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기자]삼성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3가 발표될 때 기자가 눈여겨 본 것은 하드웨어 스펙이나 기능이 아니었다. 가격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격이 어느 정도 되느냐보다 가격을 공개할 지 말 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가격 공개야말로 삼성이 더 소비자 친화적이게 되는 첩경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애플은 제품을 발표할 때 대부분 가격을 공개한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전략 제품일 경우 거의 예외가 없다. 애플은 가격 트렌드도 만들어냈다. 발표된 신제품이 전작과 같은 가격이 되고, 전작은 100 달러 인하된다. 전전작은 인하폭이 더 커 200 달러다. 이 구조는 다음 신제품이 발표될 때까지 계속된다. 애플의 이런 가격 정책은 소비자에게 두 가지 점에서 감동을 준다. 먼저 투명성과 공평함이다. 애플 제품 가격은 투명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속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애플이 책정한 가격이 다소 비쌀 수는 있다고 느껴도 프리미엄 제품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기꺼이 수용한다. 어떤 유통 채널을 통해서든, 누가 사든, 본래 가격은 다 같다고 믿기 때문에 손해라는 느낌도 없다. 소비자는 오히려 실질적으로 제품 가격이 인하된 거라고 느낄 정도다. 새 제품은 연구개발비가 추가되고 새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산원가가 올라가게 마련이지만, 애플이 전작과 같은 가격에 신제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애플은 심지어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에 의무 가입 할 경우 약정 보조금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애플이 파는 단말기 가격은 원래 얼마인데 2년 약정 가입하면 얼마라는 식이다. 그 차액이 이통사 약정 할인액인 셈이다. 에누리 없는 단말 가격과 이통사 약정 할인액이 투명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별 불만이 없다. 애플은 소비자를 위해 제품 최종 유통 가격까지 신경 써 관리하는 셈이다. 애플이 휴대폰 시장을 혁신할 수 있었던 건 터치 기반의 편리한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 장터라는 플랫폼으로 이용자 중심 사용 환경을 만든 게 결정적이지만, 유통에 개입해서 투명한 가격 구조를 만든 것도 한 몫 했다. 소비자로서는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이 살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다. 애플에 비하면 다른 회사의 가격 구조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유통 과정에서 출고가, 판매가, 공급가 등 명칭과 의미가 다른 가격이 여러 구조로 형성된다. 사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즉 사는 사람의 운에 따라, 또는 발품에 따라 실제 구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는 가격을 신뢰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유통 시장을 이동전화 서비스 업체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애플과 달리 자기 제품의 가격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이동전화 사업자와 협의를 통해 출고가를 결정한다. 대리점 등에게 돌아갈 유통 과정의 비용과 이동전화 사업자가 지급하게 될 보조금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진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제조업체와 이동전화 사업자가 짜고 가격을 부풀렸다며 이들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필요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놓고 보조금과 요금할인 등을 통해 싸게 해준 것처럼 소비자를 유혹했다는 것이다. ‘공짜폰’이란 이름이 횡행하고 늘 깎아주기 때문에 공표되는 가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이런 유통구조를 바꾸고 가계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지속적인 대책은 내놓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랜 준비 끝에 지난 1일부터 휴대폰 자급제라는 것을 도입했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자급제용 단말기는 단 한 개도 없다.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해 제품을 준비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제품은 보조금 없이는 팔 수 없는 불완전한 상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면 수요와 공급이란 시장 원리 속에 형성된 가격보다 훨씬 비싸거나. 이에 앞서 지식경제부도 휴대폰 가격표시제를 시행했지만 이 또한 효과가 없다. 위에서 본 것처럼 표시 가격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갤럭시S3의 사전 가격 공개를 기대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업체는 이동전화 사업자가 유통을 장악하고 있어 여전히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어여삐 봐줄 수도 있겠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애플을 누르고 세계 시장 1위에 오른 업체다. 제조업체 1위로서 자존심도 있을 것이고, 이제 자신의 소비자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기업의 윤리의식도 작동할 때가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격 구조의 꼼수’로 연명한다면 삼성으로서는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도 삼성은 자존심보다 실리를 택했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고, 현재 이동전화 사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저울질 중이다. 삼성이 원하는 ‘퍼스트 무버’는 자존심을 세울 때 가능하고, 그때에야 소비자는 감동한다. 이균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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