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에 목 매다는 이유? [노컷뉴스 2004.10.25 14:44:30]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국토 균형발전계획의 전면 재검토와 장기 비전 수립을 숙제로 떠 안게 되었다.수도 서울을 유지하면서 수도권의 과밀 집중을 해소하고, 껍데기만 남은 채 무너지고 있는 지역을 살리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국토균형개발의 큰 원칙은 분명하다. 동북아 시대와 통일시대를 대비한 국토의 효율적 개발이어야 하고, 지역별로 경쟁력있는 1차 산업과 2차 제조업을 살리는 산업구조개편과 정비가 추진되어야 한다.
수출의 다변화도 함께 추진되어 미국, 중국, 일본에 치중된 일부 품목 위주의 편향된 수출구조도 동시에 개선함으로써 지역 산업의 육성을 이끌어야 한다. 관광 산업의 육성도 지역의 특성에 따라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서울대는 대학원 중심의 대학으로 바꾸고 지역의 국립대학을 지원하며 유명 사학의 서울 본교는 묶는 대신 지방분교는 지원해 지역의 인재가 지역에서 키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역의 균형발전이고 수도권과밀을 해소하는 기본 청사진이다.
그런데 왜 행정수도의 이전에 매달리는 걸까? 현실과도 거리가 있고 당장 실현될 것도 아니고 국민의 지지여론이 과반수를 넘지 못해 온 것을 잘 알면서......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밑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에서 왜 목을 매는 것일까? 국토의 균형 발전, 21세기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될 한국판 뉴딜 정책......그것이 전부인가? 행정수도만 공주.연기로 옮기면 서울에 집중된 재화가 호남, 영남, 강원, 충청에 고루 분산되며 국토가 균형발전할 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뉴딜 정책을 쓰겠다면 더 효율적인 대단위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가 낫지 서울의 에너지를 뽑아 내 다른 곳에 심고 서울을 헛껍데기로 만드는 아랫돌 뽑아 웃돌 고이기 식의 뉴딜 정책은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무얼까? 행정수도의 뒤에 무엇이 있는걸까? 우리는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대해 탄핵까지 운운하는 여권의 행태에서 국토의 균형발전 너머에 있는 정치적 전략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2007년 지배세력 교체를 염두에 둔 것 아닌가? 그것은 가깝게는 2007년 대통령선거이고 멀리는 지배세력의 교체라고 판단된다. 서울은 현 집권세력의 본거지가 못된다. 한나라당이 시장과 다수의 구청장, 지역구 의원을 장악한 채 기득권 세력과 보수계층을 묶어 집권세력을 포위하고 있다. 서울을 둘러 싼 경기도의 사정도 별반 나을 것은 없다.
그렇다면 자민련의 쇠망 이후 무주공산이 된충청권은 어떤가? 이미 집권당에 지지를 몰아 준 충청권을 새로운 기반으로 굳히고 지역균형발전계획으로 충청과 호남, 부산.경남, 강원 등 지역연합을 꾸린 뒤 서울.경기의 여권 지지세력과 손발을 맞추면 2007년 대선전략의 얼개는 짜여지는 셈이다.
그 다음은 지배세력의 교체에 의한 열린우리당의 지지기반 구축이다. 열린우리당은 집권당이면서도 아직 지지기반이 충분히 확고부동하지 않고 사실상 지금도 창당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정당이다.
사실 이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다. 지난 1월 대전에서 ‘국토균형발전 선포식‘이 열렸을 때 노 대통령은 “수도를 옮기는 천도는 (역사적으로)그 사회 지배권력의 향배에 관한 문제였다”고 지적했고, 7월 인천의 한 토론회에서 “수도권의 집중된 힘이 막강한 기득권과 연결돼 있다.....서울종합청사 앞에 빌딩 가진 신문사가 행정수도 이전반대 여론을 이끈다”고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질타한 적이 있다.
