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고방식들에 대해서, 그것이 어디를 보느냐(추구대상)에 집중한다면 사고방식에 대한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는 소고기를 좋아하고 누구는 개고기를, 누구는 쥐고기를 좋아할수 있는데 이런것에는 '우열'이 아니라 '다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추구대상이 다른 사람에게의 한심함은 부적절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한심함은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고수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추구대상이 다른 사람에게 한심함을 느낀다면, 그것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대상이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오만함이 깔려있다.
그러나 어디를(추구대상)이 아니라, 어떻게(추구방식)에 집중한다면 사고방식에 대한 우열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까 '추구하는 것이 같다면',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고 그것에는 우월한 방식과 열등한 방식이 존재할수 있다.
예를들어 보통사람과 같이 비 맞기 싫어하고 우산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데, 맑은 날씨에 비올지도 모른다고 우산 챙기거나, 비올 가능성이
100%라고 하는데 안올지도 모른다고 우산 안챙기거나 하는 사고방식은 정상인에 비해 열등한 사고방식이라 할수 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우열을 가리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무모순성'과 '개연성'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목적추구나 예측 측면에서, 관념들 간에 모순은 적고, 더 있음직한 일을 가정하는 사고방식이 우월한 방식인듯 하다.
이렇듯 추구방식 측면에서 사고방식에 우열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때, (개인적으로)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자처하며 고수하거나, 또는 바꾸려는시도를 않는 사람을 볼때 우리는 한심함을 느낀다.
이런 한심함의 근원은 그 사람의 열등한 사고방식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줄이려 노력을 거부하는, 그러니까 자기자신의 합목적성에 대한 불성실이나 무책임감에 대한 판단 때문은 아닌가 한다.
결론적으로, 한심함이란 감정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열등함'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무책임함'을 낮추어 보는듯 하다.
그리고 이런 한심함이란 감정은 그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과연 절대적으로도 참이라고 한다면 정당화 될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