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쇼미더머니>를 보고 김봉현 평론가&엠씨메타&서출구의 토크콘서트를 보고 난 후 든 생각을 써본 글입니다. 다소 두서없을 수도 있어요....
힙합? 여성혐오? 표현의 자유? 쇼미더머니? 아마 올해 힙합씬과 더불어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들일 것이다. 연초 장동민의 과거 팟캐스트 방송에서의 발언이 구설수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메르스 겔러리, 일베, 여성시대 등 인터넷 커뮤니티상의 여혐 남혐 논란,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송민호와 블랙넛 등의 랩퍼들의 여성비하적 가사들까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건들의 여파로 장동민은 <무한도전-식스맨>에서 하차했고, 몇몇 커뮤니티들이 분열/붕괴되었으며 <쇼미더머니>는 방통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시작은 장동민이었으나 현재진행형인 것은 힙합에서의 여혐논란이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송민호가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로 산부인과의사협회가 공식성명을 낼 정도로 큰 논란을 가져왔고, 블랙넛은 과거 발표했던 ‘졸업앨범’등 몇몇 곡의 가사들이 논란이 되었다.두 랩퍼의 팬들과 충격적이지만 꽤나 많은 리스너들이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말로 이들의 가사를 합리화 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사실이다. 여러 SNS와 네X버, 다X의 메인에 뜨는 칼럼들에선“힙합은 흑인들의 저항정신에서 태동한 음악으로, 지금의 가사들은 예전의 힙합같지 않다.”라는 의견들이 대다수이다. 덕분에 블랙뮤직 커뮤니티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SNS, 포털사이트 메인기사의 댓글란에서는 컨트롤대란에 버금가는 키보드 배틀이 한창이다.
우선 힙합의 시작은 저항정신도 당연하지만 여성비하도 아니다. 힙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DJ쿨허크는 자신이 쓴 글에서 “흑인, 백인, 황인 아이들이 함께 들으며 놀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힙합은 ‘놀기 위해’ 시작된 음악인 셈이다. 여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랩과 특유의 샘플링 작법이 더해져 힙합에 다양성이 생겨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저항정신과 최근 논란이 되는 여성비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갱스터랩, 놀기 위한 클럽튠, 사랑이야기, 돈 자랑 스웨거 전부 힙합의 한 부분이다. 힙합평론가 김봉현은 토크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행에 따라 힙합의 겉모습이 바뀐 것처럼 보였을 뿐, 저항의식과 스웨거 등은 힙합의 시작부터 공존해왔다.” 저항의식도 힙합이고 갱스터랩도 힙합이지만 “힙합은 저항의식이다”라는 식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힙합은 원래 Bitch거리는 음악이야”라는 식의 쉴드는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힙합에서 Bitch로 대표되는 여성비하적인 가사들은 갱스터랩의 등장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여성비하적 가사들이 용인되는 것일까? 한국의 송민호 사태와 비슷한 사건이 몇 년 전 미국에서도 있었다. 릭 로스라는 랩퍼가 데이트 강간을 암시하는 가사를 썼다가 리복과의 광고계약을 파기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릭 로스는 온라인에서는 물론, 언론에서까지 대차게 까였다. 이런 사례를 생각하면 송민호가 당장 <쇼미더머니>에서 하차하지 않은 것이 굉장한 기적처럼 느껴진다.
<쇼미더머니>에도 직접 출연했던 미국 웨스트코스트를 대표하는 랩퍼 스눕독은 bitch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랩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에는 bitch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그런 가사를 썼고,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니까 여성비하적 단어를 일종의 관용어구처럼 써왔다는 것이다. 마치 ‘faggot’이라는 동성애비하적 단어가 ‘병신’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faggot’은 이제 랩 가사에서 등장해서는 안 될 단어가 되었다. 예전에 이 단어를 밥먹듯이 사용했던 랩퍼 에미넴은 스눕독이 bitch를 사용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했었고, 이제는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스눕독 역시 위의 인터뷰에서 bitch의 사용을 줄이겠다고 했다.
다시 돌아와서, 스눕독의 말처럼 미국 힙합씬 안에서는 지금 스스로 bitch라는 여성비하적 단어사용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있다. 대표적으로 루페 피아스코의 ‘Bitch Bad’라는 곡을 들 수 있다. “Bitch bad, Women good, Lady better”라는 훅 가사에서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루페는 그 동안 힙합에서 의식을 했든 안했든 bitch라는 단어를 남용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본인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힙합은 기본적으로 트렌드에 민감한 장르이다. 그 트렌드는 단지 붐뱁이냐 트랩이냐의 수준을 벗어난다. 힙합이 담고 있는 것은 음악을 넘어선 문화이기 때문이다. 힙합이 다루는 트렌드는 음악과 패션은 물론 당시 사회의 이슈, 가쉽, 각종 사건사고 등 거의 모든 범주에 해당한다. 인권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흑인인권이 지금 같지 않았던 70,80년대에는 이에 대한 가사들이 가득했고, 최근엔 맥클모어&라이언 루이스의 ‘Same Love’같은 곡들과 프랭크 오션의 커밍아웃 등으로 힙합씬에 팽배했던 동성애 혐오적인 시선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따르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조차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나 <스파이>같은 페미니즘적 영화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힙합의 여성비하적 가사들이 논란의 도마에 오르고 비판과 반성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트렌드에 민감한 힙합의 성질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과도기적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장동민의 발언으로 촉발된 여혐논란이 일베와 여성시대 등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함께 절정에 다다른 상태에서, 송민호와 블랙넛은 논란의 화룡점정과도 같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라는 쉴드를 넘어서 표현의 자유까지 이야기하는 쉴더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페메니스트입니다.”라는 운동이 트위터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송민호와 블랙넛은 기본적으로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송민호는 몰라도 블랙넛은 그렇지 않다고? 블랙넛이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순간부터 그는 대중의 관심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고, 좋든 싫든 그의 음악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대중이 된다. 그들의 예술은 마니아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는 아마도 예술과 폭력, 예술과 외설에 대한 길고 긴 논쟁의 시작이겠지만, 그 논쟁이 끝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분명히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가이드라인에는 여성혐오에 대한 항목이 분명 존재한다. 여성부까지 설치해가며 양성평등을 외치는 와중에 여성비하적 가사라고? 이는 힙합이 중요시하는 트렌드에도, 사회적 정서의 흐름에도 옳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종차별과 동성애차별에 대해선 열변을 토해내면서 여성혐오적 가사에 대해서 관대하다는 것부터 비상식적이다. 그들의 가사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동성애차별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015년은 힙합에 있어서든,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서든, 인권과 차별에 있어서 가장 격렬한 과도기이다. 그럴수록 가사 한 마디, 말 한마디 신중히 뱉어야 한다. 랩퍼든 개그맨이든 네티즌이든 자신의 혀와 손가락이 어딜 향해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될 때이다. 원래 그렇다고? 관행이 잘못됐으면 바꾸는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출처 | http://dsp9596.blog.me/2204445103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