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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820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소로
추천 : 11
조회수 : 150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7/30 0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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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린 시절의 꿈을 꿨다.

나는 2학년 5반의 맨 뒷자리에 엎드려 있는 중학생인 나로 돌아갔다.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나고 청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은 매번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면서도
장난치고 웃고 떠들면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나는 개수대로 가서 걸레를 빨고 있었다.

"야." 하는 목소리가 차박차박하는 걸레 헹구는 소리에 섞여 들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 새끼가 보였다. 그 새끼의 등 뒤로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한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셨다. 햇살을 등진 그 새끼는 검은 실루엣
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 새끼가 그 새끼인지를 그 날엔 바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새끼가 누군지 너무 잘 안다.

"따라와라." 그 새끼가 말했다.

"왜?" 하고 내가 묻자 "씨발새끼야. 여기서 쳐맞을래?" 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진정하라는 제스처로 손바닥을 펼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천천히 그 새끼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자마자 그 새끼에게 멱살을 잡혔다.

"화장실로 가자." 그 새끼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나는 히죽거리는 그 새끼의 얼굴을 보면서 이제 곧 해프닝으로 끝 날 이 상황의 황당함에
'하'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는 그 새끼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 새끼 주위엔 열댓명의 애새끼들이 있었다. 그 애새끼들이 히죽거리고 있었는지 분노했는지는 매번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눈 코 입이 달린 얼굴이라는 게 없었던 것 처럼 흐릿했다.

곧 싸움이 날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청소하던 애새끼들이 몰려들었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커졌기 때문인지 귓가에 삐하는 이명이 들렸다. 한 쪽 손을
이명이 들리는 귀로 갖다대면서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렸다.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혜정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놀라서 입을 틀어막고는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내 모습이 수치스러워서 그 새끼의 멱살을 잡았고 "씨발" 하고 중얼대다가 "씨발새끼야" 하고 소리질렀다.
 
멱살이 잡힌 채로 끌려 가고 싶지 않아서 그 새끼의 손을 뿌리쳤다.
 
화장실 문이 열리자 텁텁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세척밸브가 고장난 소변기로 부터 올라오는 고린내가 화장실 안을 습한 열기와 함께 채우고 있었다.
 
(이 곳, 화장실 장면은 꿈 속에서 매번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었는데 리얼리티를 상실한 어떤 날의 꿈 속에선 내가 기괴한 모습의 가위손이 돼 있었다. 거대한 가위를 등 뒤에 숨기고, 화장실 문 앞에 기대서서 애새끼들이 고추를 꺼내고, 소변을 누고, 고추를 탁탁 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애새끼가 바지 지퍼를 올리기 직전에 숨긴 가위를 불쑥 꺼내들고 튀어나가선 고추를 삭둑하고 잘라냈다. 고추가 잘린 사타구니를 붙잡고, 자기가 튀긴 오줌으로 범벅된 바닥 위를 대굴대굴 구르는 애새끼의 꼴을 보면서 나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내 신발 근처로 애새끼의 고추에서 흘러내린 피가 와닿으면 "누지말라는데! 오줌 누지 말라는데! 계속 누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하고 헛소리를 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그 날은 베개며 이불이며 벽지며 할 것 없이 방 안 가득 찐득거리는 소변 냄새가 풍겼다.)

그 날 나는 코 뼈가 부러졌고 눈에선 피가났고 온 몸은 피멍으로 물들었다.
그 새끼가 선빵을 날렸고, 나도 반격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맞은 얼굴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의 애새끼들과 또 다른 애새끼들이 우글거렸다. 지들끼리 낄낄거리며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새끼는 괴상한 춤을 추면서 한동안 나를 조롱하더니 오른 발로 내 배를 차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까의 애새끼들과 또 다른 애새끼들이 나를 밟았다.
 
 
 
 
 

[당신은 왜 그런 일을 당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새로 구입한 안드로이드 120-1이 말한다.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했어.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해줄게.] 하고 대답하고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던 아내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다.
 
[이만 일어나야겠어.]
 
[궁금해요. 조금만 더 말해줘요.]
 
[오늘은 여기까지야. 캐리. 아내가 밥 먹으라고 난리야.] 말하고는 120-1의 머리를 스다듬어 재운다.

벌써 270년전의 일이다. 그 새끼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오래전에 조회해본 결과 생명연장 프로젝트의 찬성자 목록에 그 새끼는 없었다.

기계와 한 몸이 되기를 거부한 인간들은 대부분 안락사를 택했다. 
 
신 인류에겐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된 다는 점에서 그 때 죽지 않은 것을 가끔 후회할 때가 있다.
 
나는 왜 그런 일을 당한 걸까. 아직도 궁금하지만 이젠 '영원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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