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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끊겨 노숙한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395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눈팅러,
추천 : 3
조회수 : 7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06 22: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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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때는 몇년 전 이맘 때... 는 아니고
정확히 7월 16일, 제헌절 전 날 이었다.

강남에서 술 약속이 생겨 처음으로 강남 나들이를 했다.
서울 촌놈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는 수도권에 살면서 서울에 안가본 놈이었다.



그 때 당시는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 vs 슬라이드폰에서 풀터치폰으로 넘어가던 시대였기에,
지금처럼 나가면서 검색해서 빠른 길을 찾는 것은 꿈도 못꾸는 때.

게임을 통해 알게된 형들과의 첫 술자리였고, 장거리(?) 술자리 였기에
막차와 버스 막차가 끊겼을 시의 대처법(?)을 미리 찾아놓고 강남으로 향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겼...)


"뭐여 너 이렇게 생겼었냐ㅋㅋㅋ"
"...아 형;;"
"요새 사진들 못 믿는다니까 이래서..."
"액면가 봐서는 내가 너한테 형이라 해야겠다"
"민증 가져왔지? 우체통에 넣어버려"
"...왜 멀쩡한 민증을 우체통에 넣어요"
"너 거울 안봤지? 술집에서 검사 안한다니깐..."


...잘못 왔다는 생각은 그 때부터였다.
술집에 들어갔을 때 이 사람들이 날 죽이려는걸 알아챘다.
하필이면 두 형들 다 주당들이었다.

안주는 치킨이었다. 괜히 시킨게 아니었다. 형들 중 한 분의 닉네임이 닭이었다.
소주는 참이슬 빨간색이요, 맥주는 소맥이었다.
게이머들이 경기에 나갈 때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긴다면, 그 때 우리는 닭과 술잔을 챙겼다.

그 때 이미 학교에서 '오늘 1교시의 술냄새는 역시나 저 놈이렷다' 급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그 말년 병장들에게 나는 이제서야 논산 입구에 들어가는 입소 대기자였다.



그렇게 치킨과 닉네임의 상관관계에 대해 토론하다 장렬하게 전사 직전까지 간 나는 깨달았다.
버스 막차가 떠났다는걸...

재빨리 폴더폰을 가동했다(?)
아슬아슬 했지만 집에 가는 열차는 존재했고, 지금 상태로는 최단 거리보단 최소 환승으로 가는게 내 수명연장의 지름길이었다.

열차에 타서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숙취 모드에 들어섰다.
헌혈을 자주한 덕에 저혈압이 오게 될시에 대처법에 대해 잘 알고있던 나는 그 걸 따라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내게 구원의 손길을 보냈다.


"저기요? (남자)"
"..."
"저기 괜찮으세요? (여자)"


...커플이었다;
알콜이 한창(?) 물이 오르던 상태로 고개를 힘겹게 올려서 바라본 커플의 표정은 한마디로 표현가능했다.

'119'

젊디 젊은 나이에 커플의 관심도 모자라 성숙한 시민의식(?)의 당사자가 된 나는 필사적으로 괜찮다고 어필했지만
그 커플은 여전히 내게 측은한 눈빛과 함께 언제라도 119를 누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을 뒤로한채 던전으로 불리우는 신도림역으로 향했다.



아직 술이 덜깬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버렸다. 2호선 -> 1호선으로 해서 수원 방면으로 가야되는 나였지만
막차 시간이 가까워옴에 따라 분주해진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신도림역 특유의 오르막길 내리막길 계단과 정신없던 구조는
'브루드 워 인트로 동영상에서 마지막에 홀로 남겨진 해병'이 내가 된 것 마냥 느껴졌다.

그렇게 아무것도 못해보고 1호선 막차를 놓친 병신;이 된 나는 서울 죽돌이 친구에게 SOS를 날려보았다.


"여보세요?"
"술 (딸국) 마시냐"
"...끊어라"
"아니아니 (끄윽!) 야 나좀 살려줘라"
"어딘데"
"신도림역"
"...끊어라"
"야이 &%^%$^%$&^"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에게 미안하다. 저 상황에서 그냥 끊지 않은것만해도 다행이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친구에게 들은 솔루션(?)은 좌석 버스였다. 다시 2호선을 타고 구로디지털단지까지 가는...

그렇게 다시 2호선에 몸을 던진 내게 안도감이 오던 그 때,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이번 역은 도림천, 도림천 역입니다"


????????????????????????????
처음에는 제대로 가는 건줄 알았다. 나란 새끼...

그렇게 이번 역은 '양천구청, 양천구청역입니다'를 듣게 된 후에야 노선표를 보고 사태파악을 한 나는
열차에서 내린 후에 공익 분께 "막차가 끊겼습니다~" 란 절망적인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역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역에서 나온 후의 내 느낌은 이러했다.


"...여기가 씹장역이구나"


주위에 아파트만 잔뜩 있고 찜질방이나 PC방도 안보이던게 시베리아 벌판과 아오지 사이에 내가 있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술이 덜깬 나란 놈에게 보이는건 버스 정거장 벤치 뿐이었다. 답은 이것 뿐이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화들짝 깬 나는 동이 트고있다는 것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버스 정거장, 아니 주취자 졸음쉼터는 최첨단(?) 비막이 시스템이 장착되어 내게 피폭된 빗물의 양은 적었다.

지갑과 핸드폰이 무사하다는 것까지 확인한 내 시야에 들어온건...


"..."
"(화들짝)"



내 바로 윗 벤치에서 주무시고 계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 분도 빗소리에 잠이 깨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졸지에 상견례를 하게된 두 남자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듯이 우리 둘은 열차역으로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이미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출처 신도림 던전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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