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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볼 스파이 서재응 은퇴 및 두산의 저주받은 10번 정리
게시물ID : baseball_1068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hemoon
추천 : 0
조회수 : 68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2/05 03:38:13
1. 오프닝

홍원기 아나운서 :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흥신소 가동

2. 서재응 선수 은퇴

홍원기 : KIA 베테랑 서재응 선수가 전격 은퇴 선언. 벤치 분위기를 업시키는 역할 했던 선수

개그맨 황영진 : 과거에 150km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다가 팔꿈치 수술 이후 제구력 투수로 변신. 

광주일고 졸업. 96년 해태 고졸 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학교 입학. 대학 3학년에 방콕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
금메달 획득 후 병역특례를 받은 후 대학 중퇴 하고 뉴욕 메츠 입단

홍원기 : 원래 양키스가 30만 달러를 베팅했는데 60만 달러를 받아야한다면서 밀당하다가 결렬. 국내에서는 30만달러라도
받아야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때 메츠가 130만 달러를 제시. 팔꿈치 수술 및 재활로 인해 2002년에 MLB 데뷔.

황영진 : 2003년 9승 12패 방어율 3.82를 기록했는데 팀 타선이 더 좋았으면 12-13승 했을 듯

홍원기 : 당시 승리기여도가 3.2였음. 아홉수는 서재응의 지긋지긋한 징크스. 당시 9월 1점대 방어율인데 1승 3패 기록.

MLB 2002년 데뷔 102타자 연속 무볼넷 기록했는데 103번째 타자가 데이빗 델루치 선수. (1945년 MLB 기록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다기록). 

황영진 : 2004년 약간 부진. 

홍원기 : 2003년 첫승에서 안타도 기록. 봉중근 선수가 애틀란타 불펜으로 올라와서 구원 2승. 시카고 컵스 최희섭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던 날이기도 함. 

황영진 : 2005년 제2의 전성기가 옴. 시즌 중반 MLB 올라와서 후반기에만 8승 2패 방어율 2.59 기록

홍원기 : 당시 마이너에서 패드로 놀이하면서 씹어먹고 있었음. 공3개로 아웃카운트 3개 잡은 경기가 많았음. 

황영진 : 콜업이 빨랐다면 15승도 가능했을 듯. 

홍원기 : 당시 인종차별을 당함. 단장에게 코치가 서재응과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함. 투구폼 교정이야기로 불화설이 생기면서
기회를 받지 못함.  당시 15승 올렸다면 어마어마한 연봉 받았을 듯

황영진 : 2006년 WBC 14이닝 2승 무패 방어율 0.64 기록. WBC 이후 시즌 앞두고 다저스로 트레이드. 잠시 최희섭과 한솥밥을
먹었으나 최희섭은 보스턴으로 이적. LA에서 19경기 2승만을 기록하고 템파베이로 트레이드

홍원기 : WBC가 독이 된 케이스. 몸상태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WBC 출전. 팔이 잘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있었다고.
2005년 후반기 성적을 보고 다저스에서 기대받았으나 2006년에 부진하면서 커리어가 꺾임.

황영진 : 템파베이 8패 기록 후 방출. 이때 타선의 지원도 없었음. 

홍원기 : 92마일까지 던짐. 템파베이가 약팀이다 보니 승리 기회가 좀 처럼 올 수 없었음.

황영진 : 최희섭, 추신수에게 모두 홈런을 허용한 투수가 서재응. 추신수 말로는 칠 수 있게 서비스급으로 던져주면서 별명이
나이스가이가 된거라고.. MLB 포기하고 KBO 리그 복귀한 뒷 이야기가 있음. 아버지가 지인에게 보증을 잘못써서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하게 되면서 복귀했다고 함. 뉴욕에 본인의 집이 있었던 서재응. 이 이야기가 4년전 KBSN 나야결에서 나왔음.

2008년 재미 보지 못하고 무릎 부상까지 겹치고 5승에 그치면서 예전 같은 몸이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나옴. 2009년도 5승에 그침.

09년에 주목해야할 것은 정근우와의 인연. 2009년 시즌 9월 8일 SK와 선두권 경쟁에서 마찰이 조금 있었고 코시 3차전에서
도발하던 것처럼 1루에 송구하자 정근우 선수가 쨰려보면서 서재응 선수가 "삼시새끼 먹었냐?"라고 하면서 싸움으로 번짐.

나중에 화해하고 2013 WBC에서도 같이 뜀. 정근우 선수가 "후배인데 선배님에게 강점이 없고 존경하는 선배님이고 단지
당시에는 둘 다 승부욕이 너무 넘쳤을 뿐"이라고 이야기

2010년도 9승. 서재응이 그나마 안정된 투구를 보이면서 기아의 잠시동안 무등예수가 탄생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알고보니 불자.

2012년도 선발 44이닝 무실점이라는 대기록 세움. 하지만 역시 10승에 실패하고 9승에 그치고 2013년부터는 부진하고
2016 스캠 직전에 은퇴선언. 구단에서는 코치 연수 지원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입담이 상당하기에 방송국들이 해설위원으로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함.

