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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적어본 캄보디아의 역사.txt
게시물ID : history_222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롬사용자
추천 : 12
조회수 : 3281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5/07/27 00:51:27
캄보디아의 역사(특히 고대사)를 알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캄보디아인의 역사서가 안 남아있어서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가 추측하는 캄보디아의 역사는 다른 나라의 기록(특히 중국)과 비석등의 유적에서 알아볼 수 있는데
중국인이 쓴 기록의 상세도는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고 
비석에 쓰인 내용은 대개 사원건립, 전쟁의 승리 등을 기술하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캄보디아인의 역사서는 어디갔느냐, 워낙 후반부 역사가 사나웠기 때문에 남은게 없습니다(...)

어쨌든 기록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캄보디아 땅의 최초 국가는 푸난(扶南,부남)인데
대략 1세기경에 건국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부남은 엄밀히 따져서 캄보디아인(즉 크메르인)의 국가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크메르인이 여기까지 진출했다는 증거가 적은지라(오히려 선주민인 말레이인 국가였을 가능성이...)
(크메르인의 조상은 티벳에서 왔다고 합니다. 몬크메르족이라고 하는데 몬족(몽족)은 분리되어서 버마로 가고...)
특징이라면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힌두교의 영향이 컸다는 점?
해상무역을 주도하면서 상당히 번성했고 특히 3세기 판시만왕(Fan Shih-man) 때 최대로 번성하여 
지금의 버마, 캄보디아, 말레이반도 일부 등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를 거의 다 정복합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1/FunanMap001.jpg


여기서 조금 첨언하자면 인도차이나 반도의 네 나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은 다 각자 다른 역사를 가진 다른 민족입니다
그리고 민족들의 역사는 위에 적은대로 순서입니다(사실 캄보디아 역사는 더 길수도 있지만 기원전의 기록이 남아있는건 베트남 뿐인지라)
태국인들은 여기에 약간 컴플렉스를 갖기도 한다나 뭐라나


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3세기에 최대의 번성을 맞이한 부남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인들이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중계무역 거점으로의 위상에 큰 손상을 입은게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쇠퇴하던 부남은 7세기경 한때 속국이던 첸라(眞臘,진랍)에 복속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진랍은 확실한 크메르인의 국가인데 6세기에 건국되었다고 여겨집니다
7세기에 전성기를 맞아 그 뒤로 수나라에 조공도 보내고 메콩강 하류도 점령하면서 제법 위세를 떨쳤으나
전성기를 불러온 왕 자야바르만 1세의 사망 이후 8세기 초반에는 육진랍(陸眞臘)과 수진랍(水眞臘)으로 분열되었는데 이름에서 보듯이 육진랍은 북쪽의 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수진랍은 남쪽 해안과 톤레삽호 부근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http://pds18.egloos.com/pds/201106/18/24/e0079724_4dfc7e42b9bb6.jpg

여기서 또 잡설 좀 넣고 가겠는데, 이 부남과 진랍(크메르 제국)의 왕들의 이름을 보면 ~바르만(varman)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칭호는 '~의 보호를 받는 자' 라는 뜻입니다. 

여튼 진랍은 육진랍과 수진랍으로 나뉘어졌는데, 그중 수진랍은 사일렌드라(속편하게 자바라고 생각합시다)에게 두들겨맞고 속국신세가 됩니다.(들리는 말로는 수진랍 왕이 자바왕의 목을 보고싶다고 말한게 걸려서 털렸다는데...)
이때 포로로 끌려갔다 귀환한 인물이 바로 자야바르만 2세로, 그는 진랍을 통일하고 지금의 시엠립 근처에 수도를 옮긴 후 
스스로를 만국의 통치자라고 선언합니다. 즉 자바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동시에 크메르제국의 시작을 알린 것입니다.

