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는 그날 저녁 장주원 일병이 신병위로휴가에서 복귀하면서 시작되었다. 장주원 일병이 막 복귀 신고를 마치고 총기를 생활관에 옮기러 나올 때, 싸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 이용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승현 상병과 마주쳤다.
"어! 충성! 오승현 상병님. 휴가복귀 헀습니다. 흐흐흐"
"넌 방금 신병휴가 복귀 한 놈이 뭐가 그렇게 헤벌쭉하냐?"
"하하하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하긴, 농담이야. 가봐."
"예 충성! 고생하십시오!"
승현은 밝지만 항상 덤벙대고 눈치 없는 장주원 일병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한번 껀덕지만 잡히면 버릇을 제대로 고쳐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장주원 일병을 지나친 승현은 행정반 앞에 붙어있는 그날 경계근무표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눈을 굴렸다. 젠장... 어제 불침번을 섰는데 오늘도 2번초였다. 분명 후임들이 잔뜩 휴가를 나가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결국 그날 밤 승현은 왜 자신의 군생활이 점점 꼬여만 가는지 의문을 품으며 잠에 들었다.
승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전번초인 이동현 일병이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오승현 상병님, 불침번 서실 시간입니다."
취침등만이 켜진 어두침침한 생활관에서 승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그의 손목시계는 11:4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승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자기 전에 미리 꺼내 놓은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생활관을 나섰다. 12시 정각의 복도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복도 끝에 밝혀진 행정반의 불빛만이 칠흑같은 복도의 어둠과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승현이 행정반에 들어섰을 땐 그날 당직사관인 한상수 상사가 의자를 젖힌 채 잠들어 있었다. 물론 당직 부사관인 김신호 상병도 책상에 쓰러져있긴 마찬가지였다. 승현은 한동안 이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마음만 같아선 이대로 조용히 나가서 편안히 근무를 서고 싶었지만 나중에 괜히 투입신고를 안했다는 죄목이 씌워질 수 있기에 이들을 깨우기로 결심했다.
"충성!! 상병 오승현 12시에서 02시 불침번 근무 투입하겠습니다!!"
승현은 이들을 확실히 깨우려고 일부러 한 단계 더 크고 절도 있게 신고를 했다.
그제야 한상수 상사와 김신호 상병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특히 김신호 상병은 심하게 놀랐는지 책상위에 베고 있던 소설책을 떨어트렸다.
"....그래그래 근무 열심히 서고... 아! 오늘 휴가 복귀한 애, 지훈인가? 걔가 체온이 좀 높게 나와서 그런데 근무 설 때 한 번씩 체크해줘."
"장주원 일병 말씀이십니까?"
"그래그래, 주원이, 그럼 고생해라."
한상수 상사는 대충 일러준 뒤 서둘러 승현을 내보냈다. 다시 달콤한 꿈나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행정반을 나선 뒤 승현은 제일 먼저 자신이 앉아있을 의자를 생활관에서 꺼내온 뒤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복도가 앞으로 남은 자신의 군 생활 일수를 상징하는 것 같아 우울해 진 채로 승현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자아성찰로 빠져들어 갔다.
그런지 얼마쯤 지났을까, 승현은 문득 한천수 상사가 일러준 지침을 기억해 냈다. 근무가 끝나기 전에 한번은 체크해보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주원이가 소속되어있는 4생활관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