홍원기 : MLB 28승이 쉬운기록이 아님. 

황영진 : 몸에 비해서 목소리가 터보 김종국과 동급. 자녀 3명인 야구계의 정자왕 서재응. SK만 만나면 날라다님. 

이종범의 후예답게 야구인 골프대회 29대 우승자. 브렛 필과 함께 베이비 페어 행사장 방문도 했음.

최희섭 선수가 "재응이 형이 고교 최고참이 되면서 얼차려 등 기합이 없어졌다."라고 말함.

홍원기 : 미국에서도 불가능한 한 고교 출신 3명이 MLB. 광주일고가 얼마나 야구명문인지 암시하는 것. 
서재응은 컨트롤의 마법사, 서덕스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음. 2005년 8승 2점대 방어율 기록할때 그린 매덕스와 두번째 맞대결에서
7.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매덕스 7이닝 2실점을 기록. 2003년에는 매덕스가 서재응에게 "타자를 상대하는 모든 능력을
보유한 투수"라고 평가. 

메츠 시절 항명으로 기회도 못 얻었던것과 WBC때 무리했던 것이 가장 아쉬운점. 엔테서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로 예능에
가끔씩 출연했는데 시스루 망사를 입은 흑역사가 있음.

황영진 : 은퇴식 화려하게 했으면 함.

홍원기 : KBO 발전을 위해 지도자를 했으면 함.

황영진 : 서재응 선수는 난이도 있게 창문 반만 열고 던지는 시구를 기대해보겠음. 

홍원기 : 갑자기 은퇴하고 코치하는게 감독, 코치님들에게 실례가 되리라고 생각이 든다고 하고 연수받는다면 
NPB에서 연수받고 싶다고 함.

일단 해설위원으로 활동 후 지도자 변신을 할 것이라고 함. 연락은 오고 있는데 아직 방송국 어디로 할지 결정 못했다고 함.

팬들이 응원단장이라고 놀리는데 사실 덕아웃 분위기를 위해 그런 선수가 한명은 필요.

앞길에 발전과 행복만 가득하기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3. 두산 저주받은 등번호 10번

황영진 : 윤동균 전임 감독이 현역시절 10번 등번호를 달았음.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인해 영구결번 취소. 
(박철순 선수 등이 경기 패배 후 맥주 한잔을 먹고 온것이 발단이 됨. 윤동균 감독이 화를 내고 급기야 배트 들고
"오늘 매맞아야겠어."라고 말을 한 후 줄빠따를 침. 김상호 주장이 반발했고 갈등이 폭발하고 "차라리 서울로
올라가라."라고 말했고 17명의 선수들이 전주 원정숙소에서 서울로 올라가고 윤동균 감독은 감독 유니폼을 벗음)

문희성 타자가 1년간 10번을 달고 뛰지만 2군 전전하면서 2군 홈런타자가 되고 2005년 제외하고 만년 2군 백업으로
전전하다가 현재는 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음.

홍원기 : 제가 알기로는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약 중이라고 함

황영진 : 강혁 선수. 5억 7천만원 계약금 받고 입단. 당시 1루수 우즈 , 해태에서 최훈재를 영입. 자리가 없어진
강혁은 2001년 SK로 이적했지만 병역비리로 선수커리어 망가짐

이번에는 심재학이 두산에 오면서 10번을 담. 우승 주역이 되고 타격 2위 24홈런 88타점으로 커리어 하이찍고
2002년부터 하락세를 걷고 KIA로 감

황윤성은 그라운드 홈런을 친 인생 최고의 경기 이후 아무 것도 못함.

홍원기 : 안산 중앙중 감독을 하고 있음

황영진 : 최준석이 2007년 5번 타자로 활약하지만 2012년부터 2년간 부진하고 포스트시즌 맹활약 이후 롯데로 다시
가면서 25번으로 바꿈.

한화에서 2차 드래프트로 넘어온 김강이 10번을 달고 있는데 퓨처스에서만 활약 중

홍원기 : 유독 베어스만 OB 시절부터 10번의 저주가 있음. 가장 좋은 번호 하면 선수들이 무슨 번호를?

황영진 : 저는 이상훈 코치때문에 47번, 장종훈 코치떄문에 35번을 좋아하고 61번도 기억에 남음

홍원기 : 박찬호 선수 이후 MLB 리거들이 61번을 많이 담. 다음에피소드에도 등번호 관련 이야기 계속 준비하겠음.

황영진 : 예전에는 30번, 40번이 넘으면 2군 번호였는데 지금은 달라짐. 류현진은 등번호처럼 99승하고 MLB 진출.

4. 엔딩

홍원기 : 야구사 큰 획을 그은 서재응 선수 이야기와 두산 10번 저주 이야기해봤음. 

황영진 : 저는 설 연휴에 스케쥴 없으니 고향 대전갈 예정.

홍원기 :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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