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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그 남자가 금요일 밤을 보내는 방법
게시물ID : readers_211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QI
추천 : 1
조회수 : 2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1 03: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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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교양있는 지성인들의 아고라, 책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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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을 목전에 둔 기러기 아빠인 김덕배(52, 가명)씨는 남들에겐 밝힐 수 없는 한 가지 특별한 취미가 있다.

길고도 길었던 일과가 끝나는 금요일 밤, 그의 특별한 옷장 문이 열리는 순간, 덕배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정년퇴임을 걱정하고, 캐나다에 유학간 아들과 뒷바라지 한다며 쫓아간 와이파이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던 평범한 중년 남성 김덕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10cm 킬힐과 짧은 미니스커트, 짙게 바른 빨간 립스틱이 고혹적인 분위기를 조화롭게 자아내는 미모의 여성(덕배의 주관적 판단), 김덕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덕화는 오늘의 Shopping을 위해 화장에 특별히 더 공을 들인 채(짙은 아이라인과 도발적인 볼터치로 그녀는 못된 흡혈귀처럼 보였다) 불타는 금요일 밤의 도시를 가로질렀다.

쏟아지는 시선과 비웃음 섞인 손가락질은 덕화를 위해 준비된 SPOTLIGHT에 불과했다. 가슴께에 흘러내리는 브라를 고쳐매며(양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몸을 부르르 털어 올리는 동작은 그녀가 숙련된 브라-er임을 보여줬다) 근처의 여성복 매장으로 입장한다.

"어서오세.....?!!"

밝게 웃으며 고객을 환대하던 여점원의 동공이 흔들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깜짝 놀라는 점원을 도도하게 스쳐지나가던 덕환이 곧게 뻗은 검지로 한 구의 마네킹을 가리켰다.

"저 마네킹이 입고 있는 블라우스는 어떤 아이죠?"

뒤돌은채 숨을 헉 들이키곤 애써 평정을 되찾은 점원이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음~ 저 아이는 이번 S/S 신상인데 쪼오금 사이즈가 작게 나왔어요, 아저...선생님."
"사이즈가 작다는게 무슨 소리죠?"

덕화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껍게 바른 파운데이션을 뚫고 자라난 수염이 덕화의 하관을 시퍼렇게 만들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점원이 용기를 내 말한다.

"....죄송하지만 여긴 여.성.복 매장이어서요, 고갱님."

빠직-

덕화의 오른손이 카운터 구석에 놓인 '이웃 사랑을 실천해요'라 스티커 붙여진 철제 저금통을 집어들었다.



 "랄라~."

오늘의 쇼핑은 무척 성공적이었기에 옷장을 정리하는 덕화한테서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어깨와 허리라인이 조금 비좁아(단추를 채울 수 없었다) 수선이 필요해보였지만, 새 옷을 걸친 채 거울에 비춰본 그녀의 모습은 누구보다 환하게 빛나는 듯 했다.

덕화는 남은 주말 동안 오늘 입고 나갔던 옷에 묻은 검붉은 얼룩을 깨끗이 지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옷장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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