐의 중심에 삼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줄이고 분산시키는 것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는 점에서 금융위의 결정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삼성을 넘어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인 4대재벌의 경제력 집중도 완화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중요합니다. 김상조의 공정위가 칼을 빼든 재벌개혁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하면 금융위의 결정에 문재인 정부의 미래까지 달려있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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