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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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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cckk
추천 : 10
조회수 : 3179회
댓글수 : 40개
등록시간 : 2015/08/05 07: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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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독립군들이 계시는데 
많이 안알려져서 너무나 송구스럽네요..ㅠ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803115905265

영화 <암살>의 실제 모델은 누구일까?

[임기상의 역사산책 114] 조국해방을 둘러싸고 서로 총을 겨눈 청년들노컷뉴스 |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 입력 2015.08.03. 11:57 | 수정 2015.08.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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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 스틸컷
영화 <암살> 스틸컷
이 사진은 윤봉길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입단할 때 쓴 선언문과 그의 사진이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것과 선언문을 목에 건 장면이 영화와 흡사하다.
이 사진은 윤봉길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입단할 때 쓴 선언문과 그의 사진이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것과 선언문을 목에 건 장면이 영화와 흡사하다.
영화 속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3인조 암살단이 사진을 찍는 장면은 암살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상하이를 떠나기 전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바로 김구 주석이 폭탄 테러를 하기 위해 떠나기 전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남긴 일과 교차된다......
.....

....요인 암살을 위해 총을 들고 지붕을 뛰어다니는 여성 테러리스트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런 장면은 없다. 그래도 가장 비슷한 인물로 두 사람이 있다. 먼저 남자현 의사이다. 남자현 의사는 독립운동사상 유일하게 권총을 들고 중국에서 국내로 잠입한 여성이다. 남자현은 동지 박청산, 이청수와 함께 1926년 4월 만주의 지린성을 출발해 경성에 잠입했다.
안옥윤 (영화 <암살> 스틸컷)
안옥윤 (영화 <암살> 스틸컷)
남자현 의사(왼쪽)와 이화림 의사
남자현 의사(왼쪽)와 이화림 의사
4월 26일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승하하자 조문하러 오는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사살할 계획이었다. 이들 3인조가 빈소가 차려진 창덕궁에서 총독을 기다리던 중 뜻밖에 똑같이 총독의 목숨을 노린 송학선이란 청년이 있었다. 그가 일본인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암살작전은 미수에 그친다.

다시 만주로 돌아온 남자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괴뢰 만주국의 최고 실세인 무토 노부요시 전권대사를 죽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1933년 3월 1일 신경(지금의 장춘)에서 열리는 만주국 수립 1주년 행사 때 권총과 폭탄을 이용해 노부요시 일당을 몰살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미리 접선했던 중국인들로부터 무기가 든 과일상자를 받으러 갔다가 정보를 탐지한 일본경찰에게 검거된다.

또 하나의 여성 독립투사가 있다. 바로 이화림이다.

오빠들을 따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상하이에 온 이화림은 김구 주석 산하의 테러단체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그녀는 이 조직에서 무술과 사격을 배워 일본 밀정들을 처치하는 일을 맡는다.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죽이기 위해 도쿄로 떠날 때는 밤을 새워 폭탄을 담고 갈 특제 '훈도시'(일본의 성인 남성이 입는 전통 속옷)를 만든다. 이봉창은 그 속에 수류탄 2개를 숨긴 채 일본으로 향했다.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 공원에서 거사할 때는 둘이서 부부인 것처럼 가장하고 사전답사를 같이 다니고, 거사 당일 식장 입구까지 동행한다. 그러나 이화림은 폭탄 테러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선의용대에 합류해 총을 들고 무장투쟁을 벌인다. 그녀는 부녀대 부대장으로 여성 독립군을 이끌고 태항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다.....


그러면 기관단총과 폭탄으로 결혼식장을 쑥밭으로 만드는 '속사포'는 실제 어느 독립투사와 유사할까?

속사포 (영화 <암살> 스틸컷)
속사포 (영화 <암살> 스틸컷)
김상옥 의사가 격렬한 총격전 끝에 일본경찰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자결한 사건이 발생한 뒤 1923년 3월 15일 동아일보 호외에 김상옥 의사의 활약상이 실렸다.
김상옥 의사가 격렬한 총격전 끝에 일본경찰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자결한 사건이 발생한 뒤 1923년 3월 15일 동아일보 호외에 김상옥 의사의 활약상이 실렸다.
일제강점기에 '속사포' 만큼 도시 한 가운데서 격렬한 총격전을 벌인 독립투사는 단 한 명이다. 바로 연이틀 경성 한복판에서 두 자루의 권총을 들고 일경과 시가전을 벌인 김상옥 의사이다.

1923년 1월 초 중국에 있는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 건물을 파괴하라는 명령과 함께 김상옥을 경성에 파견했다. 그는 먼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잠적했다. 놀란 일본경찰은 수사망을 좁혀 1월 17일 새벽 5시 경 삼판통(지금의 후암동)에 은신해 있는 김상옥을 덥쳤다. 그러나 김상옥은 쌍권총으로 종로서 형사부장인 다무라를 사살했다. 이어 우마세 경부와 우메다 경부 등 여러 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눈 덮힌 남산으로 사라졌다.

5일 후 효제동 주택가에 김상옥이 은신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경은 무장순사 1,000여 명을 동원해 네겹으로 포위했다. 여기서 김상옥은 2시간 동안 권총 2자루를 들고 시가전을 벌이다 많은 일경을 사살한 후 총알이 떨어지자 모젤(마우저 C96) 7연발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출처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80311590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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