크메르제국부터는 남은 기록의 양이 꽤 늘어나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간략한 역사를 다루는 거니까 중요한 왕 셋만 언급하겠는데
크메르제국의 1차 전성기를 가져온 수리야바르만 1세(1006~1050)
앙코르와트를 건립한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50)
앙코르톰을 건립하고 크메르제국의 최대 전성기를 가져온 자야바르만 7세(1181~1218)입니다

어째 중요한 왕들이 언급되는 부분이 띄엄띄엄한건 기분탓이 아닙니다. 크메르제국은 분명 강력한 국가였지만 주변 민족들 또한 만만찮은지라
전란이 끊이질 않았고 수도인 앙코르를 털린것도 네차례나 됩니다. 게다가 원래 힌두교의 세력이 강했는데 대승불교가 유입되며 충돌하면서 생긴 혼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http://pds19.egloos.com/pds/201007/27/24/e0079724_4c4e31259b32f.gif

전성기의 크메르제국은 발달된 관개시설을 바탕으로 3모작이 가능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마어마한 국력을 자랑했는데
단일 사원으로는 세계 최대라는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등 유적들의 위용은 당시의 국력을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몽골도 크메르제국에 집적대지 못했..다기보다는 그냥 동남아에서는 털리기 바뻤죠 뭐...
아무튼 이때 원나라 사신 주달관이 남긴 진랍풍토기가 시대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13세기 들어서 크메르제국도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지나친 토목공사로 인해 국력을 소모했느니, 권력투쟁으로 국력을 깎아먹었느니, 소승불교의 유입으로 왕권이 약화되었느니 하는 내부적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옆나라 시암(지금의 태국)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 그 원인입니다.

그 후 1431년 앙코르를 포기하고 지금의 프놈펜으로 천도하기까지는 시암과의 끝없는 전쟁의 연속... 
결국 세번째로 앙코르를 털린 후 크메르제국은 앙코르를 포기하고 지금의 프놈펜으로 천도합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톤레삽호와 메콩강의 자연방어선을 확보하려는 속셈이고, 힌두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힌두교 사원이 한가득인 앙코르는 별로 지킬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 진랍풍토기에 보면 사원마다 금은보화로 떡칠을 해놨다고 기술되어있는데 시암과의 싸움에서 다 털렸습니다(...)
이때부터는 크메르제국이라 안부르고 그냥 캄보디아라고 호칭합니다.

그 후를 간략하게 서술하자면 안습의 끝장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동서 양쪽의 강대국인 아유타야(태국)와 베트남에게 열심히 털리다가
나중에는 아예 속국화되기에 이르러 왕위를 가지고 두 나라의 대리전을 치르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군사적 개입이 있을때마다 열심히 영토를 대가로 떼어주면서 점점 땅이 줄어들어 현재의 영토까지 쪼그라듭니다. 특히 메콩강 하구를 뺏긴게 많이 아팠는데 이로 인해 부남시대 이후로 가지던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은 영원히 바이바이...

결국 털리다 털리다 지겨웠던 나머지 1863년에는 자진해서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887년에는 아예 식민지가 되었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식민지시절에 얻은 이득 그런거 없습니다(...) 앙코르지역을 되찾은것 정도?

우여곡절 끝에 1953년 완전히 독립합니다. 이후 1970년까지 왕정이 지속되는데 오랜만에 캄보디아는 안정을 찾습니다.
이 시절에는 농업국가로 적당히 오손도손 잘 살았습니다. 옆나라는 베트남전쟁중이라 별로 조용하진 않았지만...
그러나 시아누크왕의 독재와 줏대없는 외교로 서서히 나라가 혼란해집니다.

여기서 쿠데타가 짠! 론 놀이 쿠데타를 일으켜 크메르 공화국을 세우고 왕을 쫓아냅니다.
미국이 남베트남을 견제하고자 사주한 쿠데타였는데 미국과 북베트남이 베트콩 잡는답시고 
툭하면 캄보디아까지 폭격하는 통에 나라 꼴이 개판 오분전이 됩니다. 

