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거닐다
그렇게 숲길을 거닐어 보다.
꽃길을 거닐다
그렇게 꽃길을 거닐어 보다.
문득, 실수로 밟아버린 꽃 한줌에
마음이 울적해져 잠시 주저앉았다가
비가 내려 하늘을 쳐다보았다.
둥근달이 찬란하게 하늘위에 떠 있는데
그 둥글고 커다란 보름달이
하나, 둘, 셋, 넷
가로등이었다.
주저앉은 엉덩이 아래 깔려 있는 꽃은
마치 꽃과 같은 거리의 조명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스스로의 딱딱한 시선이 문득 떠올라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가로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것을 보니 취했나 보다.
한잔 따라놓은 맥주와 얼음 몇 조각
한잔 따라놓은 소주와 골뱅이 조각
섞기도 전에 취한 듯하다가
폭탄이라 소리치면 이상하게 취하지 않은 듯 하고
오랜만에, 딱히 탐탁치 못한 목 넘김을
조류가 마치 긴 시간 끝에 감로수를 찾은 듯이
고개를 쳐들고 억지로 목울대를 움직인다.
술은 한잔만 마셔도 취한 사람이다.
그래. 나는 취한 사람이다.
억지로 최면을 걸 듯 되새겨 보지만
한잔으로 이성이 나갈 정도로 취하지는 못하고,
그렇게 억지라는 말을 붙여 두잔, 세잔, 위속으로 털어 넣은
온갖 술들 덕분에 지금 비가 내린다.
머리 끄트머리, 소매 끝자락 하나 적시지 못했지만
비가 내린다.
왠지 진짜로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아 머리 위를 만져보지만
오늘따라 갑자기 없어진 머리숱에 소스라치게 놀라 술이 번쩍 깨고 나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원래 없었잖아.'
그래. 원래 없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