장기집권 위해서는 여권의 시스템과 체질 개선 필요 결국 수도의 이전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정치, 경제, 언론의 보수적 카르텔을 해체시키면서 해방 후 50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친일, 냉전, 보수의 주류 세력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과거사 규명과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 및 사학 개혁은 카르텔의 해체와 패러다임의 전환에 당연한 수순이고 386세대의 성취와 인터넷 세대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에 의한 주류세력 교체로 이어질 것이다. 주류세력의 교체만 어느 정도 이뤄진다면 열린우리당의 집권은 순탄히 꽤 오랜 기간 이어질 테니 이는 결국 장기집권 전략이기도 하다.
과연 가능할까? 집권세력으로서는 몇 가지 선결할 숙제가 있다.
우선 첫째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여권의 시스템과 체질을 바꿔야 한다. 아직도 대선용 선거본부나 총선용 선거본부의 냄새가 난다. 사회의 트렌드와 코드를 읽고 구호를 생산해 내는 능력이나 특정한 사안에 대해 발빠르게 대응하는 T/F 전략기획팀으로는 써먹을만 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은 그렇게는 안된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판단력과 실천을 위한 추진력을 갖춰야 하고 구성원들은 질적으로 동질성을 갖추고 사안에 대해 유기적으로 척척 반응하도록 확실한 결합과 훈련이 필요하다. 거기에 행정부의 관료집단이 더해지면서 여권의 힘이 나오는 것인데 아직은 멀었다는 느낌이다.
둘째로는 몸통이 너무 작다. 현 집권세력의 핵심이 있을 거고 거기에 2차적인 주체세력들이 합쳐진 뒤 광범위한 인재의 등용으로 덩치를 키워야 하는 데 몇몇이 주도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커다란 날개를 달고 힘차게 날으려해도 몸통이 작다면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를 아는 한나라당도 노무현 대통령만 물고 늘어지는 것 아닌가. 대선전에서 후보 하나만 쓰러뜨리면 이기는 것처럼 아직도 여권의 구조가 노 대통령 하나만 상대하면 된다고 여기니까 색깔론에 탄핵소추, 하다 못해 대통령이 나와 정기 국회에 나와 설명해라,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라.......하며 집중 공세를 펴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힘을 과신하면 곤란하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지면서 정치적 힘은 제한받는 것이 당연하다. 또 시장과 경제의 흐름도 정치와 행정권력으로 조종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권력과 교류를 트면서 꼭 맞붙어야 할 사안이 아니라면 이념적 대립과 충돌은 피해 가는 것도 필요하다.
기득권 세력이 꼭 죄인은 아니며 특히 경제의 추진 동력은 어쩔 수 없이 기득권 세력에게 쥐어져 있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보수.우익 사회가 하나로 결합되면서 세의 과시를 행동으로 시작한 만큼 그 세력이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열린우리당 강점은 도덕적 우위와 선명함 그래도 현 집권세력은 복받은 게 있으니 첫째는 물론 급조된 주체세력으로도 집권을 한 것이고 둘째는 사사건건 발목은 잡는데 그 다음은 어쩔 줄을 몰라 수권태세를 갖추지 못하는 한나라당을 제1야당으로 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적극 찬성한 뒤 별 명분도 못 대고 어정쩡 반대하다 위헌 결정에 박수나 치는 정당이 제 1야당이라는 게 국가적으로는 참담하나 여권으로서는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의 강점은 도덕적 우위와 선명함이다.
그런데 탄핵을 모면할 때 헌법재판소 결정을 대하는 것과 수도 이전 문제로 대하는 것이 판이하다면 그 부정직함과 비도덕성에 대한 댓가는 크게 치러야 할 것인 즉 헌재 결정의 수용은 빠른 것이 좋고 편법은 피하기를 권한다.
CBS 변상욱 정치전문 대기자(CBS 창사 50주년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