결국 반정부세력인 크메르 루주가 론 놀을 쫓아내고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의 시대를 여는데.... 여기까진 좋았는데
이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마오쩌둥주의자였습니다. 즉 캄보디아에서는 문화대혁명과 똑같은 일이 일어날 운명이었습니다.
지식인은 몽땅 농촌으로 쫓아내거나 죽이고 승려도 마찬가지였습니다.(당연히 캄보디아의 미래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고문과 강제노동, 감금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참상이 벌어지는데 이게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킬링필드죠. 
사망자는 대략 70만~300만정도인데, 하도 상황이 개판이라 추산조차 어렵습니다. 
당시 인구가 600만, 현재 인구가 1500만임을 감안하면 얼마가 됐던 답이 안나옵니다...

그래도 내정에서만 개판을 쳤다면 크메르 루주는 좀 더 오래 갔겠습니다만, 폴 포트는 문자 그대로 또라이였습니다.
폴 포트는 중국과 친했는데 반대급부로 베트남과는 사이가 악화됩니다. 거기까진 좋은데 계속해서 베트남에게 도발을 가합니다.
참고로 당시 베트남 인구는 5200만.... 게다가 미군과 중국군마저 격퇴한 강국 베트남에게 도발한 대가는 컸습니다.
1978년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공격합니다. 이미 나라꼴이 엉망인지라 폴 포트는 태국과의 국경지대로 가볍게 쫓겨납니다.
그 와중에 중국이 베트남 북부를 침공하지만 가볍게 격퇴당합니다.

이때 베트남이 워낙 신속하게 진공한지라(17일만에 프놈펜 점령) 킬링필드의 증거물을 인멸할 시간이 없어 그 증거물이 여럿 남았습니다.
나중에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베트남은 이렇게 비도덕적인 놈들을 쫓아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폴 포트가 지뢰를 죽기살기로 매설했는데 베트남군은 막지 못하고 애꿎은 민간인들만 엄청 다쳤습니다. 아직도 지뢰는 캄보디아의 골칫거리죠.

그러나 그 후 또한 지긋지긋한 수라장의 연속으로, 베트남은 괴뢰정권(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을 세웠으나 공통의 적 앞에서 캄보디아의 3세력, 즉 국왕파와 론 놀파, 그리고 크메르 루주가 연합하여 내전상태가 지속됩니다. 급기야 민주 캄푸치아 연립정부라는 새 정부까지 세웠는데 중국과 미국, 국제사회는 이쪽을 지지합니다(...)
국제사회에서는 베트남에게 적당히 할것을 권고했으나 베트남군은 그러거나 말거나 캄보디아를 누비며 캄푸치아 연립정부 때려잡기에 바뻤습니다.

결국 오랜 협상 끝에 베트남이 물러가고 내전이 종결됩니다.(1990년) 총선이 실시되었으며 시아누크를 왕으로 다시 세우고 총리는 훈센이 맡는(즉 저 두 정부가 적당히 섞여버렸습니다.) 현재의 캄보디아 왕국이 탄생합니다.(1993년) 크메르 루주는 반발했으나 폴 포트가 죽고(1998년) 항복합니다.

현재의 캄보디아는 아직도 훈센이 총리인데 뭐 그냥 평범한 독재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현 정부에 과거의 독재정권의 인물들이 상당수 섞여있는지라 과거청산도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최소한 먹고살수는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은 실로 위대했으나 현재의 캄보디아는 여전히 옆나라 태국과 베트남에게 눌려있는 상태이니 
과연 캄보디아가 다시 빛을 보는 시절은 올까요?
http://cfs2.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NldGFAZnMy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vMjkyLmpwZy50aHVtYg==&filename=292.jpg


p.s. 어디까지나 간략한 서술입니다. 자세한건 알아서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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