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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비수사', 그 낯선 신비주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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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러브액땜얼리
추천 : 1
조회수 : 8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20 03: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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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곽경택 감독의 부산 배경 영화들에겐 개인적으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살아왔던 친숙한 동네와 거리가 나오고,

미술 못지 않게 당시 정서에 대한 고증이 잘 되어 있어

"아, 그 땐 저랬었지" 라며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 꽤 많다.

그의 초기작 '억수탕'은 우리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목욕탕이며,

영화 '친구'는 고등학교시절 배경과 너무 닮아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삼일, 삼성극장, 좌천동 철길 같은 장소는

내가 졸업한 금성고등학교와 매우 가깝다.

이보다 위치적으로 더 가까운 남자 고등학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곽경택 감독이 금성고를 나왔나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부산고를 나왔고 그 학교는 지금 우리 아들이 다니고 있기도 하다.

(금성고를 피한 행운까지는 좋았지만 곽감독의 운은 거기까지였던 모양이다.ㅎ)

이처럼, 익숙한 장소가 너무 많다.

새 영화 극비수사는 197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의 납치사건,

남성국민학교 정효주양을 소재로 한 영화다.  

나의 누나들이 남성국민학교를 졸업했기에

역시 감정이입 되기에 부족함 없는 소재의 영화이다.

영화를 보기 전 알고 있었던 정보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명배우 김윤식과 유해진이 나온다는 것 정도.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이 특이한 영화에 대해 몇 자 끄적거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화를 다루고 있는 이 다큐성 수사물의 절반엔 신비주의가 결합되어 있다.

극비수사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가 비공개수사로 진행된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점쟁이가 수사에 참여했고

수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인데,

수사관 공길용 형사와 점쟁이 김중산 도사는 실명으로 나오고

엔딩 크레딧에 최근 실물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김 도사는 15일 만에 범인에게 전화가 걸려올 것이고

33일 만에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예측했는데

이건 실화라고 한다.

당시 형사였던 공길용 전 총경(74)은

"경찰 체면상 미신을 앞세워 범인을 검거했다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공개하지 않았다"

고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했다.

영화는 이 수사과정 전반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엔딩이 올라갈 때 살짝 뻥 찔 수 밖에 없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게 되는데

감독의 메시지는, '이 사건의 해결엔 점쟁이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이런 신비주의적 수사물은 낯설 (언캐니.uncanny) 수 밖에 없다.

최근 경향과는 동떨어져 있고 그래서 예상못했다는 의미에서 미학적으로 신선하긴 하지만,

곽감독이 정색하며 이 주제를 꺼내들고 나왔다는 것은 당혹스럽다.

개인적으론 신비주의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소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신비주의 소재를 다루는 걸 좋아하고 즐겨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돌직구 방식은 유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70년대말~80년대의 드라마 트렌드를 기억하기로는,

계몽주의적 경향이 강했다.  

수사반장 같은 수사 드라마나 외화에서 이런 소재를 다룰 때,

처음은 미스터리와 신비주의로 진행되다가

범인을 잡고 범죄과정을 복기하는 순간은 철저히 과학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요즘 드라마에서 주는 교훈이 '진실한 사랑'이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라는 윤리를 기저에 깔고 있다면,

당시 수사 드라마의 교훈은

'미신은 사기이고,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하다.'는

계몽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만연되었다고 생각되는 미신은 극복되었고,

덩달아서 그런 교훈을 강조한 드라마도 점차 없어졌다.

심지어 이제 아무도 그런 '초반 미신 - 후반 과학적 결과'를 내건 수사물을 만들지 않을 때,

곽감독은 그 앞에서 오히려 "33년 전 그 사건은 미신으로 해결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인식의 층위에서 볼 때는 반동(反動. réactionnaire)에 가까운 것이고,

예술표현의 사조로는 19세기 신비주의로 돌아간 듯 보인다.

그래서, 친숙한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

곽감독의 이번 영화에는 미묘하게 공감할 수 없었다.

물론, 신비주의를 믿지 않는 사정에 의한 것이고,

점 등을 믿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경우의 이야기이다.

오히려 흥미진진할 수 있다.

심지어 믿을 수도 있을 것이고.

영화 극비수사는 여러모로 미국드라마 미디엄 (한국판 제목 : 고스트 앤 크라임)을 연상케 한다.

신비주의를 믿진 않지만 드라마로 보는 건 좋아한다고 했는데,

'미디엄'은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이다.

7 시즌에 걸친 130 편을 몇 달에 걸쳐 다 보았고 (근성의 시청~ㅋ),

애들 영어공부에 혹시 도움이 될까봐 자막 없이 몇 편을 애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이 드라마도 어느 정도는 실화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앨리슨 드부아라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살고 있는 미디엄(영매.Medium)이

지방검사장을 도와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골격은 극비수사와 비슷하다.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극비수사를 보면서 앨리슨 드부아(패트리샤 아퀘트 분)가 연상되어

곽감독이 미드 미디엄에서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했다.

연출과 극본의 탄탄함은 에미상 수상작인 미디엄이 아무래도 한 수 위다.

점쟁이가 형사를 도와 강력사건을 해결하는 장르 작품으로는 미디엄이 탑픽이다.

다만, 그런 미디엄 조차 어디까지나 재미로 극을 구성한 것이지,

엔딩에 '이것은 실화입니다'라는 강한 해석의 방식은 택하지 않았다.

적어도, 'Believe it or Not(믿거나 말거나)' 의 여지는 줄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옳다기 보다, 그것이 더 세련된 접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드한 주장도 세련된 형식에 담을 수 있고,

그런 주제에 있어서의 모호한 주장은 선택지를 분명히 밝힌다는 맥락에서

오히려 인식의 명료함에 닿아 있다.

하지만, 그런 강한 해석과 주의주장 전개는 부산 사나이의 전형이기도 하고,

곽감독에게서 그런 면모를 보는 것은 어떤 향수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점쟁이 말이 맞나 안맞나" 하는 것은 어쩌면,

"조오련하고 바다거북이하고 수영시합하면 누가 이길꼬"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ㅎ

그 외, 영화의 미술 고증은 꽤 괜찮았고,

여의도 시범 아파트 주차장을 가득 메운 70년대의 올드카,

그리고 도로를 빼곡히 채운 퍼블릭카, 그라나다, 포니 1, 브리사 등을 보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었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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