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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게시물ID : gomin_718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머서너리
추천 : 2
조회수 : 3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0/06/26 23:16:24
저는 나름 생계형으로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 4학년째입니다만..
저를 찌들게 했던 것은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하루하루 식비때문이었죠..
친구들과 다니면서 밥한끼 하는 것만 해도 한번에 근 만원돈 나가는데..
그돈이면 저 혼자서는 아껴쓰면 3일은 식비로 해결할 수 있는 돈이기에 더욱 씁쓸했습니다.
뭐.. 사정 모르는 것은 아닌지라 간혹 친구 중 한두명이 빌려준답시고 대신 내줬던 기억도
있지만.. 어릴때부터 동정받는 거 하나만큼은 미친듯이 싫어해서 그런 상황이 올때마다
오기로라도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애들과 함께 밥을 먹었죠..
그나마 어떻게 외가쪽에 도움을 받아서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서 근처에서 아르바이트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서포트 되었기에 괜찮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아르바이트는 방학때는 등록금을 학기중엔 식비를 감당키 위해 하고있습니다
매번 하는 알바도 달랐지만, 지금은 편의점에서 일합니다.
1학년때도 2학년때도.. 그렇게 지냈지만, 그렇게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술을 먹어야 즐겁고, 어딘가 놀러가야만 즐거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단지 곁에서 대화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녀석들과 제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러한 관계만으로도 지금까지 어울리는 무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가끔은 동정받는 것처럼 이것저것 챙겨줄때가 씁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고 이야기 하고싶고
믿을 수 있는 친구라 생각해 줘서 또 한번 감사하다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삐뚫어지지 않고 공부를 해서 군대가기 전까지는 장학금을 받게 해줬고..
친구들 모두가 장학금을 받게 되어 (물론 그 당시엔 지원금이 많아 많은 숫자가 받긴했지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식비때문에 가장 힘들었을때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 버스 한번을 탔어야 했던 기억이 가장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왕복 2천원 돈이었지만, 당시에 밥값에 허덕이다 겨우 잡은 아르바이트라서 
차비 마져 그닥 넉넉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편의점이었지만, 폐기마져 자주 없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쓰레기통을 뒤져서 손님이 먹다 버렸던 방울토마토 예닐곱개를 주워 씻어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그당시엔 욕도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이러이러 한대, 누군 쓰레기통이나 뒤지냐고
지금엔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땐 울었습니다. 차마 그때 친구들에게마져 차비때문에
돈을 빌린 상황인지라 돈 좀 더 빌려달란 소리도 못하겠고, 동정받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매일 위액을 토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대갔을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적든 크든, 제가 학교를 다니게 되면 집에 부담감이 간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어떻게든 아버지 없는 자식이란 소리 듣지 않게 하시려고 통장에 돈 몇푼이상은 꼭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 덕분에 그 비싼 전공서적값과 이것저것 생활용품 및 문구류 구입이 가능했으니까요
잘나지도 않은 아들때문에 아프신 몸을 이끌고 공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군대를 가면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아도 밥 나오고 지낼 수 있습니다.
되려 군대에서 받는 월급으로 177만원쯤 벌어서 나온다는 이야기도 들은터라 
22살이라는 나이때 군입대를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고문관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군생활 잘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등병때부터 매달 적금 4만원을 부어서 전역때 90만원을 만들어갔습니다.
전역하는 그 순간에 집에 일이 생겨 단 한푼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대로 필요할 때
이렇게 돈이 모여서 다행이란 생각을 위안삼았습니다. 
무튼 이러한 상황에 남는 월급이 많지 않아 밑의 후임들에게 제대로 사주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꼬박꼬박 잘 따라와주고 챙겨주려 해줬던 녀석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습니다.
고집스럽게 씻을땐 비누만 있으면 된다고 우기던 저한테 사제 물품으로 씻는 후임녀석이 매번
같이 씻으러 따라온 것은 고마우면서도 부끄럽긴 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연락은 하지만 제대로 밥한끼 사주지 못한게 너무 아쉽고..
내년에 졸업후 취업을 하게 되면 밥을 사주며 고맙다고 말해줄 계획입니다..

전역하고 잠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얇은 귀를 가진터라
여기서 일하면 어디보다 낫다는 소리 하나에 혹하는 나쁜 습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전역하면 정말 무얼 해도 할 수 있을 꺼란 생각은 했지만, 확실히 돈을 벌긴 해도
기대치에 항상 못미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등록금이란게
이토록 증오스러울 수가 없단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나마 국립대라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공대라는 특성상 타 대학과보단 조금 비싼 금액이 왜 그리 아쉽게 보이는지 몰랐었습니다.
하루에 2가지 일을 뛴다고 3시간 자고 일하다가 졸고, 어떨 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잠도 안자고
다음 일을 하러 간적도 있습니다. 물론 한달이 되어감과 동시에 짤리기도 했습니다..
한달 120이라는 금액을 벌었으나, 식비에 뭐에 이것저것 빼고나니 한달에 90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정말 전문성을 지닌 직업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밥안먹고 다닌다고
성내면서 밥을 먹일려고 하셨던 사장님께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물론 학교 때려치고
이 일에 계속 몸담으란 소리는 귀담에 듣지 않았습니다만 학기 시작하기 전날까지 일했으니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고마운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에겐 항상 하는 말버릇이 있습니다. "나는 박복하다"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견디는 것은 항상 운이 없는 상황에서도 최악의 운은 벗어나는 것인지..
자그마한 행운과 함께 불운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 행운이었던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아.. 공통적으로 전해주고 싶은 말은..."하루에 두끼 이상은 먹고 있으니 걱정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올해가 지나면 저도 취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은 걱정도 됩니다. "고등학교만 하게 되면 나도 돈에 제한받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터라..
고등학교만 졸업하면...이 이젠 대학교로 바뀌었습니다.
걱정과 동시에 평소 말버릇대로 박복이 따라 올까봐 걱정도 됩니다.
대학 4년 내내 밥값때문에 걱정을 않한 적이 없단 사실이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저를 쫓아올까봐 겁이 납니다.
그래도 삐뚫어지지 않고 이렇게 똑바르게 이끌어줬던..
친구들과 어머니, 동생.. 그 이외에도 많은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더 잘하게 될꺼라고 믿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곧 웃으면서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말하며 찾아가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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