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쓴 글 퍼왔어요.
라스 폰 트리에는 괴짜이다. 아니 괴짜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한 인물이다. 그가 다루고 있는 작품들의 소재만 해도 굉장히 파격적이다. 색정증을 겪는 여자, 지구멸망 앞에서의 우울증 등을 다루는 그의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불편함을 수반한다. 불편함 속에서도 어딘가 사유할 거리를 던져준 다는 것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특징이다.갇힌 사회 속에 들어온 이방인을 다룬 2003년작 <도그빌>역시 불편한 철학극이다.
외부와 단절된 공동체인 닫힌 사회의 사례는 신문을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간단하게 북한만 봐도 닫힌 사회의 전형이다. 신안 염전노예 사건처럼 닫힌 사회이기에 가능한 범죄였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인터넷의 한 폐쇄적 커뮤니티의 사건도 갇힌 사회의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런던의 뒷골목이 두려워 보여도 소리치면 도와줄만한 신사가 있지만, 평화로운 농가의 범죄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어느 대사처럼, 닫힌 사회 안에서는 공동체의 묵인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끼>, <손님>,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등의 공포/스릴러 영화들부터 영국드라마 <브로드처치>같은 추리극까지 주로 장르영화에서 닫힌 사회라는 개념이 이용된다. 하지만 <도그빌>은 장르영화라고 단정하기엔 너무나도 독특한 영화이다. 분필로 바닥에 구역을 나눠둔 듯한 ‘도그빌’마을 세트와 마임을 하듯 문을 열고 닫는 배우들,벽이 없는 세트이기에 모든 구역을 가로지르는 조명까지. 마치 연극을 보는듯한 느낌까지 준다.
이런 극단적인 형식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심리적 불편함을 더해준다. 극 중 그레이스(니콜 키드먼)에게 가해지는 성폭력과 과한 육체노동, 언어폭력 등이 과감 없이 다른 공간 속, 하지만 벽이 없어 모든 행위가 보고 들리는 세트 속의 다른 배우들에게도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빈 집, 창고 등에서 비밀리에 행해졌을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때문에 <도그빌>의 조명은 ‘도그빌’이라는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세트 바닥에 그어진 집들의 경계선을 가로질러 폭력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게 도와주는 빛들은 그레이스를 조리돌림하는 도그빌 주민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도그빌 주민들의 더러움과 폭력성을 훔쳐보게 만든다. 관객들의 불쾌지수를 끌어올리는 데에 최고의 방법인 셈이다.
이런 세트 촬영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한다. 소격효과란 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몰입되지 않았을 때 비판적으로 연극을 바라볼 수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 개념을 적용한 연극에서는 중간에 극을 중단한다거나,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요약하는 방식을 쓴다. 관객이 배우와 감정동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식이다. <도그빌>에서는 독특한 세트와 함께 전지적 시점의 나레이션으로 이를 구현한다. 관객이 그레이스에 몰입하는 대신 관음적으로 마을과 사건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도그빌>의 세트촬영이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1995년 발표했던 ‘도그마 선언’을 항목 하나하나 전부 무시한 영화라는 점이다. 로케이션이 하나도 없는 세트에서만 영화가 진행되고, 세트촬영이기에 자연광 역시 사용되지 않았다. 헨드헬드로 찍어야 한다는 원칙은 부드러운 줌인/줌아웃과 팬에서 무너졌고, 동시녹음을 해야 한다는 원칙 역시 문이 없는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는 것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피상적인 행위가 아닌 실제행위를 담아야 한다고 했는데 누가 봐도 시늉만 하는 섹스신과 절대 실제로 찍을 수 없는 마지막 학살 장면을 보면 이 원칙 역시 지켜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이 선언한 원칙을 모조리 뒤집으면서까지 이런 형식을 취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그마 선언은 배우들까지 전부 연기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나 일반인을 섭외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나 자연광과 헨드헬드를 애용한 프랑스 누벨바그와 닮아있다. 허나 이런 형식으로는 닫힌 사회를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도그마 선언의 반대되는 극단으로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에 과거 자신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으로 보인다.
독특한 세트촬영과 나레이션, 인물에게 몰입하는 대신 인물을 관음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연출은 도그빌 주민의 더러움을 관객에게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이를 뒤엎는다. 관객이 보면서 계속 오만하다고 생각했던 톰(폴 베타니)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도그빌에 뛰어든 그레이스 중 누가 더 오만할까. 도그빌 주민들의 폭력성을 지켜보고 그레이스를 응원하던 관객들은 주민들을 학살하는 그레이스를 보고 주민들과 다르다고 생각할까. 커튼을 친 차에 앉아 본능 운운하며 마을 주민들을 개와 비교하는 그레이스와 그레이스의 갱스터 아버지를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가장 오만한 것일까?
Dog와 Village의 합성어인 ‘Dogvil’, 즉 개들의 마을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모두가 오만하다고 전하고 있다.도그빌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모습이고 모두가 도그빌의 주민이자 그레이스임을 마지막 관계역전으로 역설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오만함을 고백하고 있다. 상징적인 사건이었지만,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도그마 선언 때의 오만함을 고백하고 있다. 첫 문단에서 <도그빌>은 불편한 철학극이라고 얘기했었다. 다시 정의한다. <도그빌>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사회고발적 철학극의 탈을 쓴 자기고백이다. 그리고 그의 커리어는 <만델레이>를 거쳐 우울 3부작으로 들어선다.
출처 | http://dsp9596.blog.me/2204389346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