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모와 고모는 다릅니다.
우리는 식당 여사장님을 곧잘 '이모님'이라고 부르지요.
아무래도 어머니의 자매가
아버님의 누이보다 더 살갑게 느껴저서 그렇겠지요.
2.
영어로는 이모도 고모도 앤트입니다.
심지어는 숙모, 아줌마 모두 앤트이지요.
언어는 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존댓말도 반말도 없는 서구권이기에
모든 여성 친척은 앤트로 퉁 칠 수 있지만,
모계냐 부계냐
나이가 많냐 적냐가
꽤나 중요한 이쪽은
서로 다른 단어로 이를 구분합니다.
우리는
'이모'라는 단어를 쓸 때도
서구권처럼 나의 친척에서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엄마쪽 친척'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품게 됩니다.
3.
결국
언어는 알게 모르게 많은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분명히
그 쓰임이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나이 구분할때 쓰이는,
더 나아가 상하관계를 형성하는
형, 동생이란 단어도 우리나라에만 있지요?
"내가 니 친구냐" 라는 프렌들리한 문장이
우리나라에선 비난의 의미로 쓰이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4.
민간인 사찰, 혹은 대국민 사찰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사찰은 이렇게 2가지 였습니다.
어떠한 매체나 기사에서도
문제되는 사찰은 딱 2가지 단어로만 검색됩니다.
그런데 어제 유서를 접했을 때,
한 단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으로 봤던 단어였거든요.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
5.
우리가 쓰고 있는
'내국인'을 붙이는 대표적인 단어란
내국인 카지노 출입정도 일것입니다.
이것은 행위의 단어입니다.
외국인과 내국인을
둘 다 고려했을 경우에만 쓸 수 있는 단어이지요.
'민간인 카지노 출입'이라고는 잘 안씁니다.
이것은 가치판단의 단어니까요.
굳이 카지노란 부정적인 단어에
민간인이란 말을 붙이진 않습니다.
6.
주목할 점은 처음으로 쓰인
'내국인 사찰'이라는 단어입니다.
스파이 사찰, 간첩 사철이란 단어는 없지요.
쓰질 않지요.
사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위니까요.
언제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민간인 사찰, 대국민 사찰입니다.
사실 그들은
그 단어가 탐탁치 않았을 것입니다.
부정의 행위임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자기들의 행위에 그토록 부정적 단어라니
내부적으론 다른 단어를 썼었겠지요.
7.
'언어는 그 쓰임이 있을 때 존재한다.'
20년간 근무했던 사람이
어떠한 매체나 어떠한 기사에도 쓰이지 않던
'내국인 사찰'이란 단어를 썼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할까요?
8.
'내국인 사찰은 없었다'라는 말은
반대로
'내국인 사찰을 염두에 뒀었다'라고 해석됩니다.
아니라면
민간인 사찰이나, 대국민 사찰이란 단어를 써야지
굳이 지금껏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쓸 일이 없으니까요.
결국
내국인 사찰이란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찰의 목표가 내국인일지 외국인일지는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고려는 해왔다고 의심해볼 수 있을것입니다.
언어는 그 쓰임이 있을 때 존재하니까요.
9.
어쨌든 검증은 시작됩니다.
안철수 의원님의 존재감이 이토록 커진건
도스시절 386컴류터를 V3로 부팅하던 이후 처음입니다.
리부트하는 순간
히어로물은 전설이 되지요.
진실의 리부트,
기대합니다.
10.
그럼에도
모든 가치의 우위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후회든 억울하든
누군가는 몇리터의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릅니다.
슬픔이자 비극입니다.
마지막으로
386세대의 중심에 있었던
지금은 두 딸의 가장이었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