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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을 잘라버린 강감찬 장군
게시물ID : mystery_64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스트댓
추천 : 5
조회수 : 490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7/18 15:01:53
LIGHTNING IN SLOW MOTION! 벼락 슬로우 모션
 
 

사람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와서 그 사람을 치고 벌을 주는 것인데 옛적에는 벼락 치는 일이 흔했단다. 부모한테 잘못해도 벼락 맞고 형제간에 우애가 없어도 벼락 맞고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밥풀 하나가 모르고 시궁창에 들어간다든가 콩나물 깍대기나 호박씨 같은 것을 버린다든가 하는 하찮은 짓에도 벼락을 맞게 되니 사람들이 맘 놓고 살 수가 없었단다.
 그런데 강감찬이란 옛날 훌륭한 분이 이렇게 사람들이 걸핏하면 벼락 맞아 죽게 되어서야 쓰겠냐고 염려해서 벼락 칼을 분질러 없애려고, 하루는 일부러 샘물가에 앉아서 똥을 누었다. 그러니까 당장 하늘에서 벼락 칼이 내려와서 강감찬이란 분을 치려고 했다.
강감찬이란 분은 얼른 벼락 칼을 잡아서 분질러 버렸다. 그랬더니 그 후부터는 벼락 치는 횟수도 적어지고 벼락 칼도 도막 칼이 되어서 얼른 나왔다가 얼른 들어가게 되므로 사람이 훨씬 덜 벼락 맞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구전설화」임석재전집7, 전라북도편, 평민사(1989)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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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을 잘라버리다 2
 
강감찬은 전쟁 중에 벼락으로 죽은 병사들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걸핏하면 벼락 맞아 죽게 되어서야 쓰겠냐 고 염려해서 벼락 칼을 분질러 없애려고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일부러 샘물가에 앉아서 똥을 누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벼락 칼이 내려와서 강감찬을 치려고 했습니다. 강감찬은 얼른 벼락 칼을 잡아서 분질러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후부터는 벼락 치는 횟수도 적어지고 벼락 칼도 반이 잘려버린 터라 얼른 나왔다가 얼른 들어가게 되므로 사람들이 훨씬 덜 벼락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감찬이 죽은 후 다시 문곡성의 원신으로 돌아가자 그의 앞에 뇌신(번개신)이 나타나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벼락 칼이 반토막이 난 것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문곡성은 그 이후부터 벼락 칼을 잇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 원상태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 이은 칼은 직선으로 잇기가 불가능하여 엇갈리게 접합시켜 지금의 벼락 모양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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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 있는 강감찬 장군 동상
 
강감찬(姜邯贊: 948~1031)은 고려의 문신(文臣)이자 명장(名將)이다. 태어날 때 그 집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낙성대(落星垈)는 현재 국가에서 관리하는 유적지이며, 장군의 영정을 모신 안국사(安國祠)에는 지금도 관광객들의 향화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고려 성종 3년(983)에 과거에 갑과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현종 9년(1018)에는 거란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맞아, 소가죽으로 막았던 물을 일시에 터뜨려 적을 궤멸시킨 귀주(龜州)대첩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큰 공을 세웠다. 개선(凱旋)시에 왕이 친히 영파역(迎波驛)까지 영접을 나왔으며, 사후에는 현종 묘정에 배향되었다고 한다.
 
문곡성(文曲星)의 화신(化身)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또한 많은 이적(異蹟)을 나타내 보였다고 한다. 한성판윤으로 부임할 당시에는 중으로 변하여 길가는 사람을 수없이 해치던 호랑이에게 편지를 써서 관아로 부른 후에 크게 꾸짖기도 하였고, 어느 혼례식에 가서는 신랑행세를 하는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는 등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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